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11.20 08:58
100점 평가 기준 3지역 명암 교차…'입지조건 50점'이 승패 가를듯"
ITER 22년 만의 한국형 인프라…2035년까지 8대 핵심기술 확보 변수
1만명 일자리·10조원 파급효과…에너지·균형발전 시험대

[뉴스웍스=김영환 기자] 정부가 1조2000억원 규모의 핵융합 연구 인프라 구축 부지를 이달 말 확정할 예정인 가운데, 전남 나주와 전북 군산 새만금, 경북 경주가 최종 3파전을 펼치고 있다. 2003년 국제열핵융합실험로(ITER) 사업 참여 이후 22년 만에 추진되는 이번 사업은 국가 에너지 전략의 판도를 바꿀 핵심 인프라로 평가되고 있다.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 자료를 종합하면, 정부는 제4차 핵융합에너지 개발진흥 기본계획(2022~2026년)을 통해 2035년까지 핵융합 8대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2050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번 '핵융합 핵심기술 개발 및 고도화 인프라 구축 사업' 부지 선정은 이 로드맵을 뒷받침할 연구 인프라 1단계 기반이다.
한국연구재단 공모안에 따르면 부지 평가는 기본요건 40점, 부지여건 50점, 정책부합성 10점 등 총 100점 만점 체계로 진행된다. 부지여건 항목에는 지질·지반 안정성, 전력·용수·교통 인프라, 향후 확장 가능성, 주변 환경과 안전 관리 체계 등이 포함되며, 사실상 최종 점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분류된다. 기본요건과 정책부합성 항목에서는 관련 법·제도, 지방자치단체의 재정·행정 지원 계획, 주민 수용성, 국가균형발전 기여도가 함께 심사될 예정인 상황이다.
전남도와 나주시에 따르면, 나주는 2021년 타당성 조사 용역을 시작으로 4년간 체계적인 부지 제안과 지원 전략을 준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2022년 전국 최초 초전도 도체 시험시설 유치로 기술 준비도를 선제적으로 확보했다는 점을 최대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올해 7월 나주 에너지 국가산업단지 최종 승인, 8월 '에너지 수도 나주' 비전 선포, 11월 광주·전남 국회의원 공동 결의안 채택 등 연계 일정을 구축해온 점도 주목되고 있다.
나주시가 제안한 부지는 나주시 왕곡면 덕산리 일대 약 50만㎡로, 화강암 기반 암반 지형과 최근 20년간 규모 3.0 이상 지진 발생 이력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인근에는 한국전력공사 본사와 670여 개 에너지 기업이 입주한 빛가람혁신도시 '에너지밸리', 에너지 특화 대학인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KENTECH), 2025년부터 2032년까지 조성을 추진하는 에너지 국가산단 부지가 집적돼 있는 상황이다.

전남도는 한전 본사, 에너지 기업, 연구기관, 대학이 한 축으로 모여 있는 구조를 '에너지 산업-학계-연구 집적 생태계'로 정의하고, 인공태양 인프라와의 연계를 통해 글로벌 에너지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도는 이번 유치가 성사될 경우 직접·간접 고용 약 1만명, 10조원 규모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추산을 내놓고 있다.
전북도와 군산시에 따르면, 군산 새만금 지역은 10년 이상 축적된 플라즈마 실험 경험과 대규모 부지 확장성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새만금 일대에는 플라즈마기술연구원을 비롯한 관련 연구 인프라가 조성돼 있으며, 광활한 매립지를 활용해 향후 실증·상용화 시설을 단계적으로 추가 배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RE100과 연계한 재생에너지 공급 능력, 해상풍력·수소 산업과의 결합 가능성도 평가 요소로 제시됐다.
경북도와 경주시에 따르면, 경주는 원전 산업 생태계와 방사성 물질 관리 경험을 핵심 경쟁력으로 제시하고 있다. 경주·포항 일대에는 원전 운영·정비 경험이 축적돼 있고, 포항공과대학교를 중심으로 플라즈마·재료·초전도 분야 연구 인력이 집중돼 있다. 중수로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삼중수소(트리튐) 물질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져 있다는 점도 즉시 활용 가능한 연료 공급망으로 소개하고 있다.
