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5.02 10:00
국가적 차원 지역별 특성 따른 지원 기준 마련 시급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고립·은둔 당사자 지원에 있어 정책이나 예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입니다."
백희정 광주광역시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 센터장의 어조는 부드럽고 담담했지만, 두 눈에는 굳센 의지와 신념이 엿보였다.
과거 여성민우회에서 성폭력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하다가 고립 청년 관련 사업에 뛰어드는 등, 그의 이력에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행보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일까. 백 센터장은 아무한테도 마음을 열지 않고 굳게 입을 닫아온 고립·은둔 외톨이들로부터 많은 도움이 됐다는 한마디를 들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백 센터장은 "고립·은둔 당사자들이 스스로 '이러면 안 되겠다'고 자각하고 세상으로 나오게 정보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에 센터도 이들이 사회가 본인들을 배척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상담과 당사자들의 자율공간을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가족이나 지인들도 이들에 대한 설득이 쉽지 않다고 존재를 숨기거나 방치하려고만 하지 말고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게 적극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인은 한사코 부정하지만, 광주시가 지난 2019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 지원조례를 제정한 것은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악조건 속에서도 동분서주한 백 센터장의 공로가 컸다. 이후에도 그는 광주에서만 100명이 넘는 은둔형 외톨이를 발굴,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지원 중이다.

하지만 백 센터장은 갈 길이 멀다고 손사래를 쳤다. 아직 우리 사회는 고립·은둔형 외톨이를 함께 걸어가야 할 똑같은 대한민국 구성원이 아닌, 단순 사회 부적응자로만 규정하는 시대착오적 시각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그는 "광주광역시 공무원들은 은둔형 외톨이 증가가 사회적인 문제이며, 외면했을 시 얼마나 막대한 사회비용과 국가경쟁력 손실로 이어질 것인지 지속적으로 설득해 와서 잘 이해하고 있다"며 "그러나 큰 그림을 그리고 이들을 지원해야 할 중앙정부 및 국회는 이제 시작 단계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백 센터장에 따르면 한국은 고립·은둔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에 대한 기준부터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다.
우선 관련 조례가 세워진 광주시는 은둔형 외톨이란 3개월 이상 자신의 방이나 집에서 나오지 않는 등 대인관계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로 사회·경제·문화 등 구조적 요인이 원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3개월이 아닌 6개월 이상 틀어박힌 경우를 고립·은둔형 외톨이(현지에서는 히키코모리)로 규정하고 1970년대부터 관련 대책을 마련해 왔다.
하지만 국내 다른 지자체의 경우 관련 기준이 아예 없거나, 생긴 지 얼마되지 않아 혼선을 빚고 있다. 이들은 광주광역시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를 롤모델로 사업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다만,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은 제대로 된 고립·은둔 외톨이 통계에 대한 전수조사는 물론 그 결과에 따른 정책적 지원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백 센터장은 "고립·은둔 당사자는 대인관계를 포기했고, 대부분의 가족과 지인도 그 존재를 숨기려고만 하기에 발굴작업이 어렵다. 또한 발굴 후에도 몇 개월이 아닌 수년간 지원하면서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면서 "그러나 중앙정부를 포함해 대부분의 지자체는 추정치에 가까운 장부상 통계만 보고 '100명 안팎이면 심각하지 않네'라는 식으로 단기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24년 국내 고립·은둔형 외톨이는 24만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백 센터장이 전한 현 실태를 고려하면, 실제 도움이 필요한 고립·은둔형 외톨이는 수만, 수십만명이 될 수 있다.
백 센터장은 본인 포함 20여 명의 상담사와 함께 지난 3년간 광주에서 115명의 고립·은둔형 외톨이를 발굴하고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본인이나 가족의 의지가 없어 발굴 못 한 고립·은둔형 외톨이는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고, 어렵게 발굴하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 중장기적인 케어가 필요한 것을 고려하면, 현재의 인력과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의견을 말했다.
또한 어렵게 발굴한 고립·은둔형 외톨이라도 중장기적 케어가 제한된 현실에 또 절망해 사회화를 포기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그는 "현실이 이렇지만 중앙정부와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 사회화 성과로 인력과 예산 지원 여부를 판단하니 아쉬울 따름"이라고 했다.
아울러 백 센터장은 "천신만고 끝에 정책적 지원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각 지역 인구 분포나 연령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나마 현재 이뤄지고 있는 고립·은둔 외톨이에 대한 정부·지자체 지원은 19~34세 청년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그는 고립·은둔의 원인이 청소년 시절 학교에서 받았던 따돌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을 볼 때, 10대 청소년에 대한 중장기 사회화 프로그램 및 혜택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젊은층이 거의 없는 농촌 지역 등의 경우, 40대 이상 중장년층 고립·은둔 외톨이 지원에 대한 기준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백 센터장은 "쉽지 않은 길인 만큼 두려움과 부담이 컸지만, 앞으로 무조건 더 잘해야겠다는 막연한 다짐보다는 현실을 고려해 고립·은둔 당사자들에 대한 지원 방향성을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한 사람 한 사람 특성에 맞게 촘촘한 케어를 지향하는 한편, 복지 연관 기관 및 단체와도 협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백희정 광주광역시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 센터장은
2010년대 광주여성민우회 대표로서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활동해 왔다. 이후 광주청년센터장 및 (사)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상임이사를 역임하면서 지역사회 발전 및 은둔형 외톨이 지원에 힘써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