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성민 기자
  • 입력 2025.07.29 17:30

[뉴스웍스=박성민 기자]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이재명 대통령이 신뢰받을 수 있는 건강한 주식시장을 만들겠다며 직접 한국거래소를 찾아 강조한 말이다. 지난달 3일 신정부 출범 당시 2698.97포인트였던 코스피 지수는 50일 만에 17.96% 급등한 3183.77을 기록했다. 역대 정부 출범 이후 50일 동안 코스피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시장이 빠르게 반응한 건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공언해 온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 공약이 현실화될 것이란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상법 개정,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 그동안 정치적 부담으로 미뤄져 온 제도 개혁이 본격 추진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도 부풀고 있다. 

그러나 시장을 떠받칠 제도적 신뢰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최근 언론과 금융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난 자본시장법 위반 사례들이 그 증거다.

지난달 수면 위로 떠오른 '기자 선행매매' 사태는 그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증권부 기자들이 보도 직전 특정 종목을 매수한 뒤, 특징주 기사를 통해 주가를 띄우고 차익을 실현한 정황이 무더기로 포착됐다. 

기자라는 지위를 남용해 자본시장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한 정황은 공공성과 신뢰를 핵심 자산으로 삼는 언론의 존재 이유를 뿌리째 흔들었단 점에서 충격이 컸다. 한국기자협회는 "남의 허물을 들춰 공론화하면서 정작 제 눈의 들보는 애써 못 본 척하는 언론"이라며 "이들이 어떻게 권력의 감시자, 사회적 공기를 자임하겠는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탈이 언론에만 국한되지 않았단 점이다. 이달 NH투자증권은 사내 직원이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혐의로 금융위원회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미공개중요정보이용은 자본시장법상 3대 불공정거래 행위에 해당한다. 

메리츠화재 임원 및 전직 사장도 자회사 합병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사들여 부당이득을 취했단 의혹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이들은 지난 2022년 메리츠금융이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100% 자회사로 편입해 합병한다는 정보를 사전에 파악한 뒤 주식을 매입, 공식 발표 이후 주가가 급등하자 수억원대 시세 차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잇따른 자본시장법 위반 사례는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정보를 독점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 이를 본인의 사익 추구에 이용했단 점이다. 이는 단순한 법 위반을 넘어, 공정한 시장질서를 훼손하고 자본시장 신뢰를 송두리째 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재명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자본시장 개혁의 골자는 '투명성'과 '신뢰'다. 외국인 투자 유입, 기관 자금의 주식시장 잔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정책이 모두 자본시장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오는 30일 금융당국은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대응과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을 출범시킨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 내부에서조차 기본 윤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제도 개혁도, 정책 효과도 허울뿐인 울타리가 될 뿐이다. 

시장 신뢰는 실적이나 지수처럼 수치로 계량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수년간 쌓아온 공신력이 단 한 번의 일탈로 무너지면, 탑을 다시 쌓는 데 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다. 이는 그동안의 사례를 통해서도 명백히 드러난 결과다. 

지금 자본시장에 필요한 건 스스로를 단속하고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는 '내부의 힘'이다. 신뢰는 자본시장의 가장 오래된 성장 엔진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주가지수 5000'시대를 공약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새 기름을 붓기보단, 미처 살피지 못한 곳곳의 구멍부터 틀어막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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