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05.17 14:00

트럼프 행정부, 값싼 中 제치고 HD현대·한화오션에 '러브콜'
건조 부문보다 단가 낮아…"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서 바라봐야"

존 필린(오른쪽 첫 번째부터) 미국 해군성 장관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난 4월 30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유콘'함 MRO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한화오션)
존 필린(오른쪽 첫 번째부터) 미국 해군성 장관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난 4월 30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유콘'함 MRO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한화오션)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한때 조선 업계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선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이 HD현대와 한화오션 주도로 올해부터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대형 조선사들이 그동안 해당 사업을 영위 안 한 것은 아니나, 선박 건조 부문 대비 단가가 낮고 인건비 대비 사업성이 낮아 창정비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조선 하청업체들이 주도해 왔다. 그나마도 중국·동남아 업체들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렸었다.

그러나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24년부터 자국 국방력 강화 및 중국 조선업 견제 차원에서 조선 강국인 한국에 수상함 및 수중함 MRO 관련 '러브콜'이 이어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17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이상균 HD현대중공업 대표와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는 지난 16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났다. 비공개 회동이라 자세한 사안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양사 대표는 이 자리에서 미국 상선 및 군함 건조와 MRO 협력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에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도 그리어 대표와 만나 ▲공동 기술개발 ▲선박 건조 협력 ▲기술 인력 양성 등을 논의했다.

이같은 회동들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고위급 통상 협의 직전 이례적으로 미국 측에서 먼저 요청해 별도로 성사됐다는 점에서 양사는 추후 관련 사업 수주를 기대하고 있다.

이미 한국과 미국은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26차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에서 또 함정 MRO 협력에 공감대를 이룬 바 있다. 미국 국방부 장관도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으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사업장을 둘러보기 위해 방한하기도 했다.

현재 MRO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업체는 한화오션이다. 한화오션은 미국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MRO의 잠재력을 깨닫고 사업 영위를 위한 '도크' 확보 차원에서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같은 해 11월에는 국내 조선업계 최초로 미 해군 군함 2척(윌리쉬라호 및 유콘호)에 대한 MRO를 수주했다. 방산 수주 특성상 계약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척당 200억~3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상선 부문 대형 컨테이너선이나 고부가가치 특수선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건조 단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나, MRO 사업으로만 한정한다면 세계 최대 수주 규모다. 이미 윌리쉬라호는 정비를 마치고, 3월 출항했다. 유콘함도 이달 말 정비 완료 예정이다.

한화오션은 이에 그치지 않고 최근에는 성동조선해양·SK오션플랜트 등 부산·경남 토착 조선사들과 손잡고 인도·태평양 지역 최고를 목표로 하는 MRO 허브 구축에 나서기로 했다. 한화오션은 연내 미국에서만 5척의 MRO를 추가 수주할 계획을 세웠다.

울산 HD현대중공업 야드. (사진제공=HD한국조선해양)
울산 HD현대중공업 야드. (사진제공=HD한국조선해양)

HD현대 조선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HD현대중공업·HD현대삼호중공업·HD현대미포조선)은 아직까지 미국으로부터 MRO 수주 실적은 없다. 그러나 오래된 함정 설계와 건조 기술력, 선박 개조와 디지털 유지보수 솔루션을 전문으로 맡는 계열사 HD현대마린솔루션을 앞세워 올해부터 미국에서 2척의 MRO를 수주할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당초 HD한국조선해양은 국내 기업과 소규모 MRO 계약을 체결해 왔을 뿐, 미국과 큰 거래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지난해 7월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 때만 해도 "동남아 조선소와 미국 MRO 경쟁을 해야 하는데 우리 쪽 비용이 높아 사업성이 상당히 낮다"고 밝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조선에 호황기가 다시 온 만큼 상선 및 특수선 건조를 위한 도크도 부족한데, 건조보다 사업 규모가 작은 MRO를 위해 도크를 비우기에는 고정비 리스크도 따른다. 하지만 올해 초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고 난 후 한국 조선업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통상 방산 MRO 규모는 방산 건조 능력을 따라가기 때문에 HD한국조선해양도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셈이다.

조선 전문가들은 글로벌 함정 MRO 시장이 지난해 78조7000억원 규모에서 오는 2029년에는 86조7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세계에서 함정 MRO 규모가 큰 곳은 역시 국방력이 제일 높은 미국인데, 금액으로는 20조원 규모에 달한다.

거제 지역 한화오션 하청업체 한 관계자는 "미국 MRO 시장 진출로 얻는 회사의 금전적 이득보다는 지역경제 활성화 등 큰그림을 봐야 한다"면서 "한화오션 윌리쉬라호 및 유콘호 MRO 사업으로 미군들이 거제시 호텔 등에 머무르면서 조선업 침체로 다 죽어가던 숙박·요식업종에 활기를 불어넣고, 일자리를 잃었던 과거 조선업 종사자들도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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