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영환 기자
  • 입력 2025.11.20 10:33

스리마일섬 재가동·SMR 500MW 계약…글로벌 빅테크 '원전 러시' 가속
"전남 전력 쏟아지는데 수도권은 못 받는다"…송전망 부족이 '발목'
해상풍력 21.3GW 허가·태양광 7087GWh 생산…그러나 접속 대기전력 원전 4기 분량
단기 송전망·중기 분산특구·장기 SMR·그린수소…3단계 로드맵이 관건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블랙웰 기반의 AI 가속기를 소개하고 있다. (출처=엔비디아 홈페이지)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블랙웰 기반의 AI 가속기를 소개하고 있다. (출처=엔비디아 홈페이지)

[뉴스웍스=김영환 기자] 인공지능(AI) 시대 전력 대란 우려에 세계 에너지 지도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세계 원자력 발전량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0년 9.2%였던 전 세계 전력 생산 중 원전 비중은 지난해 10%로 높아졌고, 2035년까지 35%, 2050년에는 80%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일 에너지 산업계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세계 32개국에서 운전 중인 원자로는 433기, 설비용량은 415.2GW다. 16개국에서 64기(약 71.7GW)가 추가 건설 중이다. 중국이 28기로 가장 많았고, 인도(7기), 터키·이집트·러시아(각 4기), 한국(2기)이 뒤를 잇는다.

AI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원전으로 돌아온' 대표적 플레이어로 자리 잡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해 9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스리마일섬(Three Mile Island) 원전을 2027년까지 재가동하는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1979년 미국 최악의 원전사고 현장이었던 이곳에서 사고와 무관했던 1호기(835MW)를 다시 돌려 약 80만 가구분 전력을 20년간 공급받겠다는 구상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올해 11월 이 재가동 프로젝트에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 대출을 승인했다.

구글은 지난해 소형모듈원전(SMR) 스타트업 카이로스파워와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하고, 2030년까지 1호 SMR 가동, 2035년까지 6~7기를 추가로 확보해 총 500MW 전력을 데이터센터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8월에는 미국 테네시주에 첨단 원전 건설에 합의했고, 세계원자력협회(WNA)에 가입하며 '원전 기반 전력조달'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메타는 올해 6월 일리노이주의 클린턴 원전에서 2027년부터 20년간 1.1GW 전력을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고, 2030년대 초까지 SMR을 포함한 4GW 전력 확보를 목표로 삼았다. 아마존은 지난해 3월 6억5000만달러를 들여 48MW(향후 475MW까지 확대 가능) 규모 핵발전 데이터센터 캠퍼스를 인수했으며, SMR 개발사 X-에너지에 5억달러를 투자했다고 주장했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SMR 기업 오클로에 투자하고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클로는 2027년 1호기 상업운전을 목표로 올해 9월 1단계 SMR 건설에 착수했다.

배경에는 AI가 끌어올린 '전력 갈증'이 있다. 챗GPT 한 번 검색에 쓰이는 전력은 일반 웹검색의 약 5배(2.9~7.5Wh)에 달한다. 원전의 평균 설비 이용률은 92.5%를 넘는다. 이는 가스(56%), 풍력(35%), 태양광(25%)보다 월등히 높아 24시간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글로벌 컨설팅사 딜로이트는 향후 10년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분의 약 10%를 신규 원전(35~62GW)이 담당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세계 전력시장이 '원전+재생에너지' 결합전략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한국 남서단 전남은 이미 그 교차점에서 거대한 실험대를 펼쳐놓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국가풍력실증센터에 설치한 8MW 해상풍력발전기. (사진제공=두산에너빌리티)
두산에너빌리티가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국가풍력실증센터에 설치한 8MW 해상풍력발전기. (사진제공=두산에너빌리티)

◆태양광·풍력 전국 1위 전남…"에너지 남는데, 보낼 선로 없어"

전남은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풍력 분야에서 전국 절대 1위 권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단 2022년 통계에 따르면 전남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748만1402MWh로 전국 2위이지만, 이 가운데 태양광 발전량은 637만6158MWh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풍력 발전량도 58만5571MWh로 강원·경북에 이어 전국 3위(점유율 19%)를 차지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전남의 태양광 설비 누적 보급량은 590만3208kW로 전북(460만7206kW), 경북(349만8732kW)을 큰 폭으로 앞서며 전국 1위에 올랐다. 2022년 기준 재생에너지 전체 누적 설비용량도 567만4964kW로 전북(505만7943kW), 충남(408만3961kW)을 제치고 역시 전국 1위다. 이 가운데 태양광은 498만9276kW, 풍력은 42만7082kW를 기록했다.

