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민서 기자
  • 입력 2023.05.15 06:00

[방문 여는 방법㊥] "준비 없는 시작 더 깊은 고립 야기…전문가 상담·지원기관 교육 받는 게 효율적"

2021년 K2인터내셔널코리아의 '은둔고수' 참여자 모집 포스터. (사진=서울청년센터 블로그 캡쳐)
2021년 K2인터내셔널코리아의 '은둔고수' 참여자 모집 포스터. (사진=서울청년센터 블로그 캡쳐)

[뉴스웍스=정민서 기자] "은둔하는 동안 당사자도 그렇지만 가족들이나 지인들도 그 시간을 함께 잘 보내야 된다고 생각해요. 당사자도 힘들겠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의 어려움도 있으니까요. 조바심 나고 애는 타는데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당사자에게 괜히 화내고 잔소리하게 되잖아요. 제가 잘 견딜 수 있었고, 지금도 어머니를 정말 사랑하고 많이 아끼는 이유가 그런 게 없었다는 거예요."

두더지땅굴과 인터뷰를 진행한 모카(가명)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식물인간 상태가 되면서 충격을 받았다. 결국 20살이 되던 해 부친은 사망했다. 도피하듯 떠난 일본 유학 생활에서 조울증이 발병, 어려움을 겪었다. 유학을 포기한 후 한국에 돌아와 1년 여의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은둔 시절을 회고하며 옆에서 지켜봤던 어머니가 본인을 재촉하거나 다그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 준 것이 견디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주변으로부터 조바심과 압박이 아니라 위로와 격려로 방문을 열 수 있게 된 그는 현재 성북문화재단에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활동을 통해 자신이 받은 격려를 다른 은둔고립청년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모카씨가 출연한 SBS '곰손카페'의 한 장면. 외로운 이에게 다가가주는 넓은 품, 말하지 않아도 안기고 싶은 깊은 마음이다. (사진제공=두더지땅굴)
모카씨가 출연한 SBS '곰손카페'의 한 장면. 외로운 이에게 다가가주는 넓은 품, 말하지 않아도 안기고 싶은 깊은 마음이다. (사진제공=두더지땅굴)

최근 서울시가 서울에 거주하는 만19~39세 청년 5513명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생활 극복을 위해 필요한 지원사항으로 24.5%는 '가까운 사람들의 이해와 지지'라고 응답했다. 이처럼 주변인들이 은둔고립청년을 보는 시선과 대하는 태도는 그들의 '탈출'에 큰 영향을 끼친다. 재촉보다는 믿음이 사회로 나오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대학 재학 중 느낀 어려움과 사회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10년 이상 은둔생활을 한 모험가(가명)씨 또한 은둔 고립 기간 부모님의 조용한 위로와 격려가 큰 보탬이 됐다고 말했다. 강하게 압박하기보다는 차분히 지지해 주었던 어머니와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서 힘들게 일하면서도 남들 앞에서 부족하지 말라며 항상 용돈을 쥐여주던 아버지였다고 한다. 힘들게 살아온 당신들이기에 자식만은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었을까.

대부분의 은둔고립청년들은 가정 내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부모와 모험가씨는 세대 차이가 나는 부분이나 타협이 안 되는 대화 속에서는 부딪히기도 했지만 결국 존경하는 아버지와 긍정적인 어머니의 기다림 덕에 은둔 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고 현재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모험가씨의 방문 앞에서 기다린 건 비단 부모님만이 아니었다. 사회복지사인 그의 친구도 그가 방황할 때 곁에서 묵묵히 도움을 줬다. 어느 순간 곧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 해소할 방법이 없어 주변에 힘들다고 목소리를 내면, 친구는 그가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 공감을 해줬다. 또 은둔 기간에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자 적금 받은 돈 일부를 꺼내 병원에 가라며 선뜻 건네기도 했다. 자주 보진 않지만 늘 묵묵히 지지해 주는 친구에게 뭐라도 보답하고 싶었던 모험가씨는 산책을 시작했고 이는 방문을 좀 더 수월하게 열게 해준 계기가 됐다.

은둔 고수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는 씨즈의 자조 모임. (사진제공=두더지땅굴)
은둔 고수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는 씨즈의 자조 모임. (사진제공=두더지땅굴)

"은둔고수 프로그램 아세요? 은둔도 스펙이잖아요. 저는 그것을 그때 느꼈어요. 내가 필요할 때 방 안에 있으면서도 잘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스펙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요." (두더지땅굴과의 인터뷰에서 모카씨의 말)

모카씨가 언급한 은둔고수 프로그램은 5년 간의 은둔생활을 딛고 자립한 유승규 안무서운회사 대표가 기획한 은둔형외톨이 피어 서포터즈 양성 프로그램이다. '은둔도 스펙'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은둔고립에서 벗어난 청년들이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은둔고립청년들을 도울 수 있도록 5개월간 다양한 실습을 통해 양성 과정을 거친다. 

프로그램을 통해 양성된 은둔고수들은 은둔고립청년뿐만 아니라 은둔고립청년의 부모나 가족도 돕게 된다. 유 대표는 은둔고수와 도움을 받는 이들 간에 상호보완적 효과가 나타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비록 은둔 생활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 부모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은둔고수가 은둔생활 중인 자녀를 둔 부모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치유'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은둔고수들은 이런 대화를 통해 부모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고, 부모들도 본인 자식들과는 한마디도 나눌 수 없는 상태지만 회복한 당사자들과 대화하며 깨달음을 얻어가는 셈이다. 유 대표는 "은둔고립청년의 주변인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부모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거나, 주변인들도 관계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경우가 다수"라며 "무면허로 운전하다 보니 상처받은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실제 뉴스웍스 취재진이 만난 은둔고립청년 중 일부는 은둔고립 탈출을 막은 요인에 대해 '주변의 기대'를 꼽았다. 1년 반 동안의 은둔생활 탈출을 위해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장영걸(24세)씨는 당장 집 밖을 나오기도 힘든 자신에게 쏟아지는 부모의 기대와 압박이 본인을 더욱 고립되게 만들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사회로 나갈 준비가 되지 않은 청년들을 사회로 내모는 것이 오히려 은둔고립을 촉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혜원 파이나다운청년들 이사장은 "개인과 가정·사회 내에서 은둔고립의 원인이 되었던 요인들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는 의지만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며 "준비 없는 시작은 더 깊은 고립을 야기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유승규 안무서운회사 대표는 이미 은둔하는 청년에게 그 전의 모습을 강요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이미 몇 년을 은둔하고 있는 청년에게 '너 옛날에 잘했잖아', '취업해 보자' 하는 건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다시 뛰자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높은 기대치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각자 그 가정의 사정에 맞는 '0.1'의 상태를 파악해 거기서부터 같이 바라보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은둔고립청년들이 노력을 안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한 끝에 포기한 경우들이 많다. 실제로 프로그램 지원율만 봐도 당사자들이 회복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게 많이 느껴진다"며 "그들에 대해 '쓸모없고 아무것도 안 하려는 사람이다' 등의 생각은 굉장한 편견이고 선입견"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가족 또는 주변인들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조심하고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단은 (뭐 많진 않지만) 현재 계신 전문가분들에게 상담을 구하거나 지원기관을 찾아가 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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