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7.18 18:01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1987년 뉴베리상 수상작인 시드 플라이슈만의 아동소설 '왕자와 매 맞는 아이(The Whipping Boy)'는 18세기 영국 사회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잘 보여준다. 말썽꾸러기 왕자인 호러스를 대신해 매를 맞아주는 '휘핑보이' 지미를 통해서 인간의 보편적 욕망과 심리적 공감대를 자극한다.
지난달 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던 풀무원 집단식중독 사고 소식에 불현듯 왕자와 매 맞는 아이가 생각났다. 보건당국의 사건 경과 발표에 귀를 세웠고, 취재를 해보니 이 사건은 여전히 매 맞는 아이가 따로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잘 알다시피 2006년 6월에 벌어진 CJ푸드시스템(현 CJ프레시웨이)의 학교급식 집단식중독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회사 이름이 바뀌고, 학교급식을 위탁에서 전면 직영체제로 돌릴 정도였다. 당시 쏟아지는 지탄에 CJ푸드시스템 대표가 연신 머리를 숙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이다.
흥미로운 점은 사고 당시에 그렇게 비난이 쏟아졌던 분위기가 이후 벌어진 과정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 사건은 나중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보건당국의 역학조사에서도 식중독균의 구체적 감염경로와 오염원을 명확히 규명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런 결론과 상관없이 학교급식은 직영으로 바뀌었고, CJ푸드시스템은 회사 존폐를 걱정할 정도의 막심한 피해를 봤다.
웃지 못할 사실은 이것만이 아니다. 식중독에 걸려 실제 치료를 받은 학생이 소수에 그쳤지만, 군중심리에 휩쓸린 수많은 학생이 식중독을 호소하며 언론에 '뻥튀기' 수치가 보도된 것이다. 더욱이 식자재 공급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어도 학교 측의 식자재 보관이나 처리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었다. 일종의 '마녀사냥'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풀무원 식중독 사고도 그때와 비슷한 흐름이다.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풀무원에 너도나도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특히 식품제조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공급한 곳 대다수에 식중독 환자가 발생하는 것이 마땅하나, 2만7000여 개의 빵에서 200여 명만 식중독 의심 증상이 발견됐다. 이는 식품의 유통이나 보관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개연성을 가진다. 그럼에도 합리적 의심은 관심도 없다는 듯 다른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보건당국의 언론 발표일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난달 현충일(6일) 전날인 5일 오후 늦게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담당자는 싹 퇴근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질병관리청 대변인의 유선통화는 매우 어려웠고, 담당부서는 한술 더 떠 유선전화를 고의로 끊어버리는 일까지 겪은 터다.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결국 이러한 일의 배경이 관계당국의 성과 쌓기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언론에서 주목을 받으면 일을 잘하고 있다는 이상한 성과로 인식돼 역학조사 결과가 뒷전으로 취급받는 실정"이라며 "제조공급업체들은 역학조사가 나오기 전에 집단 식중독 사고의 주범이라는 누명을 쓰기도 하지만, 감히 관계당국에 피해보상 소송은 꿈도 못 꾼다"고 언급했다.
이 정도면 정부 당국의 '식중독 카르텔'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여름철 불청객으로 피할 수 없는 식중독 사고가 주먹구구식으로 다뤄진다면 억울한 피해자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버틸지언정 리스크에 취약한 중소기업은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선진국의 식중독 사고 대처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거나, 언론의 주목을 성과로 보는 적폐를 일소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