자원 여건도 독보적이다. 전남의 일평균 일사량은 3.89kWh/㎡로 전국 평균(3.63kWh/㎡)보다 7% 높다. 목포의 연간 일사량은 5160MJ/㎡로, 태양광 설비 1kW당 연 1434kWh 생산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바람 자원은 더욱 풍부하다. 전남은 전국(96.7GW)의 19.65%에 해당하는 19GW의 풍력 잠재량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6.6GW가 육상, 12.4GW가 해상 풍력이다. 전국 해상풍력 잠재량의 37.35%가 전남 앞바다에 깔려 있는 셈이다.

신안군은 그 상징적인 사례다. 전남도와 신안군은 2035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인 8.2GW 해상풍력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신안군은 이미 연간 69만8000MWh의 재생에너지로 주민 소비량의 두 배 넘는 전력을 생산하며 전력 자립도 228%, 재생에너지 비중 99.8%를 달성했다. 사실상 'RE100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민간 대규모 프로젝트도 가동 중이다. SK이노베이션 E&S가 주도하는 '전남 해상풍력 1단계' 프로젝트는 올해 5월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신안 자은도 북서쪽 9km 해상에 9.6MW급 해상풍력 터빈 10기를 설치해 96MW 규모 발전단지를 꾸렸고, 연간 3억107만kWh, 약 9만 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석탄발전 대체 효과로 연간 24만톤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27년까지 2·3단계 건설을 시작해 2031년까지 총 900MW 규모로 확장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남도는 올해 11월 해상풍력 발전사업 허가 2.6GW를 추가로 확보해 총 허가 용량을 21.3GW까지 끌어올렸다. 전국 해상풍력 허가 물량의 61%가 전남에 몰린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설비와 발전량은 급증하지만, 이를 받아줄 송전·배전망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호남권(광주·전남)에서 계통연계 대기 중인 재생에너지는 4.2GW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 4기에 해당하는 전력이 선로 부족으로 계통에 연결되지 못하고 '대기' 상태에 있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용량(kW)이 늘어난 만큼, 실제 생산전력(kWh)이 계통에 실리지 못하는 '계통 포화'가 구조적 병목으로 부상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태양광·풍력의 간헐성도 핵심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일사량과 풍속에 따라 발전량이 급감하거나 급증하면서 정전(블랙아웃) 위험을 키우고, 이를 막기 위한 예비력·계통안정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남 한빛원자력 전경. (사진제공=전남 한빛원자력)
전남 한빛원자력 전경. (사진제공=전남 한빛원자력)

◆"국가 전력 10% 책임" 영광 한빛원전…지역경제에 연 775억원 '낙수 효과'

이 같은 재생에너지의 강점과 한계를 동시에 가진 전남에는 또 하나의 거대한 축이 존재한다. 서해안 유일의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이자, 호남권 유일 원전인 영광 한빛원자력발전소다.

전남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에 자리 잡은 한빛원전에는 6기의 가압경수로(PWR)가 가동 중이다. 1·2호기는 각 950MW로 1986·1987년 상업운전을 개시했으며, 3·4호기는 각 1000MW(시스템80)로 1995·1996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5·6호기는 각 1000MW(OPR-1000)로 2002년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총 설비용량은 5000MW에 달한다.

3·4호기는 한전이 종합사업관리를 맡고 국내 업체가 주계약자로 참여한 '국산화 1세대' 원전으로 외국기술 의존도를 17% 수준까지 낮춰 한국형 원전 기술자립에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설비로 평가받고 있다.

