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9.30 00:27

[뉴스웍스=박광하 기자] 감사원으로부터 노후 장비 방치와 안일한 관리를 경고받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에서 약 한달 만에 화재가 발생해 정부 시스템 647개가 마비됐다. 반복된 전산 장애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됐던 부실한 관리 체계가 결국 물리적 재난으로 이어지며, 감사원의 경고가 현실이 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감사원이 29일 공개한 '대국민 행정정보시스템 구축·운영실태'에 따르면 국민의 생활 편의를 높이기 위해 구축된 행정정보시스템이 오히려 반복되는 장애와 부실한 관리로 인해 국민의 불편을 초래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후 장비에 대한 안일한 관리와 장애 발생 시 초기 대응 실패, 신규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의 총체적 부실도 문제점으로 확인됐다. 특히 2023년 11월 17일 국가정보통신망 마비로 인해 '정부24' 등 189개 행정정보시스템에 동시다발적인 장애가 발생하며 전국적 행정 혼란을 초래한 바 있다. 관제시스템 오류 메시지도 관제하지 않는 안일한 관행과 노후 전산장비를 고쳐가며 오래 쓸수록 오히려 내용연수가 늘어나는 불합리한 제도가 복합돼 발생된 사건이었다.
국정자원의 관리에 문제가 있어 대규모 장애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경고는 감사 보고서 공개보다 앞서 현실이 되고 말았다. 허술한 관리 체계 속에서 운영되던 국정자원은 26일 화재 사고를 겪으며 전국적 행정 시스템 마비를 초래했다.
국정자원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발생한 820건의 서비스 중단 장애 중 절반 이상인 482건(58.8%)이 소프트웨어 오류로 발생한 것을 확인하고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감사 기간에 발생한 원인 불명 장애가 2021년 10건에서 2023년 34건으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이는 소프트웨어 관리와 운영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요 전산 장비의 노후화가 심각한데도 내용연수가 늘어나는 불합리한 규정 때문에 노후 장비 교체 예산 편성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이 반복돼 온 사실도 드러났다.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의 내용연수는 2008년 5년에서 2022년 7년으로 늘었다. 이는 노후 장비를 교체하는 대신 유지보수 비용만 지속적으로 투입하게 만드는 원인이 돼 재정 낭비와 함께 시스템 안정성 저하를 불러왔다. 노후 장비는 화재 위험성도 높아지는데, 이러한 위험 요소를 방치한 결과가 26일 화재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국정자원의 관리 부실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전반에 걸쳐 있었다. 장비 제조사가 배포하는 최신 보안 패치 파일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이러한 보안 허점은 외부 공격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시스템 내부의 잠재적인 오류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부 주요 전산 장비는 관제 시스템과 연동되지 않아 장애 발생 시 신속한 파악과 대응이 어려운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이는 장애 발생 시 초기 대응을 늦추고 피해를 키우는 주요 원인이 된다.
보고서는 특히 국정자원이 시스템 관리 소홀로 인해 총 57건의 전산 장비 관련 장애를 발생시켰다고 지적하며 관리의 총체적 부실을 꼬집었다. 이러한 관리 소홀은 화재 예방 체계에도 악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 전산 장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조직이 화재 안전 관리를 철저히 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국정자원 원장에게 노후 장비의 내용연수 개선을 건의하고, 소프트웨어 패치 관리 체계를 정비하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전산 장비와 관제 시스템 연동 관리를 철저히 해라고 통보했다. 행정안전부 장관에게도 대국민 행정정보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할 경우 신속하게 사실을 공표하고 대체 웹사이트 등을 안내하는 장애 대응 업무를 철저히 해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을 담은 보고서가 작성된 지 한 달여 만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권고 사항이 제대로 이행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