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채윤정 기자
  • 입력 2025.04.19 15:41

백악관·의회 겨냥 거물급 인사 영입…워싱턴에 10여곳 사무실 마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도널드 트럼프 페이스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도널드 트럼프 페이스북)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세계 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턴DC에선 국가 간 총성 없는 관세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에 가장 민감한 한국 기업들은 대미 라인을 대폭 강화하며 민첩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DC에서 대관 오피스를 운영 중인 기업만 삼성전자, 현대차그룹, SK, LG, 한화, 포스코, 현대제철, LIG넥스원, KAI, 한국수력원자력 등 10여 곳이 넘는다.

지난 2017년 1기 트럼프 정부 출범 당시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만 대관 기능 오피스를 운영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대기업들은 로비스트 업체와 계약을 맺고 대미 라인 역량을 극대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대미 라인 역량과 주 활동 범위는 대관 기능의 특성상 대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현재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상호 관세, 품목 관세에 대한 정보 수집부터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 설명, 우호적인 여론 조성 등에 주력하고 있다.

워싱턴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 경제계 관계자는 "요즘에는 다들 관세에만 집중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주요 기업 대미 라인의 접촉 대상은 미국 행정부 주요 관계자를 비롯한 트럼프 대통령 측근 그룹, 의원, 보좌관 등 다양하다. 업종별로도 차이가 있다.

이 관계자는 "기업의 영업 활동에 영향을 주는 법안이 많기에 로비펌의 변호사나 로비스트들은 의원들을 주로 접촉하고 방산 업체들은 국방부 관계자들과 접촉을 많이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로비 활동은 더욱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 때는 지금보다 활동이 어렵지도 않았고 트럼프 2기 정부 때는 1기 당시 인사들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발탁됐기에 네트워킹을 쌓는 데 힘든 부분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표지석. (사진=박성민 기자)
삼성전자 서초사옥 표지석. (사진=박성민 기자)

최근 삼성전자의 움직임이 경제계의 이목을 끌었다.

삼성전자의 해외 대관 업무는 글로벌퍼블릭어페어스(GAP)에서 총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GPA를 실 단위로 승격했고 외교부 출신인 김원경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특히 조직 정비를 마친 삼성전자는 미국의 로비스트 업체인 '콘티넨털 스트래티지''와 계약했는데 이 회사의 정체와 소속 직원들의 면면에 이목이 쏠렸다.

이 회사는 트럼프 정부의 실세인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의 딸인 케이티 와일스가 소속된 곳이다. 케이티는 삼성전자의 로비스트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백악관 비서실장이라는 막강한 배경은 로비 활동에 큰 도움을 줄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많다.

삼성을 대리해 로비스트로 활동할 이들의 면면 역시 화려하다. 콘티넨털 대표이자 설립자인 카를로스 트루히요부터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상원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뎁 피셔 공화당 상원 의원(네브래스카) 보좌관 출신인 대니얼 고메스 등이 삼성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는 미국 백악관, 행정부, 의회 모두 사정권에 두고 로비 활동을 펼치겠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집권 1기 때 미주기구(OAS) 대사를 지냈던 트루히요는 이번에도 국무부 차관보로 물망에 오를 만큼 영향력이 크다. 트루히요는 통신, 가전, 반도체 분야 홍보 및 공급망과 무역 이슈 아웃리치를 담당하고 있다. 

LG그룹은 작년 말 미국 대관조직인 'LG 워싱턴 오피스' 책임자로 황상연 소장을 임명했다. 기존의 공동 소장 체제에서 단일 체제로 변경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부비서실장을 지낸 조 헤이긴 전 공동 소장은 고문 역할을 맡는다.

LG그룹은 또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워싱턴지부장을 워싱턴 오피스의 리더급으로 영입했다. 제 전 지부장은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후 국제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무역협회에 입사한 후 주로 통상 업무를 담당해 왔다. 무역협회 지부는 통상적으로 바이어와 매칭 업무도 담당하는데 워싱턴지부는 오직 통상 업무를 담당한다. 