한빛 6기 전부가 가동될 경우 연간 최대 516억kWh의 전력을 생산한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전력 생산의 약 6~10%를 담당하는 규모다. 지난 2022년 기준 한빛원전은 국내 전력 생산의 6% 안팎을 책임지고 있으며, 설비가 최대 출력으로 돌아갈 경우 국내 전력의 10%를 공급하는 '서해안 전력 허브'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7월, 한빛 6기는 2017년 이후 7년 만에 전 호기 동시 정상가동 체제를 회복했다. 이전까지는 계획예방정비, 격납건물 구조 문제 등으로 일부 호기가 멈춰 있었으나, 지난해 들어 6기 동시 가동에 성공하며 전력생산과 지역경제 효과가 동시에 확대될 기반을 마련했다.

경제적 파급효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빛원전이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발전량 1kWh당 1.5원 가량을 지역에 환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세(지역자원시설세)로 1kWh당 1원(전월 발전량 기준), 기본지원사업(지자체)으로 1kWh당 0.25원(전년도 발전량 기준), 사업자지원사업(한수원)으로 1kWh당 0.25원(전년도 발전량 기준)이 각각 지역에 환원되는 구조다.

6기가 모두 가동돼 연간 516억kWh를 생산할 경우 발전량 환산 기준 지역 자원시설세·기본지원·사업자지원까지 합쳐 연 775억원 규모의 직·간접 경제유발 효과가 지역에 떨어지게 된다.

전남도는 2018~2022년 한빛원전에서만 1조4000억원이 넘는 지역자원시설세를 확보해 영광군과 공유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한빛본부는 올해 사업자 지원사업 예산을 100억원 이상으로 책정하며 지난해(80억원대)보다 20억원가량 증액했다. 지난해 6기 동시 가동분이 반영되는 내년 이후에는 지원 규모가 더 확대될 전망이다.

한빛원자력본부가 1일 영광군 가마미 해수욕장 일대에서 해양쓰레기 수거 및 연안 정화 활동을 시행하고 있다. (사진제공=한빛원자력본부)
한빛원자력본부가 1일 영광군 가마미 해수욕장 일대에서 해양쓰레기 수거 및 연안 정화 활동을 시행하고 있다. (사진제공=한빛원자력본부)

◆'안전·폐기물·지진'…한빛 1·2호기 수명 연장, 쟁점은

한빛 1호기는 지난 1985년 12월 23일 운영허가를 받아 설계수명 40년이 오는 올해 12월 22일 도래한다. 2호기는 1986년 9월 12일 허가를 받아 2026년 9월 11일 수명이 끝난다.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1·2호기에 대해 '계속운전(수명연장)' 인허가 절차를 진행 중이며,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계속운전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원안위가 올해 11월 고리 2호기 계속운전을 승인하면서, 한빛 1·2호기를 포함해 설계수명이 도래한 노후 원전 9기에 대한 계속운전 승인 가능성도 커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원안위는 국정감사에서 한빛 1·2호기 계속운전 심사를 내년 하반기까지 마무리한다는 내부 목표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지역사회와 환경단체의 우려의 목소리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한빛원전 안전성 검증을 위해 구성된 민관 합동조사단은 1·2호기에서 시공 불량으로 추정되는 수백~수천 개 구멍, 강판 부식, 외벽 철근 노출 등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6월 12일에는 전북 부안군 행안면에서 규모 4.8 지진이 발생했는데, 진앙지가 한빛원전에서 불과 42km 떨어진 곳으로 확인되면서 서해안이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놓고도 우려와 비판이 커지고 있다. 현재 한빛을 포함한 국내 원전 대부분은 발전소 부지 내 수조와 건식저장시설에 임시로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고 있으나, 영구처분장·중간저장시설 등 근본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사실상 '영구 임시저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인근 주민들이 건강·환경 위험을 떠안게 되는 구조라는 비판이 속출하고 있다.

