기자명 정현준 기자
  • 입력 2025.11.12 15:06

"대미 투자 대상서 제외" 신중론 속…기업들도 섣부른 입장 표명 주저
전문가들 "철강·에너지 새 먹거리 될 것…장기 투자·환경 변수는 부담"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올해 초 출범 이후 꾸준히 한국에 60조원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참여를 압박하고 있다. 최근 양국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이후에도 한국의 프로젝트 참여를 기정사실화하는 모양새다. 한국으로서는 진퇴양난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하자니 경제적으로 불확실성이 크고, 빠지자니 정치적으로 양국 동맹 균열이 우려된다. 미국은 연내 최종 투자(FID) 결정을 목표로 하고 있어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뉴스웍스는 3회에 걸쳐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현황과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짚어본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 운반선이 시운전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 운반선이 시운전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중공업)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에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프로젝트 참여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는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은 고위험(하이리스크) 사업"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관련 업계 일각에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새로운 수익원 확보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존재한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알래스카 북부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남부 해안까지 1300㎞ 이상 송유관으로 운송한 뒤 액화·수출하는 초대형 인프라 사업이다. 총 투자 규모는 약 440억달러(약 64조원)에 달한다. 민간 자본은 지난 2016년 모두 해당 사업에서 철수하고, 현재는 알래스카 주정부 소유 가스라인 개발공사 ADGC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이미 참여를 결정해 미국과 합작법인(JV)을 설립하기로 했다. 반면 한국은 일정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을 뿐, 구체적인 입장은 내지 않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도 당시 사업 참여를 검토했다가 철회한 바 있다.

김정관(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상호관세 관련 협상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김정관(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상호관세 관련 협상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미국은 지난달 한미 관세협상 타결 직후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를 한국의 대미 투자처 중 하나로 공식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달 3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 LNG 파이프라인, 에너지 인프라, 핵심 광물, 첨단 제조업, 인공지능(AI) 및 양자 컴퓨팅 등 미국 내 프로젝트에 한국의 대미 투자 2000억달러(약 293조원)를 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역시 "한국이 알래스카 LNG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며 압박을 거들었다.

이에 따라 한국이 약속한 3500억달러(약 513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금 가운데 2000억달러의 현금 투자가 어떤 프로젝트에 투입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가스관 사업은 하이리스크 사업으로, 상업적 합리성이 떨어져 대미 투자 펀드에 포함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산업부 한 관계자도 "프로젝트 참여 여부는 상업적 합리성을 감안해 미국과 논의할 것"이라며 재확인한 바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사옥이 있는 포스코타워 송도. (사진제공=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인터내셔널 사옥이 있는 포스코타워 송도. (사진제공=포스코인터내셔널)

해당 프로젝트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핵심 에너지 사업으로, 막대한 인프라 비용과 극한 환경 탓에 경제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전문가들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가 국내 철강·에너지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천연가스를 자체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도입 기반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매장된 것은 확인이 됐다. 안정적으로 관로를 깔고 가져만 오면 불확실성은 덜한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알래스카는 극한 지역으로 천연가스 배관을 지상에 강관으로 설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포스코 등 국내 철강사가 강관을 수출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특히 수출용 강관에 대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관세 면제 혜택을 요구할 여지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극한 환경에서의 시공 경험은 국내 건설사에 학습 효과를 줄 수 있고, 천연가스 안정적 공급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라면서도 "투자 회수 기간이 길고, 공사가 가능한 기간이 짧으며 인력 확보가 어렵다는 점은 한계"라고 진단했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실장도 "철강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 프로젝트 참여는 신규 매출원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현지 프로젝트에 참여할 경우 관세 협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알래스카 프로젝트는 유정용보다 강도가 높은 이송용(수송용) 파이프가 대량으로 필요해, 국내 강관 업체보다는 고망간강 등 특수강 모재를 공급할 수 있는 포스코가 더 큰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드론으로 촬영한 광양 제1 LNG 터미널 전경. (사진제공=포스코인터내셔널)
드론으로 촬영한 광양 제1 LNG 터미널 전경. (사진제공=포스코인터내셔널)

이런 전문가들의 긍정적 전망과 달리 업계는 아직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미 간 정부 차원의 협의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이 선제적으로 움직이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고 입을 모았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트라피구라를 포함한 공급업체들과 LNG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공사는 이를 통해 2028년부터 약 10년간 미국산 LNG를 주요 기반으로 연간 약 330만톤을 추가 도입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별도의 알래스카 프로젝트 참여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내 민간 기업 중에서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가장 먼저 관심을 드러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경우 국내 민간 기업 최초로 미얀마에서 대규모 가스전 개발 사업을 성공한 바 있다. LNG 터미널 운영, LNG 트레이딩 등 에너지 사업 관련 밸류체인(가치사슬)을 탄탄히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 9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가스텍 2025에서 미국 에너지 인프라 개발 기업인 글렌파른과 연간 100만톤 규모의 LNG를 20년간 공급받는 예비 합의서(Pre-agreement)를 체결했다. 계약에는 송유관 건설 시 포스코 철강재를 활용하는 조항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회사 측은 "구속력이 없는 협의 단계일 뿐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공급 과잉과 수출 급감, 내수 침체의 '삼중고'에 시달리는 철강업계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를 새로운 돌파구로 보고 있다. 1300km에 달하는 가스관 설치 과정에서 고압 강관을 비롯한 다양한 철강재가 대거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아윈드에서 시험 생산된 직경 8미터 규모 대형 철강 캔에서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이주성 세아제강지주 사장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세아제강지주)
세아윈드에서 시험 생산된 직경 8미터 규모 대형 철강 캔에서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이주성 세아제강지주 사장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세아제강지주)

세아제강은 2016년 인수한 미국 휴스턴 공장을 통해 현지 생산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프로젝트가 본격화하면 공급망 측면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것으로 평가된다. 세아제강 관계자는 "프로젝트 세부 내용이 확정돼야 입찰 참여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철강사인 동국제강도 관련해서 말을 아꼈다. 회사 측은 "LNG 프로젝트에 쓰이는 주요 소재 중 하나가 후판으로, 에너지 저장 용기나 파이프의 원소재로 사용된다"며 "프로젝트가 본격화할 경우 후판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 단계에서 수주나 참여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기업인 SK E&S는 이미 미국 오클라호마주 우드포드 가스전에 지분 49.9%를 보유하며 10년 넘게 LNG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다만, 이번 알래스카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사안이라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알래스카 프로젝트 개발사인 미국 글렌파른과 알래스카 주정부 산하 AGDC는 오는 12월 기본설계 및 비용 산정(FEED) 연구를 마치고, 연내 최종 투자(FID) 결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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