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2.03 17:30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항소심 무죄 판결을 계기로 10년 동안 이어간 사법 리스크를 벗을 수 있을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이전과 다른 적극적인 경영 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뉴삼성' 기조를 본격화하고 대형 인수합병(M&A)에 적극 뛰어들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또 컨트롤타워 부활을 본격화하고, 등기이사에 복귀할지도 관심이 쏠린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시작된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현재까지 지속돼 왔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백강진·김선희·이인수)는 3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이 회장이 재판에 넘겨진 지 4년 5개월 만이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지 1년 만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추측이나 시나리오, 가정에 의해 형사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라며 "검사의 항소 이유에 관한 주장에 이유가 없다"라고 판단했다.
이 회장은 1시간 남짓한 판결을 듣고 무죄가 선고된 후 같이 기소된 전직 임원들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적극적 경영 행보 '큰 기대'…대형 M&A 본격화할 듯
검찰의 상고 여부가 남았지만, 현시점에서 이재용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벗게 됨에 따라, 그동안 미뤄왔던 '뉴삼성' 구축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회장이 그간 적극적인 경영활동을 했지만, 외부에 보이는 모습에는 다소 소극적인 측면이 있었다"며 "아무래도 사법 리스크가 있을 때는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 한계가 있었는 데, 앞으로 달라진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파운드리 사업도 TSMC와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 만큼, 이 회장의 적극적인 리더십이 꼭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거진 '위기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뉴삼성'이라는 경영 화두를 밀어부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뉴삼성' 비전을 선언했지만, 사법 리스크에 묶여 있다 보니 구체적인 비전 제시와 실행이 미뤄져 왔다. 따라서 그룹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 회장이 조만간 뉴삼성에 가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지난 2016년 하만을 인수한 이후 중단된 대형 M&A가 가시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31일 로봇 전문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지분을 기존 14.71%에서 35.0%로 확대하며 최대 주주에 오른 바 있다. 삼성전자는 로봇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을 삼은 바 있어 로봇 사업에 더 힘을 싣기 위해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최대 주주로 등극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대형 M&A 작업이 본격화할지 관심을 모았는데, 이번 무죄 판결로 M&A에 더욱 힘을 실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2023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IFA 2024에서 대형 M&A에 대해 "이는 필수적인 것이며 지속적으로 큰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 부회장은 "기존 사업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M&A를 보고 있고 미래 산업을 들여다보면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겠다”고 말했다.
한 부회장은 2023년과 2024년 CES 현장에서도 "삼성전자의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대형 M&A를 착실히 진행 중"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또 2022년에는 "M&A가 활성화되어야 서로 성장하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M&A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위기론이 일고 있는 삼성전자는 미래성장동력에 대한 투자가 시급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중장기 미래성장동력으로 꼽히고 있는 인공지능(AI)·바이오·전장 등과 관련된 글로벌 M&A 추진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시장이 AI·로봇·전장·핀테크 등으로 전환되고 있지만, 아직 삼성전자는 이들 분야에 대한 투자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을 중심으로 삼성전자가 향후 10년간 주력할 신사업을 발굴하고 있는데, 어떤 사업들이 그 대상이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 경기도 수원 본사에서 개최된 'DX 커넥트 행사'에서 의료기기·로봇·전장부품·친환경 공조 등 4가지를 미래 먹거리로 꼽은 바 있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사업은 전영현 부회장에게 맡기고, 이 회장은 신사업에 올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컨트롤타워' 재건 나서나…등기이사 복귀 가능성은
특히 삼성전자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거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미전실)' 재건에 나설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회장의 결단으로 미전실을 없앴는데, 컨트롤타워의 재건에도 그의 결정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태 당시인 2016년 12월 국정농단 국정조사 특위에 참여해 "미래 전략실에 관해 많은 의혹과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며 "국민 여러분이나 의원들께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면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고 밝힌 이후 조직개편을 통해 미전실을 해체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컨트롤타워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과거 그룹을 총괄한 미전실은 핵심 현안에 대해 철저히 대응하고 미래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조타수 역할을 맡았고,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굵직굵직한 M&A를 주도했다.
삼성전자는 미전실의 후속으로 사업 부문별로 3개의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있지만, 분산된 구조는 물론, 권한 축소로 미전실에 훨씬 못 미치는 성과를 거두고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삼성에서 핵심적인 먹거리로 부상한 배터리 사업이나 바이오(의료기기) 사업도 미전실이 존재하던 시절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그룹의 준법 경영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이찬희 위원장도 컨트롤타워 부활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삼성그룹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컨트롤타워 재건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위원장은 또 이 회장이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등기임원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한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은 이미 등기이사를 지냈으며, 그 시절 다른 이사들로부터 그가 회의에 참석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며 "이 회장이 등기이사로 참여하면 별도의 보수까지 지급해야 해 경제적인 부담까지 있어, 그가 등기이사직을 내려놨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이 많았다. 다시 등기이사로 복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회장은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한 미등기 임원으로 꼽힌다. 특히 사법 리스크가 미등기 임원의 가장 큰 이유로 꼽혀왔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 국면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기업 총수가 등기임원으로 참여해 대표권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 회장은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가 출범한 후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여, 트럼프 행정부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멕시코와 캐나다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 이 지역에 생산 시설을 둔 국내 가전 및 배터리 기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미국 현지 공장을 증설할 가능성이 있지만 인건비, 환율 등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이 회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이 같은 문제를 논의해야 하지만, 미국 방문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반도체 보조금 지출 중단 움직임까지 우려되고 있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재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