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09.24 15:39
양사 갈등 원인으로 '석포제련소 환경 문제' 꼽아
고려아연의 기술력이 '대한민국 기술 안보' 강조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고려아연의 기술력이 곧 대한민국의 기술 안보이기 때문에 국민과 주주, 나라를 위해 기술 안보를 지켜야 합니다."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
고려아연이 MBK파트너스·영풍의 공개매수 선언 이후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타워에 위치한 본사에서 첫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작업복 차림의 이제중 부회장(CTO)을 비롯해 김승현 기술연구소장, 설재욱 생산1본부장, 원종관 생산2본부장, 권기성 생산3본부장 등을 포함해 20여 명의 기술자들이 참석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기자회견에 앞서 "이제중 부회장이 카메라 공포증이 있음에도, 이 부회장 본인이 이번 기자회견에 자청해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의 입장 발표 이후 기술자들은 '세계 1위 현 경영진 우리 모두 함께하자', '대한민국 기간산업 국민들과 지켜내자', '기술유출·기술약탈 투기자본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을 경영할 수 없다는 것을 제가 장담한다"며 "만약 (MBK파트너스로) 경영권이 넘어간다면 우리 기술자들은 다 그만두겠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현장 관리를 잡초 제거에 비유했다. 한 해 농사를 잘 짓기 위해 매일 잡초를 제거하듯이, 공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관심을 두고 매일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부회장은 "50년간 매일 잡초 뽑는 그런 경영으로 고려아연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MBK파트너스는 그렇게 경영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 부회장은 고려아연과 영풍 간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발생한 환경 문제에서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석포제련소로부터 나오는 산업폐기물로 인해 낙동강에서 카드뮴과 수은, 비소 등 불순물들이 다량 검출돼 대표이사 2명이 구속됐다"며 "장형진 영풍 고문이 이를 해결하고자 고려아연 온산 제련소를 폐기물처리 공장으로 세우려 했고, 이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막으면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증거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영풍이 고려아연을 폐기물 처리장으로 만들려는 증거가 공개가 가능한지 여부와 이 외에도 영풍 측의 부당한 경영 부담을 떠넘기려는 시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밝히고 싶지만, 다음에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국민과 주주, 나라를 위해 기술 안보를 지켜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대부분의 비철금속 생산·가공을 중국 기업이 하는 상황에서 고려아연이 없어지면 한국 반도체 경제가 멈추는 국가적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고려아연 생산량의 절반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에 공급되고 있다.
아울러 MBK파트너스가 제기한 문제 가운데 미국 전자폐기물 리사이클링 기업 이그니오 홀딩스 인수에 관해서도 입을 열었다. 이 부회장은 "이그니오를 인수한 이유는 폐자재를 전처리 분류한 후 온산 제련소에서 추출·가공하려는 데 있다"며 "투자심의위에서 검토해 충분히 사업성이 있다고 보고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연 구리 15만톤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분명히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라며 "주주들에게 더 많은 배당 이익을 줄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향후 기자회견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 이 부회장은 "적당한 시기에 최 회장 주도로 기자회견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답변했다.
한편, 경영권 분쟁이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과 영풍의 주가는 이날 동반 약세를 보여 주목된다. 고려아연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3.32% 하락한 69만9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단, 공개매수 가격보다는 4만6000원 이상 높은 가격이다. 영풍 주가의 경우 11.68% 급락한 35만5500원에 장을 마쳤다.
아래는 고려아연 이제중 부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영풍·MBK 측은 영풍과 고려아연 갈등이 최윤범 회장 취임 이후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양사 간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영풍과 고려아연은 상당 기간 동업을 유지했다. 4~5년 전 영풍 석포 제련소에서 불거진 환경 문제가 갈등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석포 제련소로부터 카드뮴 등 산업폐기물이 낙동강까지 흘러 들어가면서 문제가 됐다. 박영민 부사장 등 대표이사들이 구속되는 중대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이 문제를 장형진 영풍 고문이 고려아연 온산 제련소를 통해 해결하고 싶어했다. 남의 공장에서 나온 폐기물을 우리가 받아서 하는 것은 범죄 행위인데, 이를 막은 사람이 최윤범 회장이다. 그때부터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영풍이 고려아연을 폐기물 처리장으로 만든다고 하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영풍에서 부당하게 경영 부담을 떠넘기려고 한 시도가 있었나.
"이 자리에서 밝히고 싶지만, 다음에 별도로 말씀드리겠다."
-같은 비철금속 제련 분야인데 영풍과 고려아연의 실적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간단하게 경영 능력과 기술 능력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경영 능력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람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사람을 가족처럼 대해주는 분이 최윤범 회장이다. 고추밭에 농사짓는 것을 비유하면, 고추밭 주인이 매일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농사가 망한다. 그게 현장 관리다. 이를 위해서는 관심이 있어야 하고 눈에 보여야 하고 애사심이 있어야 한다. 지난 10년간 고려아연 영업이익률이 12.8%다. 반면, 영풍은 지난 10년간 평균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다. 그동안 고려아연으로부터 배당을 받아서 지금까지 회사를 운영한 것이다."
-인수합병이 이뤄지면 어떤 부분에서 고려아연의 경쟁력이 저하될 것으로 보는가.
"고려아연은 50년 동안 계속 기술을 업데이트해 오며 비철 제련에서 12가지 사업을 운영하는 반면, 영풍은 두 가지에 불과하다. 같은 비철 제련 회사가 이렇게 차이가 벌어진 것은 경영진과 기술력, 생산의 차이다. 그냥 포괄적으로, 한마디로 말하면 투기 회사들이 돈만 놓고 보면 고려아연에서 팔아먹을 기술이 매우 많다. 몇천억짜리 기술도 있고 그런 기술들이 공정마다 수백 개 이상 있다. 중국은 모든 비철금속 생산을 바라는 데, 아연의 경우 1년에 생산이 1700만톤이면, 그 중 중국이 850만톤을 생산한다. 이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건 국가적인 재앙이다. 고려아연은 기간산업이다. 21세기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건 기술 안보로,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유출되는 기술을 지켜야 한다. 우리 국민과 주주, 나라를 위해서 기술 안보를 지켜야 한다."
-향후 최윤범 회장도 기자회견에 나설 가능성이 있나.
"당연히 적당 시기에 기자회견을 한다고 본다. 최윤범 회장은 지금 자본 세력에 한 방 맞은 것이다. 그분은 보통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변호사로, 지금 차분히 대응을 진행하고 있다. 분명히 우리가 이긴다. 조금만 지켜봐 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