◆"원전과 재생은 서로의 안전판"…프랑스·영국·독일·캐나다의 교훈

해외 주요국들은 저마다 다른 길을 걸었으나 공통적으로 하나의 결론에 수렴하고 있다. 탈원전과 재생 확대를 이분법으로 볼 게 아니라, 원전과 재생을 상호 보완 관계로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에너지 자원이 빈약한 프랑스는 원전 확대를 통해 에너지 자립도를 끌어올렸다. 1차 에너지 기준으로 원전을 제외하면 자급률이 9%에 그치지만, 원전을 포함하면 50.5%까지 높아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프랑스는 56기(61.4GW)의 원전을 운영하면서 2050년까지 차세대 EPR 원전 6기를 추가 건설하는 연구에 착수했고, 14기 신규 EPR, 100GW 태양광(10배 확대), 36GW 육상풍력, 40GW 해상풍력을 목표로 제시했다.

영국은 5년 만에 해상풍력 세계 1위로 올라선 배경에 '원전 안전판'이 있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010년 62.1TWh였던 원전 발전량은 2016년 71.7TWh로 증가했고, 2014년에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원전을 추월했으나 이는 원전 발전을 줄인 결과가 아니라 양측을 동시에 늘린 결과다. 2016년 기준 영국 해상풍력 설비는 5.1GW로 세계 1위였으며, 풍력만으로 총 발전량의 12.5%(2016년 1분기 기준)를 담당했다. 석탄발전량은 2012년 143.1TWh에서 2016년 30.7TWh로 5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독일은 상반된 길을 걸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2023년 4월 마지막 3기를 가동 중단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전기요금이 5년 새 26% 급등했으며, 석탄발전 비중이 다시 증가해 올해 청정에너지 발전량은 10년 내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분석된 바 있다. 차기 총리 유력주자인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조기 총선 승리 시 가스발전소 50기를 새로 짓겠다고 공언했다. 탈원전·탈석탄을 동시에 달성하지 못한 '에너지 전환 피로'가 드러난 셈이다.

캐나다 온타리오는 '원전+수력' 조합으로 또 다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온타리오는 전력의 60%를 원전, 24%를 수력으로 공급하고, 캐나다 전체 19기 원전 가운데 18기가 온타리오에 몰려 있다. 온타리오 정부와 공기업 OPG는 2016년 다를링턴 원전 4기를 멈추고 10년간 12조6000억원을 투입해 대대적인 보수·증설에 나섰다. 4.8GW 신규 설비를 추가해 총 11GW 규모 '세계 최대 원전 단지'로 확대하는 계획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전문가들의 시각도 비슷한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 서울신문이 40명의 에너지·전력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심층 설문조사에서 2030년 최적 전원 믹스는 ▲원전 36.7% ▲LNG 25.4% ▲석탄 13.6% ▲재생에너지 21.8%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석탄은 과감히 줄이되, 재생에너지는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원전은 안정적 기반전원으로 유지하자는 취지다. 에너지경제연구원도 "원전은 대규모 집중형, 재생에너지는 분산형 소규모 공급에 강점을 가진 만큼 두 전원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는 관계"라고 분석한 바 있다.

장세일(왼쪽) 영광군수와 김성면 한빛본부장이 9월 추석을 맞아 현금 2500만원을 영광군에 기탁 후 장세일 영광군수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영광군)
장세일(왼쪽) 영광군수와 김성면 한빛본부장이 9월 추석을 맞아 현금 2500만원을 영광군에 기탁 후 장세일 영광군수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영광군)

◆전남 '영광 한빛–재생에너지 공존모델'…3단 로드맵 관건

이 같은 해외 사례와 국내 현실을 종합하면, 전남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재생에너지 전국 1위이자 한빛원전 6기로 국내 전력의 6~10%를 책임지는 '전력공장' 전남이야말로 한국형 에너지 믹스의 시험대이자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1~3년): 송전망·ESS·안전, '보이지 않는 인프라'부터

