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11.09 14:00
베트남 제외 동남아 항공권 가격 하락세…일본·중국은 두 달 새 2배↑
항공사, 일본·중국 노선 확대…4분기 '동남아 포비아' 확산 여부 관건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국내 항공업계가 고환율·공급과잉·수요 위축 삼중고 속에서 연말 실적 반등을 노리고 있다. 최근 캄보디아 사태로 동남아 여행 수요가 위축될 조짐을 보이자, 항공사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일본과 중국 등 단거리 노선 강화로 돌파구 모색에 나서고 있다.
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제주항공·진에어·티웨이항공·에어부산 등 주요 항공사들은 4분기 일본·중국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엔저'와 '안전 프리미엄' 효과로, 중국은 '무비자 입국' 정책으로 수요가 급증해 효자 노선으로 부상했다.
지난달 캄보디아에서 잇따른 범죄 사건이 발생하자 외교부가 일부 지역에 여행 금지령을 내리면서 태국·필리핀 등 인근 국가로 불안감이 확산했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동남아 지역 중에서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베트남만 관광 수요가 회복세를 보이지만, 태국과 필리핀의 항공권 예약률은 약 1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네이버 항공권 검색 결과, 이달 말(28~30일) 출발 기준 동남아 주요 3개 여행지(베트남·태국·필리핀)의 왕복 항공권 가격은 지역별로 차이를 보였다.
인천~방콕 노선은 30만6300원 수준으로 두 달 전보다 3만원가량 저렴해졌고, 필리핀 세부행은 1주 전 16만원대까지 떨어졌다가 이번 주 들어 다시 32만원대로 반등했다. 반면 베트남 하노이는 두 달 만에 28만원에서 61만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고, 다낭(23만→35만원대)과 나트랑(29만→51만원대)도 상승세를 보였다.

일본과 중국 노선은 수요가 급증하며 항공권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서울발 도쿄 하네다 왕복 항공권은 최저가 기준 63만4900원으로, 두 달 전(34만5100원)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운임은 시간대에 따라 70만원에 육박한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오사카 노선도 인천~간사이 구간 기준 18만5602원에서 35만6000원으로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행 항공권도 강세를 보였다. 지난해 말부터 무비자 입국 정책을 시행 중인 상하이의 경우, ‘인천~푸둥’ 노선 왕복 항공권이 같은 기간 20만4488원에서 38만7500원으로 약 90% 가까이 급등했다.
항공사들은 이에 맞춰 일본 주요 도시에 대한 운항을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시키며 단거리 노선 강화에 나섰다.

제주항공은 지난달 26일부터 인천~오사카 노선을 하루 7회로 증편해 국내 항공사 중 가장 많은 운항 횟수를 확보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총 881만7765명으로, 이 가운데 관광 목적으로 방문한 여행객의 77.9%가 2024년 한 해에만 두 차례 이상 일본을 찾았다. 방문 지역 중에서는 오사카가 32.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오사카 노선은 일본 내 여객 수요도 높은 편이다. 제주항공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현지 출발 기준 자사 항공편을 이용해 한국을 찾은 일본인 여행객은 약 47만명으로, 이 중 13만9000명이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출발해 전체의 29.5%를 차지했다. 제주항공은 현재 인천·김포·김해 등 국내 주요 거점공항 3곳에서 오사카 노선을 운항하며 한일 간 최대 운항 편수를 유지하고 있다.
티웨이항공은 같은 날 부산~후쿠오카(매일 2회), 부산~삿포로(매일 1회) 노선을 신규 취항했으며, 내달 20일부터는 제주~후쿠오카 노선도 주 4회(화·목·토·일) 운항한다.

