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10.27 12:00

마스가 프로젝트, 현지규제 및 출혈경쟁 등 산 넘어야
정기선으로의 지분 승계 위한 재원 마련도 미완의 과제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27일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문무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Summit) '퓨처 테크 포럼: 조선'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HD현대)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27일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문무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Summit) '퓨처 테크 포럼: 조선'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HD현대)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HD현대가 정기선 회장의 오너경영체제로 재전환했다. 그러나 정기선호가 입지를 굳히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사내 입지 확대의 발판이 돼야 할 미국의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 ‘MASGA(마스가·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는 주력 사업인 조선·방산의 글로벌 리더 도약의 첫걸음인 동시에, 불확실성도 큰 양날의 검이기 때문이다. 

HD현대에 따르면 정 회장은 27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퓨처 테크 포럼: 조선’에서 그룹 주요 전략인 인공지능(AI) 전환과 미국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정 회장은 “AI는 선박의 지속가능성 및 디지털 제조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산업의 경계를 넘어서는 긴밀한 글로벌 혁신 동맹이 필요하다”면서 “HD현대는 첨단 역량을 기반으로 미국 해양 르네상스를 위한 든든한 파트너로 여정에 함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최근 HD현대가 미국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 건조에 협력키로 한 미 최대 방산조선사 헌팅턴 잉걸스 관계자도 참여했다. 이번 정 회장의 행보는 회장 취임 후 첫 외부 공식활동인 데다, HD현대의 사업 확대 의지를 미국에 크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현재 HD현대는 미국 조선업 재건 및 해군력 증강 의지에 발맞춰 마스가 프로젝트에 참여해 시장 잠재력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수주하고, 추후에는 단가가 높은 함정 공동 건조까지 추진하고 있다.

한국 조선 기술 노하우가 절실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수요를 저격해 HD현대의 디지털 및 AI 기반 스마트 조선소 기술을 미국에 전수해 현지 조선소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사업 기회를 확대할 수도 있다. 정 회장이 그동안 헌팅턴 잉걸스 등 현지 유력 기업들과 선박 생산성 향상 및 첨단 조선 기술 협력 등을 위한 파트너십 체결에 앞장서 온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도 분당 HD현대 R&D센터 전경. (사진제공=HD현대)
경기도 분당 HD현대 R&D센터 전경. (사진제공=HD현대)

그러나 미국 투자 확대는 첫걸음부터 만만치 않다. 이재명 대통령이 “여전히 교착 상태”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마스가 프로젝트가 진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는 29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림에도 큰 틀에서 마스가를 포함한 한미 관세 협상은 구체적 투자 방식과 이익 배분 등을 놓고 이견 차가 크다.

정 회장으로서는 추후 대규모 투자 실행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큰 투자 방향이 결정되면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현지 조선소 지분 매입과 인수, 또는 직접 건립 등 생산 거점 확보 방식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미국 규제 환경 변화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100년 이상을 이어오고 있는 미국 내 존스법이 그 예다. 해당법은 미국 내 항구를 오가는 화물 운송은 ▲미국에서 건조 ▲미국 선적에 ▲미국 시민 소유 ▲미국 승무원 탑승 선박으로만 제한한다. 이는 HD현대의 현지 상선 시장 진출을 막는 가장 큰 장벽이나,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해당 규제를 철폐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인력 및 기술 전수도 문제다. 미국 조선소는 숙련된 인력 부족과 높은 이직률을 겪고 있어 HD현대가 생산성을 높이려면 현지 인력을 교육하고 안정화하는 데 3~5년 이상의 상당한 시간과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인 기술 인력 파견을 위해 필요한 미국 비자 정책도 HD현대에 유리하지 않다.

정 회장의 절친이자, 조선·방산 라이벌 김동관 한화 부회장이 이끄는 한화오션과도 경쟁에서 우위를 보여야 한다. 한화오션은 존스법을 우회하기 위해 이미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조선소(필리조선소)를 인수, 미국과 조선업 협력 기반에서는 HD현대보다 한 발 앞서 있는 상태다. 주력인 조선 뿐 아니라 북미 매출 비중이 큰 건설기계 사업(HD현대인프라코어 영위)에서도 미국 건설경기 침체 영향을 감내하면서 초대형 경쟁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수석부회장 시절이던 지난 5월 28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마덱스) 2025' 리셉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HD현대)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수석부회장 시절이던 지난 5월 28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마덱스) 2025' 리셉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HD현대)

사업이 불투명해지면 정 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재원 마련에도 비상이 걸릴 수 있다. 정 회장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주력인 조선업을 중심으로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간 통합도 추진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식적으로 정 회장이 그룹 총수가 되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소유권은 여전히 부친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에게 있다.

현재 정기선 회장의 HD현대 지분율은 6.12% 수준으로, 최대주주인 정몽준 이사장의 26.6%에 크게 못 미친다. 지주회사 체제인 HD현대에서는 지분이 곧 그룹 장악의 핵심인데, 정 회장의 지분율이 낮아 실질적인 지배력은 없는 상황이다. 이는 곧 부친의 지분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몽준 이사장의 지분을 정 회장에게 물려줄 경우, 현행법상 최대 50%에 달하는 상속세 또는 증여세가 발생한다. HD현대의 시가총액 증가로 그 세금 규모는 수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로서는 지주사 및 계열사로부터의 배당금이 주요한 재원 확보 통로로 거론된다.

뿐만 아니라 정몽준 이사장이 보유한 HD현대 지분 중 상당수가 담보로 설정돼 있어 추후 정 회장에게 이를 이전할 경우, 해당 담보대출 구조가 복잡해지거나 대출 상환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승계 과정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기선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과 재원 마련이 필요한 상황인데 우선적으로 미국 시장 진출이 원활해야 하는 것이 당면 과제라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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