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1.20 11:58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를 찾아 지방행정전산서비스인 새올지방행정정보시스템, 주민등록시스템, 행복이음 등에 대한 정상작동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행안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를 찾아 지방행정전산서비스인 새올지방행정정보시스템, 주민등록시스템, 행복이음 등에 대한 정상작동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행안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중앙정부의 온라인 민원 서비스로서 모든 국민이 활용하는 ‘정부24’와 지방정부 공무원이 쓰는 행정전산망 ‘새올’에서 17일 오전 8시40분쯤 장애가 발생, 하루종일 민원서류 발급이 모두 중단됐다. 지자체마다 전자문서 결재와 각종 자금 결제도 모두 정지됐다. 국민들은 주민등록 등·초본과 인감증명서 발급이 되지 않아 발만 동동 굴렀다.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정부’를 구축, 운영하고 있다고 떠벌려온 정부의 민낯이 까발려진 것이다.   

지방행정전산망 장애로 업무가 전면 마비되는 디지털 재난 사고가 터졌는데도 정부 대처는 너무 느렸다. 전자정부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당일 오후 광역시도 관계자들과 단체 카톡방에서 대응방안을 논의한뒤 오후 5시께 ‘시스템 장애로 처리되지 못한 민원은 시스템이 정상화되는 즉시 민원인이 신청한 날짜로 소급 처리해달라’는 요지의 공문을 광역시도에 보냈다. 고기동 차관은 당일 오후 6시 행안부 관련 실·국장, 국가정보관리원, 한국지역정보개발원 등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상황점검회의를 주재했다.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대책본부 1차 회의는 당일 저녁 9시30분에야 대전에 있는 국가정보관리원에서 열렸다. 비상사태가 터졌는데도 즉각 대응 조치는 이뤄지지 못한 이유는 평소 이런 상황에 따른 매뉴얼이 아예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난안전 총괄부처로서 위기상황에 대한 평소 대비가 부실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행안부는 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도 재난문자조차 발송하지 않았다. 작년 10월 카카오톡 서비스가 이뤄지지 못하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복구 상황 등을 알리는 재난문자를 3차례나 보낸 것과 비교가 됐다. 카카오 먹통 사태와 비견될 만한 전산사고인데도 '쉬쉬'한 셈이다.

행안부는 17일 오후 늦게서야 ‘금일 정부서비스장애로 인한 불편처리 안내’,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대책본부 가동, 시스템 정상화 총력 대응’이란 보도자료를 냈다. 정작 서비스장애 발생을 알리는 자료는 내놓지 않았다. 정작 ‘1보’ 고지를 꺼린 셈이다. 민간기업의 잘못에는 군기잡기에 나섰던 정부가 정작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자 숨기려고 급급했다는 비판을 사기에 충분하다.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정상화'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행안부)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정상화'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행안부)

행안부는 ‘정부24’ 민원서비스 시스템이 18일 오전 9시 재개이후 원활하게 작동 중이고 ‘새올’ 지방행정정보시스템도 18일 오후 3시부터 양호한 상대로 회복되었다고 19일 밝혔다. 16일밤 업데이트 과정에서 오류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업데이트 이전으로 데이터베이스를 돌려놓는 ‘패치업 롤백’ 작업을 수행한 덕분에 시스템이 되살아난 것이다.

행안부는 최소 24시간 이상 전산망이 멈춘 이유와 관련, “새올에 접속하는 GPKI인증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증시스템의 일부인 네트워크 장비 L4 스위치에 이상이 있어 18일 새벽 교체했다”고 밝혔다. L4는 네트워크 중에서 부하를 분산하는 네 번째 층을 말한다.

다만 네트워크 장비 문제였다는 행안부의  설명은 의구심을 낳는다. L4 스위치를 바꿔 끼우는데 1~2시간 이상 충분하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기 때문이다. 행안부와 관련 업체가 잘못을 감추거나 축소하기 위해 이런 핑계를 내세웠다는 해석도 나온다. 특정 장비가 문제라고 언급할 경우 해당 업체의 거센 반발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전산망은 이중화, 삼중화 설비를 갖춘다. 한쪽 라인에서 장애가 발생해도 다른 라인은 정상 작동되도록 백업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평소보다 속도가 크게 느려지지만 서비스 제공은 가능하다. 이번 전산망 접속 장애는 이런 체제가 동시에 멈추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물론 네트워크 장비도 공산품인만큼 고장이 날 수 있다. 그렇다고 동시에 양대 라인 접속이 끊기는 사태가 발생할 확률은 낮다.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2005년 개발된 새올 시스템의 취약성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와 관련, 행안부는 “17일에는 이중화된 두 개 장비가 차례로 계속 문제를 일으켜 장애가 발생했다”고 해명했지만 신뢰가 가지 않는다. 더구나 주말이 아니라 평일에 백업 시스템이 아닌 본 시스템에 업데이트 작업을 하다가 오류가 났다는 설명도 IT업계의 상식과는 배치된다. 무엇보다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채 긴급처방으로 해결한 만큼 언제 접속 장애 사태가 재발할지 모른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9일 오후 6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행안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9일 오후 6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행안부)

IT업계에선 2005년 개발된 새올 시스템에 대한 전산망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데도 중간 점검과 정비없이 중소 규모 IT업체들을 입찰로 선정, 땜질식 보수에 급급해온 것이 이번 사고 발생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런 사고를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우선 최저가낙찰제도부터 개선해야 한다. 가격이 아니라 기술력을 감안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국내 IT 및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정부24와 새올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시스템 위에 얹혀 작동된다. 한마디로 행정전산망이 중앙집중화된 상태다. 클라우드 등 신기술을 도입해 분산처리해 안전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때다.

이중화, 삼중화에 따른 무장애서비스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현행 체계의 취약성을 파악, 보완하고 차일피일 미뤄져온 ‘차세대 지방행정공통시스템’ 구축 등 IT 인프라 투자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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