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11.13 13:24
조단위 샤힌·LCI 프로젝트 완성단계…체질 개선 기대
공급과잉 오히려 심화 우려도…제도적 뒷받침도 미미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석유화학 업종이 탈출구 없는 글로벌 공급 과잉에 시달리는 가운데, 에쓰오일과 롯데케미칼의 역발상 투자 확대에 업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와 롯데케미칼의 LCI 프로젝트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국내 석화산업의 근본적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현재의 공급 과잉이 더욱 심화하거나, 프로젝트 성공을 위한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13일 석화업계에 따르면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조성 중인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는 지난 10월 말 기준 85%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6일 인도네시아 반텐주 찔레곤시에서 LCI 프로젝트 준공식을 개최했다. 양사가 사활을 걸고 있는 신규 석화단지 프로젝트들이 모두 완성 단계에 돌입한 것이다.
우선 샤힌 프로젝트는 기존 정유 중심의 사업 구조를 석화 비중 25% 수준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투자 규모만 9조2580억원에 달한다. 국내 석화업계 역사상 단일 사업으로는 최대 규모의 외국인(최대주주 아람코) 투자다.
저렴한 잔사유(중유)를 직접 석유화학 원료(나프타 및 LPG 등)로 전환하는 ‘TC2C(Thermal Crude to Chemicals)’라는 세계 최초 상업화 신기술이 적용됐다. 회사 측은 원가경쟁력 극대화는 물론, 탄소배출 감소까지 기대하고 있다. 연간 180만톤의 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규모 ‘스팀 크래커’ 시설도 눈에 띈다. 현재 공정율을 고려하면 오는 2026년 초 준공해 하반기부터 상업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롯데케미칼의 LCI 프로젝트도 5조7000억원이라는 거액이 투입된 석화단지 조성 사업이다. 납사분해시설(NCC)의 경우 연간 100만톤의 에틸렌 생산 능력을 갖췄다. 나프타 외 LPG 투입 비율은 최대 50%까지 설계해 원료 조달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원가 경쟁력을 높였다는 특징이 있다.
석화 제품 수요의 50%를 수입에 의존하는 인도네시아 현실상 LCI 공장이 가동되면 에틸렌 자급률이 크게 높아지고, 롯데케미칼은 안정적인 해외 생산 및 공급망을 확보하게 된다. 국가 간 경제협력 의의도 큰 만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직접 현장을 챙겨 왔다.
양사 모두 대규모 투자 확대로 단기적인 재무구조 악화를 겪고 있지만, 샤힌 프로젝트는 완성단계이고, LCI는 상업 가동만 하면 되는 단계여서 유동성 문제는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신용평가업계 한 관계자는 “샤힌 프로젝트는 전체 투자금의 71%를 자체 현금 창출 및 아람코의 매입 채무 상환 유예 등으로 해결하는 구조여서 현금 동원력이 풍부한 최대주주의 존재감이 크다”면서 “프로젝트의 핵심인 TC2C 기술 상업화가 완성되면 저가 원료를 고부가 화학제품으로 대량 전환해 근원적인 원가경쟁력과 수익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LCI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롯데케미칼은 LCI 지분(25%)을 활용한 주가수익스왑(PRS) 계약을 통해 65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해 차입금 상환에 사용했고, 비핵심 자산(파키스탄 법인 등) 매각도 병행 중”이라며 “당장 현금 흐름은 마이너스일지 몰라도 공사가 끝난 만큼, 현지에서 에틸렌 등 기초 유분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고, 원가경쟁력을 확보해 중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워낙 석화 시황이 좋지 않은 만큼 변수는 생길 수 있다.
샤힌 프로젝트의 경우 연간 180만톤이라는 적지 않은 에틸렌 생산 능력을 갖췄다.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국내 석화업계 전체가 NCC 감축을 논의하는 시점에 오히려 신규 설비가 추가되는 모순적 상황이다. 실제로 경쟁 NCC 업체들은 본인 살을 깎아가며 노후설비를 감축하는 상황에 에쓰오일만 신기술 기반 저가 설비로 시장 점유율을 늘릴 수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중국·중동 등 석화 후발주자들의 기술력이 이제는 국내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이들의 공격적인 정유-석화 통합 시설(COTC) 건설로 글로벌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 수요 회복이 지연되거나 공급과잉이 해소되지 않으면, 에쓰오일은 9조원이 넘는 막대한 투자 비용 회수 기간이 길어져 당초 예상했던 경제성 확보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LCI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곧 상업 가동에 들어간다 해도 초기 수익 창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롯데케미칼이 인도네시아 자회사인 LCI에 지급한 대규모 지급 보증액이 재무 건전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모든 프로젝트는 가동 초기에는 설비 최적화와 시운전 등으로 막대한 초기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해외 프로젝트인 만큼 현지 법규 및 문화적 특성 등으로 인한 운영 리스크 관리도 문제다. 물론 국내 NCC 공급과잉 문제는 회피하겠지만, 글로벌 시장 전체가 침체 중인 만큼 동남아 지역 제품 가격 경쟁 또한 심화될 수 있다. 아울러 LCI는 범용 제품 중심이기에 롯데케미칼은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포트폴리오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개별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산업 전체의 구조적인 변화는 물론, 정부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예컨대 경쟁력이 떨어진 노후화 NCC를 자율적으로 폐쇄하거나, 매각 또는 합작법인 설립 등을 통해 과잉 공급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생산량을 조정해야 한다. 또한 범용 제품 위주에서 벗어나 수소나 배터리 소재, 생분해성 플라스틱 등 스페셜티로 사업 구조를 고도화해야 한다.
석화업계 한 관계자는 “이뿐만 아니라 탄소포집저장(CCS)이나 바이오 연료 등 친환경·탈탄소화 투자도 병행해야 하는데 유보금이 있는 에쓰오일이나 롯데 같은 대기업들 외에 구조개편이 가능한 석화업체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며 “석유화학산업 특별법 등 정부 지원도 절실한데 미미한 상태”라고 토로했다.
산업용 전기료 특례 지원 등을 통한 원가 부담 완화 및 고부가·친환경 제품 투자에 대한 세제 감면, 금융 지원 확대가 담긴 특별법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투자 여력이 떨어졌고, 일부 대기업들이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중국과 중동의 값싼 제품들과 경쟁하기 어려워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렵기에 ‘선(先) 지원, 후(後) 구조조정’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