첫째, 전남형 에너지 믹스 최적화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2030년 전국 단위 권고안(원전 36.7%, 재생 21.8%)을 참고하되, 전남은 재생 자원이 풍부한 만큼 재생에너지 비중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대신 한빛원전과의 조합으로 안정적 기반전원을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둘째, 호남권 4.2GW 계통연계 대기 물량 해소가 최우선 과제다. 신안·영광·해남·영암 등에서 생산된 전남 재생에너지를 수도권과 산업벨트로 송전하기 위한 초고압 직류송전(HVDC) 등 신규 송전 인프라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송전망은 단순한 선로가 아니라 국가산업의 '혈관'이라는 인식 전환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셋째, 태양광·풍력 간헐성을 보완할 에너지저장장치(ESS) 확대와 안전성 강화다. 국내 ESS는 2020~지난해 5년 동안 34건의 화재가 발생해 국민 불안을 키우고 있다. 배터리 ESS에 더해 액화공기저장(LAES), 양수발전, 수소저장 등 다양한 기술을 조합한 하이브리드 ESS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ESS 확대 없이는 재생에너지 확대도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넷째, 한빛 1·2호기 수명연장 여부는 '안전 최우선·정보 공개·주민 참여' 3원칙 아래 결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관 합동조사에서 드러난 구조 결함·부식·철근 노출 문제, 주변 지진 위험, 고준위 폐기물 포화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원전주변지역 지원법·사용후핵연료 관리 특별법 등 관련 법·제도 개선과 연계해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는 과정이 필수라고 요구되고 있다.

-중기(3~7년): 분산에너지 특구·O&M 허브·시민참여 모델·VPP

중기 과제의 축은 '분산에너지'와 '지역 주도'다.

지난해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전력계통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발전·송전·소비 구조를 중앙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 전환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분산에너지 특화구역으로 지정되면 ▲직접 전력거래 허용 ▲저렴한 전기요금 적용 ▲전력계통 영향평가 면제 ▲LNG 설비 용량입찰 가점 ▲태양광 금융지원 우대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영광군과 신안·해남·영암 등 전남 주요 지역을 분산에너지 특구로 지정·운영한다면, 재생에너지 단지–데이터센터–산업단지–지역민 수익 공유 구조를 하나의 선순환 고리로 엮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영광군이 구상 중인 '해상풍력 O&M(운영·정비) 허브'도 핵심 축이다. 해상풍력 터빈·케이블·해상변전설비 유지보수, 부품 수리, 전용선박 운영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면 '풍력 발전–O&M–부품산업–항만'으로 이어지는 에너지 클러스터를 만들 수 있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나주혁신도시·데이터센터, 해남·신안 해상풍력, 수소 산업을 연계한 '에너지–AI 융합 벨트' 전략이 더해지면 전남 서남해안은 한국판 북해(北海) 모델로 도약할 여지가 크다고 평가되고 있다.

전남 고흥 남정수상태양광 발전소. (사진제공=LS전선)
전남 고흥 남정수상태양광 발전소. (사진제공=LS전선)

시민참여형 재생에너지 모델도 전남 전체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영광군은 올해 7월 '영광형 재생에너지 시민참여 모델' 연구 최종보고회에서 발전사업 영향도에 따라 주민투자 한도를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송전·변전시설 인근 주민에게는 최대 1.5배, 해상풍력에는 최대 3배까지 투자 한도를 부여해 이익을 더 많이 나누는 구조다. 이 모델을 표준화해 전남 전역 협동조합 설립·아동 교육·주거복지와 연계한다면 '에너지로 지역을 살리는' 구체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각오가 드러나고 있다.

재생에너지 분산원을 통합·제어하는 '가상발전소(VPP)' 시장 선제 도입도 중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분산형 태양광·풍력·ESS를 하나의 발전소처럼 묶어 전력거래소 입찰이 가능한 '지시응답형 자원'으로 등록하고, 도매시장에 참여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면 재생에너지의 수익성과 계통 안정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시되고 있다. 정부는 2027년까지 분산형 전원 비중을 18.6%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전남이 VPP 시범·선도 지역을 자처할 수 있는 배경이다.

-장기(7년 이후): 신안 8.2GW·SMR·그린수소·일자리까지 묶는 '2050 로드맵'

장기적으로 전남은 2050년 탄소중립을 향한 지역 차원의 '에너지 대전환 로드맵'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나의 예시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0% ▲원전 35% ▲LNG·가스 25% 수준의 에너지 믹스를 정착시키고, 2050년에는 ▲재생에너지 60% ▲원전 25% ▲청정수소·암모니아 15% 수준의 조합을 목표로 삼는 방식이 제시되고 있다.

