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10.02 10:53

[뉴스웍스=박광하 기자]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 발생 일주일이 지났지만 국가 전산망 복구 작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2일 오전 6시 기준 전체 647개 행정정보 시스템 중 110개가 정상화돼 17.0%의 복구율을 기록했다. 화재로 공무원 12만5000명의 업무자료 858TB가 영구 소실됐으며, 완벽한 DR 시스템 구축에 최대 1조원이 필요하다. 화재보험은 유형자산만 보상해 무형 손실은 국민 부담으로 전가된다.
◆공무원 12만5000명 업무자료 858TB 영구 소실
화재 피해는 단순히 전산 장비의 물리적 손실을 넘어 디지털 행정의 근간을 뒤흔드는 무형의 손실을 초래했다. 가장 심각한 피해는 중앙부처 공무원 약 12만5000명의 개인 업무자료가 저장돼 있던 정부 클라우드 서비스인 'G드라이브' 데이터의 영구 소실이다.
화재로 G드라이브 서버가 완전히 불에 탔으며, 행안부는 이 서버가 별도의 외부 백업 체계가 미흡해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공식 확인했다. 8월 말 기준 G드라이브에 쌓인 데이터는 858TB에 달하며, 이는 A4 용지 184억2555만장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이다.
정부는 결재가 완료된 공문서는 온나라시스템에 저장돼 복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으나, 공무원들이 업무 초안이나 참고 자료 등 비공식적이지만 필수적인 자료를 G드라이브에 의존해왔던 만큼 장기적인 업무 효율성 저하와 기록 보존 측면에서 막대한 손실이 예상된다.
◆안전규정 위반한 '최저가 외주' 작업이 화재 원인
화재는 지난달 26일 오후 8시 16분께 국정자원 대전 본원 5층 전산실 내 리튬이온 배터리 교체 작업 중 발생했다. 조사 결과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작업 과정에서의 전기적 문제와 안전관리 미흡으로 인해 발생한 명백한 인재였다.
이재용 국정자원 원장은 국회 현안 질의에서 안전 규정 위반 사실을 직접 시인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교체 작업 시 권장되는 충전 용량 지침(30% 이하)을 어기고 약 80% 충전 상태에서 작업이 진행됐으며, 현장 협의를 이유로 화재 위험 구역을 소방 점검 대상에서 제외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국정자원은 '적격심사 후 최저가 낙찰' 방식을 채택했는데, 이 방식은 전기공사업 면허 등 최소한의 자격 요건만 충족하면 기술력보다 가격 경쟁을 통해 사업을 수주하는 구조다. 그 결과 기술력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대전 소재의 영세 업체가 선정됐다.
이같은 사업추진은 안전 규정 미숙지 및 미준수라는 직접적인 화재 원인을 제공했다. 비용 절감 논리가 국가 핵심 인프라의 안전을 담보하는 전문성을 압도하면서 대규모 디지털 재난의 경로가 설정된 것이다.
◆DR 시스템, 완벽한 구축에 1조원 필요
한국 전자정부의 재해복구(DR) 시스템이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음도 드러났다.
국정자원은 데이터를 원격지 백업센터(광주, 공주)에 복제하는 체계를 갖췄으나, 이는 단순히 데이터 보존을 위한 '패시브 DR' 형태에 불과했다. 재난 발생 시 서비스를 즉시 전환해 재개할 수 있는 실시간 '클라우드 DR' 환경, 특히 두 센터가 동시에 가동되는 '액티브-액티브' 체계가 미흡했다.
이는 2년 전 행정망 마비 사태 이후 정부가 약속했던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당시 정부는 중요 시스템에 대해 네트워크와 방화벽을 포함한 모든 장비의 이중화 및 다중 지역 접근 방식을 적용하겠다고 했으나, 화재 발생 시점에도 이 계획은 여전히 시범 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정부는 사고를 계기로 DR 시스템 고도화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게 될 전망이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국회 행안위 현안 질의에서 국민 생활과 직결된 1등급 정보 시스템 약 30개를 액티브-액티브 방식으로 이중화하는 데만 7000억원이 필요하며, 공주 센터까지 포함해 전면적인 이중화 작업을 진행할 경우 1조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화재보험은 유형자산만 보상…무형 손실은 국민 부담
보험을 통한 위험 전가도 제 구실을 하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국정자원과 같은 '특수건물'은 '화재로 인한 재해보상과 보험가입에 관한 법률'에 따라 건물의 시가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화재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며, 재물 손해배상 책임에 대해서도 화재 1건당 최소 1억원 이상을 담보하는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재난의 재정적 충격은 기존의 화재보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보험금은 소실된 유형 자산(배터리팩 384개, 전산 장비 740대)에 대해 해당 장비의 시가(감가상각된 가치)를 기준으로 산정될 것으로 추정된다. 전산 장비의 노후화와 빠른 기술 교체 속도를 고려할 때, 보험금은 신규 장비 도입 및 1조원 이상의 DR 시스템 구축 비용을 충당하는 데 턱없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 수사 결과 업무상 실화 혐의로 입건된 국정자원 직원 및 외주 업체 관계자 4인에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부과될 수 있지만, 이들이 1조원 이상 국가적 손실을 배상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시민들이 납부한 세금이 복구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 정부 책임론'에 IT 업계 "현 정부가 작업 관리 허술"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국가 전산망 마비의 원인을 "전자정부 1등이라는 타이틀에 안주해 노후 장비 교체와 이중화 구축을 소홀히 한 안이함"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20년 이상 노후된 인프라 문제와 함께 현 정부에서의 관리 감독 소홀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에서는 노후 인프라 구축 책임을 두고 윤석열 정부에 책임을 묻는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IT 업계 내부에서는 이러한 시각에 대한 회의론이 형성돼 있다. 업계는 인프라의 노후화 자체는 연속적인 문제일 수 있지만, 화재를 야기한 결정적인 요소인 허술한 UPS 교체 작업은 현 정부의 관리 감독 하에 발생한 운영상의 명백한 과실이라고 짚었다. 업계 관계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나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이 텔레파시로 작업자를 조종해 화재를 일으킨 것이라면 모를까, 언제까지 전 정부 탓을 할 것이냐"고 꼬집어 말했다.
그는 이어 "장기간에 걸친 정책 실패로 국정자원 전산 인프라에 문제점이 누적된 건 사실"이라면서도 "비전문 업체를 선정한 데다 안전 규정을 위반한 작업자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운영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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