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9.01 19:05
중국 공장 운영 차질…"설비 투자 계획 전면 재검토해야"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의 중국 장비 반출 통제, 중국 파운드리 업체의 생산 능력 확대, 그리고 고대역폭메모리(HBM) 가격 하락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1일 관련 업체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은 중국 공장 운영과 설비 투자 계획 재검토에 직면하며, 글로벌 경쟁 심화 속에서 생존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반도체 업체들의 가장 큰 시름은 미국 정부의 미 반도체 장비 중국 반입 허용 철회이다.
미국 행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텔 반도체의 중국 공장에 대한 미국 반도체 장비 반입 포괄 허가를 폐지한다는 방침을 29일(현지시각) 밝혔다. 미국 정부의 연방 관보에는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의 '중화인민공화국 내 검증된 최종사용자 허가 취소'라는 제목의 문서가 게재됐다.
BIS는 수출 관리 규정을 개정해 기존 '검증된 최종사용자'(VEU) 허가 목록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인텔 반도체(다롄)를 삭제했다. 인텔 반도체는 지난 3월 SK하이닉스가 자회사 솔리다임을 통해 인수한 기업으로, SK하이닉스가 실질적인 소유주다.
2007년 도입된 VEU는 신뢰할 수 있는 중국 내 기업을 미리 지정해 미국 기업이 수출 시 개별 허가 절차를 생략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은 그동안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돼 조건부로 규제를 면제해 줬지만, 이 조치를 철회한 것이다.
발효일은 관보 게재일로부터 120일 후로, 4달 간 시간이 있다. 이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중국 반도체 공장에 미국 장비를 도입할 때마다 개별 승인을 받아야 한다.
BIS는 이번 조치로 매년 1000건의 허가 신청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약 495시간 업무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장비의 중국 반입을 전면적으로 막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현재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중국 시안 공장과 패키징을 담당하는 쑤저우 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D램을 생산하는 우시 공장, 패키징을 담당하는 충칭 공장,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다롄 공장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 운영에 차질을 빚게 됐으며, 설비 투자 계획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에 따라 중국 공장은 '구형 메모리 생산기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미 정부 간 협상을 진행할 때 정부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4개월간 유예기간을 둬,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라며 "그동안 히스토리를 보면 미국 장비 중국 반입을 금지했다 풀어주고 1년 유예를 반복해, 4개월의 유예기간 동안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한다"며 조심스러운 견해를 밝혔다.
반도체 업계는 미국 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내린 것은 한국 정부와 협상에서 더 유리한 카드를 쥐겠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분석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 추가 투자 계획을 내놓지 않아, 의외라는 평가가 제기됐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교수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업체에 대한 제재가 더 노골화되고 있는데, 이는 경제 안보는 물론 군사 안보와 직결된다"라며 "중국 업체들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 이를 제재한다고 하지만, 미국 반도체 장비 수출을 통제하면 국내 업체들은 손해를 보게 된다. 공장 신규 증설에 큰 제약이 따르고 큰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장비의 중국 반입을 완전히 금지한 게 아니고 건건히 승인을 받도록 해, 절차상 복잡성과 불확실성은 있겠지만,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파운드리 업체들이 'AI 칩 자립화' 추세에 맞춰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하며 삼성전자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인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1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매출 점유율 6%를 기록해 1위인 삼성전자(7.7%)를 맹추격하고 있다. 양사의 점유율 차이는 1.7%에 불과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SMIC는 내년 중으로 7나노 공정 칩 생산능력을 두 배로 확대한다. 7나노 이하부터는 첨단 반도체 공정으로 분류되며, 중국 파운드리 업계에서 가장 첨단 공정으로 분류된다.
또 중국 2위 파운드리 기업인 화홍반도체도 화홍그룹의 또 다른 반도체 계열사인 '상하이 화리마이크로'를 인수하며, 레거시 공정에서 생산능력을 크게 늘리고 있다. 상하이 화리마이크로의 웨이퍼 기준 월 생산 능력은 3만8000개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중국 기업들과 파운드리 협력을 이어왔지만, 고객사들이 SMIC 등 중국 파운드리 업체로 주문을 돌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파운드리 점유율 면에서 SMIC가 중국 내수 물량을 많이 가져가며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며 "삼성 파운드리도 최근 고객사 수주를 많이 하고 있지만, 파운드리 파이가 커짐에 따라 국내 및 중국 업체의 경쟁이 매우 치열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2위 자리를 SMIC에 내주게 될 수 있다.
이종환 교수는 "중국 파운드리 업체들이 생산능력을 늘리는 것은 삼성에 당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삼성전자는 최근 테슬라와 애플 계약을 수주했지만, 당장 매출이 발생하는 게 아니다. 파운드리 점유율은 2위와 3위가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TSMC와 경쟁을 벌여,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삼성전자도 더 많은 고객사를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부터 HBM 시장에서 경쟁이 가열되면서 단가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것도 하나의 위협요인이다. 관련 업계에서도 HBM4 시장에 삼성전자가 새롭게 진입하고 마이크론이 올해는 12단 HBM3E를 소량 공급했지만, 내년에 물량을 크게 늘릴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SK하이닉스는 물론 HBM4 시장에 새롭게 진입할 것으로 보이는 삼성전자에도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내년 HBM 평균 판매가격이 두 자릿수로 하락할 것"이라며 "HBM 평균 판매가격은 올해 대비 10% 하락하고 HBM3E도 30% 떨어질 것이다. HBM4 가격 프리미엄은 이전 세대와 비교해 45%에 그친다"라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SK하이닉스의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를 시장 컨센서스(증권사 평균 전망치)보다 19% 낮은 37조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 씨티은행도 SK하이닉스 목표가를 기존 43만원에서 38만원으로 낮췄다. 씨티은행은 보고서를 통해 “내년 HBM 계약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경쟁이 심화할 것"이라며 "SK하이닉스의 내년 HBM 평균 판매가격(ASP) 증가율이 올해 대비 6%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는 여러 업체에서 제품을 수급받기를 원하고 있고, 삼성전자의 HBM4에서 좋은 시그널이 나오고 있다"며 "마이크론도 같이 경쟁하며, 창신 메모리 등 중국 업체들이 내년에 본격적으로 경쟁에 뛰어들어 엔비디아에 납품하는 HBM4 가격이 더 떨어질 수가 있다"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는 새 고객을 확대하는 게 급선무로, 원가 절감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되고 있다.
특히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가 'AI 거품론'을 제기해 SK하이닉스에 더 큰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투자자들이 AI에 과도하게 흥분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AI 기업들 가치가 이미 통제 불능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일부 증권사들은 SK하이닉스 투자 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2026년 영업이익은 45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늘겠지만,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올해 37.6%를 고점으로 내년부터 30% 초반대로 낮아져 ROE를 높일 만한 투자 집행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또 "HBM 점유율 확대가 동반되지 않는 현시점에서 추가적 설비 투자는 수익성과 배치된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