무협 워싱턴지부는 로비스트도 고용, 미국 연방의원들과 상무부, 미국무역대표부(USTR)와도 접촉을 해왔다. 제 전 지부장은 3년간 워싱턴지부장으로 활동하며 풍부한 인맥을 쌓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협회에서도 제 전 지부장에 대해 통상 관련해 '유명한 인물'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다. 제 전 지부장의 경험이 LG의 대미 업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제기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11월 단행한 사장단 인사를 통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대비했다. 북미 지역을 총괄했던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 호세 무뇨스 사장을 현대차 첫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로, 미국 외교 관료 출신인 성 김 고문을 대외협력·PR 담당 사장으로 지난 1월 임명했다.

성 김 사장은 동아시아·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에 정통한 미국 외교 관료 출신의 전문가다. 부시 행정부부터 오바마·트럼프·바이든 정부까지 주인도네시아 미 대사 겸 대북정책특별대표, 주필리핀 미국대사,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미 국무부를 은퇴한 이후 지난해 1월부터 현대차 고문으로 합류했고, 현재는 그룹의 해외 대관 조직인 'GPO'(Global Policy Office)를 총괄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전략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GPO는 지난달 24일 정의선 회장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 기업 총수 중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대면하는 데 숨은 조력자 역할을 담당했다. 정 회장은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미 루이지애나주 제철소 건립을 포함한 31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현장에 동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 인허가의 어려움이 있으면 나를 찾으라"고 화답했다.

현대자동차그룹 미국 대관 조직 'HMG워싱턴사무소'는 지난 15일 드류 퍼거슨 전 미 연방하원의원을 신임 소장으로 선임했다.

퍼거슨 신임 소장은 미 조지아주 4선 연방하원의원으로 집권 여당인 공화당 소속이며 트럼프 행정부 정책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연방하원의원이던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 미국 내 제조업 부흥과 일자리 창출, 세제 개혁 등 핵심 정책들을 적극 지지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완공된 현대차그룹 신공장 'HMGMA'와 2010년 준공된 기아 공장이 소재한 조지아에서 오랜 기간 의정활동을 펼친 만큼 현대차그룹의 미국 경제 기여도를 워싱턴 정가에 설명할 적임자로 평가된다. 

SK그룹은 지난해 상반기 북미 대외 업무 컨트롤타워 SK아메리카스를 신설했다. 계열사마다 흩어져 있던 대외협력 기능을 통합해 배터리·에너지 정책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룹 북미 사업을 총괄한 유정준 부회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 유 부회장은 SK온의 대표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SK온의 최대 투자처인 미국 주정부와 긴밀한 소통 창구를 구축해야 한다.

SK는 같은 해 연말 그룹 정기 인사에서 폴 딜레이니 부사장을 임명했다. 폴 딜레이니 부사장은 USTR 비서실장과 미 상원 재무위원회 국제무역고문 등을 지냈다. SK아메리카스에서 그룹 미주 GR(Government Relations)을 총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화그룹에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난해 말 마이클 쿨터 전 레오나르도DRS 글로벌 법인 사장을 해외사업 총괄 대표로 영입했다. 레오나르도 DRS는 글로벌 방위산업 기업이다. 국내 방산업체가 외국인 대표를 선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화큐셀은 지난해 9월 조 멘델슨 테슬라 로비스트를 미국법인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그는 테슬라의 무역·청정에너지 생산과 관련한 대정부 협의를 총괄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포스코그룹은 국내외 통상환경과 정책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회장 직속의 '글로벌통상정책팀'을 신설했다.

초대 글로벌통상정책팀장으로 김경한 포스코홀딩스 커뮤니케이션 본부장이 선임됐다. 그는 외교부 출신으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기획단 팀장, 다자통상국 통상전략과장, 한·EU(유럽연합) FTA 협상단 과장을 지냈고 지난 2019년 포스코그룹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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