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7.31 18:08

[뉴스웍스/세종=정승양 대기자] "100만명의 촛불시위 사진을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상무부 장관한테 보여줬습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이번 미국과의 한미 관세협상에서 쌀·소고기 등 농축산물 추가 개방이 제외됐던 배경에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사진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 양국은 이번 관세협상에서 최대 쟁점으로 꼽혔던 쌀과 소고기 개방은 제외하는 데 합의했다.
여 본부장은 31일 미국 워싱턴 D.C. 현지에서 국내 언론과 온라인으로 진행된 '한미 관세협상 결과'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후일담을 전하며 "과거 광우병 촛불시위 등 한국 농산물이 민감하다는 것을 미국 측에 집요하게 설명하고 설득, 그 부분은 방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측은 관세협상 초기부터 한국 측에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와 쌀 수입 등 농산물 추가 개방을 강하게 요구했다. 여 본부장은 "미국은 ‘일본·중국·대만 등도 30개월령 이상의 소고기를 수입하고 있다’며 한국의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을 계속 압박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한미FTA로 한국 시장의 99.7%가 개방돼 미국의 농산물이 이미 한국에 많이 들어와 있고, 한국 소고기 수입 시장에서 미국산이 점유율 1위인 점, 농산물은 한국에서 매우 민감하다는 점 등을 집요하게 설득했다.
그러나 미국 측은 소고기 추가 개방 요구를 거두지 않았고, 이때부터 여 본부장은 광우병 촛불시위 사진을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그만큼 농산물 시장 개방은 한국에 정치적·정서적으로 민감한 주제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사진을 미 측에 보여주며 적극적으로 설득한 것이 효과를 냈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여 본부장은 재계 총수들의 측면 지원도 협상 타결에 도움을 줬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계와 협상 과정에서 긴밀하게 정보를 공유했다"며 "재계 관계자들이 미국 정재계 인맥을 총동원해 민관 총력체제로 대응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소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이번 한미 관세협상 지원 차 미국으로 출국했다.
한편, 여 본부장은 미국 측에 약속한 총 35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 중 조선협력펀드(1500억달러)는 이른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조선에 특화해서 우리기업이 미국에 투자하고 현지에서 활동하는 데 지원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든 것은 양국에 윈윈(Win-win)”이라고 언급했다.
한국이 FTA를 들어 미국에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15%로 결정된 배경에 대해서는 “미국 측은 이미 자동차 관세 15%를 마지노선으로 생각했다”며 “앞서 일본이 자동차 관세 15%를 받자, 미국 자동차 노조와 차 업계 반발이 강했던 것도 15%이하로 받아내기 어려운 요인이 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번 관세율 인하 대상에서 철강이 제외된 이유에 대해서는 “일본·EU 딜에서도 철강은 빠졌다”고 언급했다.
여 본부장은 "이번 한미 관세협상에 따라 우리는 앞으로 3~4년간 안정된 환경을 유지할 수 있게 됐지만, 보호주의 확대나 비관세 장벽에 대한 압박은 계속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