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7.17 17:59
경기도 83개 기관 참여, 3년간 시범사업 운영
기업당 2000만원 컨설팅·시스템 구축비 지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경기도가 전국 최초로 주 4.5일제 시범사업을 본격 시작하며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과연 임금 삭감없이 주 5시간의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지 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경기도는 홍보자료를 통해 "0.5일의 효과는 대단하다"며 "노동자에게는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활력을 높이고, 기업에게는 높은 생산성과 우수 인재유치로 경쟁력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주 4.5일제를 어떻게 운영해야 노동자와 기업에게 모두 유익함을 줄 수 있을 지 짚어봤다.
◆경기도, 주4.5일제 시범사업…기업당 최대 2000만원 지원
우선 경기도가 기획한 '주 4.5일제 시범 사업'부터 살펴보자. 경기도는 이 사업을 2025년 3월부터 2027년 12월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노동시간 단축 시범사업으로 계획했다.
도내 67개 민간기업과 경기콘텐츠진흥원 등 공공기관 1곳 등 총 83개 기관이 참여하며, 근로자 1인당 월 최대 26만원의 임금 보전 장려금을 지원받는 것으로 설계했다. 노사 합의를 통해 주 4.5일제(요일 자율 선택), 주 35시간제, 격주 주 4일제, 혼합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사업대상은 도내에 소재한 상시근로자 5인 이상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 중 주 4.5일제 도입을 희망하는 기업이다. 이 제도의 도입이 화제가 된 이유는 '임금 삭감없이 주 5시간의 노동시간을 단축하며,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고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며 기업당 최대 2000만원의 컨설팅 및 시스템 구축비를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급진적 접근 시 '사회적 반발·실효성 없는 행정' 남길 우려
주 4.5일제를 둘러싼 논의는 생산성 제고 여부, 임금 보전 가능성, 직무별 수용성, 업무 재배분 방식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실증적 분석 없이 정책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 강도와 성과 압박이 높아질 수 있는 구조,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 산업별 적용 격차 등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현실적 대안 없이 제도 도입만 강조하는 접근은 노동시장에 혼란과 불균형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노동문제 전문가들 중 상당수는 근로시간 단축은 물리적 시간만 줄인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고 실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생산성 혁신, 업무 프로세스 개선, 고용 구조 개편, 조직문화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제도만 앞세운 급진적 접근은 사회적 반발과 함께 실효성 없는 행정만을 남길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 예컨대 주 4.5일제를 실시하더라도 명확한 생산성 근거나 고용 구조 분석 없이 막연히 '일을 줄이면 삶이 좋아질 것'이라는 당위론적 접근에 머물게 될까를 우려하는 것이다.
즉, 임금 보전 여부, 업무 재배분 방식, 직무별 적용 가능성 등에 대한 검토 없이 제도 도입만 앞세운 정책은 오히려 노동시장 불균형과 고용 불안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진단이다.
◆생산성 제고 없는 근로시간 단축, 경제 전체에 부담
한국은 근로시간은 많은 편이지만,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4.64달러로 미국(97.05달러)이나 독일(93.81달러), 프랑스(88.15달러) 등 국가의 절반을 간신히 웃도는 수치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무일수 단축만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줄어든 근무일수를 보완하기 위해 인력을 추가로 채용하거나, 기존 인력의 초과근무와 보상체계를 재설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이는 직접 비용 증가뿐 아니라 경영 불확실성과 의사결정 리스크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인건비 비중이 높아 고정비 상승에 민감하며, 법정근로일수 감소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하다. 거시적으로도 이러한 제도 변화는 투자 위축, 채용 축소, 국내 고용환경의 경직성 심화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곧 국내외 기업의 이탈 요인이 될 수 있다.
◆노동시간 유연성·자율성 확대 필요
획일적인 주 4.5일제 도입은 한국의 산업 구조와 고용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오히려 현장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가가 똑같은 근무일 수를 강제하는 법제화가 아니라, 업종별·직군별·기업 규모별로 현실에 맞는 맞춤형 유연근무제를 확산하는 것이다.
이미 근로기준법 상에 선택적 근로시간제, 탄력적 근로시간제, 재량근로시간제 등 다양한 제도가 마련돼 있고, 주 52시간제 이외에도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법적 장치들은 존재한다.
핵심은 법제도의 부재가 아니라, 중소기업들이 실제 도입할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특히 중소기업은 유연근무제 운영을 위한 전산 시스템이나 관리 인프라가 부족하고, 제도를 실제로 운용할 수 있는 역량 자체가 제한적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제도를 도입했더라도 근로시간 자율성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거나, 시범적으로 운영된 재택근무·시차출퇴근제를 활용한 근로자가 인사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례도 있다.
따라서 주 4.5일제 도입보다 현행 유연근무제(선택적·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더 우선순위가 돼야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