오는 2030년까지 신안 8.2GW 해상풍력 단지를 완공하면, 전남 서남해안 일대는 세계 최대 해상풍력 단지와 서해안 유일 원전이 공존하는 '재생+원전 복합 에너지 벨트'가 된다. 이때 노후 한빛원전의 단계적 대체 수단으로 소형모듈원전(SMR)을 도입해 기존 부지 내에 설치하고, 데이터센터·산업단지에 안정적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SMR은 부지 제약이 적고 안전성이 높으며,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보완하는 '유연한 기저전원'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 고려되고 있다.

그린수소 인프라 구축도 장기과제로 평가되고 있다. 잉여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물을 분해하는 수전해(電解) 방식으로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저장·운송해 발전·산업·모빌리티에 공급하는 '섹터 커플링' 기술을 상용화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전남이 '수소 생산-저장-운송-활용'을 아우르는 수소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면, 재생에너지의 계통제약·간헐성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고용 측면에서도 에너지 전환은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린피스가 2022년 발표한 '한국의 에너지 전환 일자리 효과 분석' 보고서는 2022~2030년 재생에너지·에너지 효율화·조림·화석연료 수입 감축을 통해 약 86만개의 일자리가, 2031~2050년에는 90만~120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석탄 중심 충남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시민단체 '기후솔루션' 등 분석에 따르면 충남이 석탄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면 2050년까지 누적 108만개(FTE 기준)의 일자리가 생기고, 재생에너지의 부가가치 기여도는 2022년 지역총생산(GRDP)의 52%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반대로 석탄을 가스로만 대체할 경우 일자리는 2만9000개, 부가가치 기여도는 3%에 그친다는 추정이다.

전남 RE100 위원회 분석에서는 RE100 활성화로 태양광 관련 고용이 7418명에서 3만9470명, 풍력이 7418명에서 3만9470명까지 늘어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이 곧 일자리 전환'이 되는 셈이다.

최태원 SK 회장과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전남도)
최태원 SK 회장과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전남도)

◆"탈원전 vs 친원전" 이분법 넘어야…전남을 한국형 에너지 믹스 모델로

전남은 전국 최대 재생에너지 특화지역이자 국가 전력의 6~10%를 책임지는 한빛원전을 동시에 품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남 태양광 발전량은 7087GWh로 전국 1위, 재생에너지 누적 설비는 567만4964kW(2022년 기준)로 역시 전국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빛원전은 연간 최대 516억kWh를 생산해 국내 전력의 최대 10%를 공급하고, 연 775억원에 달하는 세수·지원금·지역사업 파급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프랑스의 '원전+재생 균형모델', 영국의 '해상풍력+원전 안전판 모델', 독일의 '탈원전 후 고전' 사례, 캐나다 온타리오의 '원전+수력 하이브리드 모델'이 보여주듯, 에너지 전환의 성패는 특정 전원의 찬반이 아니라 '믹스의 설계'에 달려 있다는 점이 한 단면으로 읽힌다. 전남의 과제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송전망·ESS·원전 안전 같은 '보이지 않는 인프라'를 다지고, 중기적으로는 분산에너지 특구·O&M 허브·시민참여 모델·VPP를 통해 지역 주도 에너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신안 8.2GW 해상풍력 완공, SMR 도입, 그린수소 인프라, 정의로운 전환 일자리 전략을 묶어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완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영광 한빛–전남 재생에너지 공존모델'이 성공한다면, 한국은 에너지 안보·탄소중립·경제성·안전·일자리·지역발전을 동시에 달성한 새로운 에너지 전환 모델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반대로 이 모델이 실패한다면, 탈원전도, 탈탄소도, 지역 균형발전도 모두 반쪽짜리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전남이 한국 에너지 정책의 '시험대'를 넘어 '모델'로 우뚝 서기 위해선 중앙정부·지방정부·한수원과 재생에너지 기업, 지역주민과 시민사회가 '공존과 상생'의 원칙 아래 정교한 에너지 믹스 사회적 대타협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지금 전남이 만드는 선택지가 곧 한국 에너지 전환의 미래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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