진에어는 일본·괌 등 주요 노선을 대상으로 최대 30%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수요 확보에 나섰다. 일본 오키나와 본섬과 미야코지마, 이시가키지마 등 남부 섬 지역에 모두 취항하는 유일한 국적 항공사로, 일본 최남단 시장 공략에도 나서고 있다.
에어부산 역시 일본 소도시 여행 열풍에 발맞춰 부산~나가사키 부정기편을 재개했다. 지난 10월 운항한 나가사키·도야마 노선은 90% 이상의 탑승률을 기록했다.
중국 노선도 회복세를 보이는 중이다. 정부가 지난 9월 말부터 중국 단체 관광객(유커)에 대한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중국 정부도 한국인 무비자 입국을 내년 말까지 연장하면서 방한 수요가 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인천~쿤밍, 부산~칭다오 노선을 재개하고 인천~푸저우 노선을 신규 취항해 주 4회 운영 중이다. 아시아나항공도 인천~충칭·청두 노선을 매일 운항하며, 다롄·옌지·창춘 등 노선도 증편했다. 저비용 항공사(LCC)들도 인천~칭다오·구이린·웨이하이 등 중국 소도시까지 노선을 넓히고 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동남아 예약률은 크게 변동되는 것은 없다"면서 "일본은 원래부터 수요가 많은 여행지고, 중국은 양국 간 비자 면제로 수요가 늘면서 노선을 늘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공업계의 3분기 실적은 전반적으로 부진할 전망이다. 고환율과 유가 상승, 공급 과잉이 겹치며 수익성이 크게 악화한 탓이다.

이미 실적을 발표한 대한항공은 별도기준 매출 4조85억원, 영업이익 3763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5.5%, 39.2% 감소했다. 매출은 글로벌 공급 증가와 운임 경쟁 심화로 부진했고, 감가상각비·정비비·공항 사용료 등 각종 비용이 늘면서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진에어는 매출 3043억원, 영업손실 22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5% 줄었고,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진에어 측은 "공급 증가 등에 따른 시장 경쟁 심화 영향으로 영업 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했다"며 "계속된 고환율에 따른 전반적 비용 부담 증가와 여행 심리 위축 등 복합적 요인으로 수익 방어에 어려움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가 취합한 아시아나항공의 3분기 실적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매출 1조5800억원, 영업이익 49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5.9%, 62.0%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LCC들도 실적 부진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항공의 영업이익은 168억 원으로 63.9% 감소하고, 진에어는 240억 원으로 40.3% 줄어들 전망이다. 에어부산은 영업이익 150억 원으로 60% 가까이 급감할 것으로 보이며, 티웨이항공 역시 이익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돌파하며 지난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항공업계에 악재로 작용하는 점이다. 3분기 평균 환율은 약 1385원 수준이었으나, 9월말부터는 1400원대를 꾸준히 유지 중이다. 항공사들은 항공기 리스료와 부품, 항공유 등 주요 비용을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환율 상승이 곧바로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대한항공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약 400억원 규모의 외화평가손실이 발생한다. 전체 매출원가의 30%를 차지하는 항공유 역시 달러로 구매해야 해, 고환율이 장기화할수록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증권가에서는 4분기 이후 전망도 낙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객 수요의 증가 폭은 제한적이나, 항공사들의 공급 확대가 이어지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민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인바운드(외국인 입국) 여객이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겠지만, 외항사와 비교했을 때 국내 항공사들의 수혜는 크지 않다"며 "협동체(단일 통로) 중심의 항공기 인도 재개와 LCC 신규 취항으로 단거리 노선 경쟁은 더 심화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항공화물 부문은 국내 반도체 수출 호조로 운임이 비교적 견조할 것으로 예상되며, 항공업종 내에서는 LCC보다 FSC(대형 항공사)의 우위가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LCC 업계에서도 공급 과잉을 우려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 취항 중인 항공사가 12곳으로, 항공산업 사상 가장 많은 수준"이라며 "수요는 완만하게 늘고 있지만 공급이 그 이상으로 확대돼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올해 4분기는 추석 특수로 일시적 수요 증가가 있더라도 전반적으로 비수기 기간이 길어 실적 회복을 낙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LCC 업계는 코로나 이전부터 사드 갈등, '노 재팬' 운동, 팬데믹 등으로 연이어 위기를 겪어왔다. 그럼에도 꾸준히 수익을 지탱해 온 효자 노선이 바로 동남아였다. 여행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동남아 노선이 LCC의 주요 수익원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동남아 포비아' 확산 가능성으로 다시금 위축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4분기 항공업계의 실적을 가를 변수로, 캄보디아 사태로 인한 동남아 포비아가 어느 범위까지 확산하느냐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여파가 캄보디아에 국한될 경우 영향은 제한적이겠지만, 인접국인 베트남·태국 등으로 불안 심리가 번질 경우 단거리 노선 수요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항공업계의 향후 실적 회복 여부는 캄보디아 사태가 동남아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도 "올해는 전년 대비 동남아 탑승률이 예년 수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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