핵융합 인프라 입지 평가에서 지질·지반 안정성은 주요 검토 항목 가운데 하나다. 경주는 2016년 9월 규모 5.8 지진이 발생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경북도는 내진 설계 기준 강화, 지진 관측·대응 체계, 인근 원전 운영 노하우 등을 근거로 '지진 위험은 관리 및 대비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핵융합 연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초정밀 실험 장비 특성상 미세 지진 진동까지 고려한 부지 선택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어, 평가 과정에서 이 부분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부지여건 50점 항목에서는 나주·군산·경주의 강점이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나주는 화강암 기반 지반과 250MVA 수준 전력 인입, 광주·무안공항·고속도로망과의 접근성, 인근 에너지 국가산단·혁신도시와의 연계 가능성을 내세우고 있다. 군산 새만금은 대규모 확장 가능한 부지와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공급, 향후 실증단지 조성 잠재력을 강조하고 있다. 경주는 기존 원전 부지 활용과 방사성 물질 관리 체계, 관련 연구 인력 인프라를 강점으로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책부합성 항목에서는 국가균형발전과 지역 간 형평성 문제가 쟁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호남권은 2020년 4세대 방사광가속기 유치 경쟁에서 탈락한 전례가 있어, 대형 과학 인프라 배치 과정에서 반복된 비선정 경험이 지역 여론에 영향을 미쳐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도는 이번 인공태양 인프라 유치가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실질적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과학 인프라 입지는 정치·지역 안배보다는 기술·안전·효율성을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선정 기준 해석을 놓고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양상이다.
이번 공모는 이번달 13일 제안서 제출을 마쳤고, 14~20일 현장 실사를 진행했다. 21일에는 발표 평가(PT)가 예정돼 있으며, 이달 말 최종 부지 선정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이후에는 예비타당성 조사와 기본·실시설계, 인허가 절차를 거쳐 2027년 착공, 2036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핵융합 연구 인프라 유치 여부는 지역 경제·산업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변수로 평가되고 있다. 나주는 인공태양과 에너지 산업을 결합한 전략과 함께 농생명(아그로·바이오) 산업을 연계하는 이중 축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군산 새만금은 핵융합 과학 복합지구 조성과 재생에너지·수소 산업 연계, 경주는 핵융합과 원전 산업을 결합한 에너지 클러스터와 방사성 폐기물 관리·안전 기술 산업 확대 방안을 제안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과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에 따르면, 핵융합 연구 인프라 유치는 단일 연구시설을 넘어 중장기적으로 연구 예산 배분, 기업·연구기관·대학 추가 유치와 연계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국내 핵융합 관련 연구개발 예산은 2024~2025년 사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2026년 국가 연구개발 예산 35조3000억원 가운데 핵융합 분야 비중도 확대되는 추세로 알려졌다.
핵융합 기술 개발 로드맵에 제시된 8대 핵심기술에는 고자장 초전도 자석, 노심 플라즈마 제어, 혁신형 디버터, 가열 및 전류 구동, 증식 블랑켓, 핵융합 소재, 연료 주기, 안전 인허가 등이 포함된다. 인공태양 인프라 부지는 이들 기술의 시험·검증 플랫폼이자 차기 단계 한국형 실증로(K-DEMO)와의 연계 거점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사회에서는 유치 성공과 실패에 따른 파급 효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남도는 나주 유치 성공 시 약 1만명의 일자리 창출, 10조원 규모의 경제 효과, 에너지·연구·교육이 결합된 복합도시 완성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대로 유치에 실패할 경우, 4년간 준비 과정에서 투입된 행정·재정 자원과 민간 투자, 지역 주민 기대에 대한 조정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도 과제로 제시되고 있어, 향후 지역사회의 대응 방안이 주목된다.
핵융합 에너지는 '수소 1g으로 석유 8톤을 대체할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소개돼 왔다. 다만 기술·경제성, 안전성, 규제 체계 정비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어, 인프라 유치 이후에도 장기간의 검증과 정책 논의가 필요하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인공태양 연구 인프라 입지 선정은 어느 지역이 유리한가를 따지는 문제를 넘어, 핵융합·원전·재생에너지의 역할 분담과 지역 간 기능 배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선정 지역에는 장기적인 연구·산업 생태계 조성 전략이, 비선정 지역에는 연계·보완 사업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