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일영 기자
  • 입력 2025.09.24 13:51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유족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유족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뉴스웍스=손일영 기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인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향년 7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김 이사장은 평소 지병이 있었고, 이로 인해 최근 급격히 건강이 나빠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1950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부친을 도와 민주화운동을 했다. 1960년대 상경해 경희대학교를 졸업했지만, 당시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의 감시로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했다.

1976년 김 전 대통령이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투옥될 때는 적극적으로 구명 운동을 펼친 바 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 시절을 같이 보내며 '미주인권문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했다. 이를 통해 한국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있다.

김 이사장은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 역할도 해냈다. 그는 1987년 귀국 후 정치 홍보·기획사를 설립해 1997년 김 전 대통령 대선 당선에 기여했다. 당시 인기 그룹 'DJ DOC'의 노래를 개사한 'DJ와 함께 춤을'이라는 선거 광고를 기획한 것이 김 이사장이었다.

김대중 정부 말기에는 권력형 비리 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고인은 2007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제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부친을 따라 의정 활동을 펼쳤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재단법인 김대중기념사업회(김대중재단)을 설립했다. 이어 2019년 모친인 이희호 여사 서거 후에는 대중평화센터 이사장직을 맡아 김 전 대통령의 평화·인권·화해 협력 정신을 계승하는 데 집중했다.

고인의 별세로 김 전 대통령의 세 아들 중 막내인 김홍걸 전 의원만 남게 됐다. 앞서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은 군사정권 시절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장기간 투병하다가 지난 2019년 4월 20일 별세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측은 "김 이사장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신중한 성품으로 아버지의 영광 뒤에서 모든 고난을 함께 짊어졌던 아들이자, 민주주의를 향한 험난한 여정의 동지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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