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2.03.02 00:10

시대 바뀌었는데도 '문어발 확장' 주홍글씨 여전…"헬스케어 등 신산업 손도 못 댄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1월 18일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발표하며 홈페이지에 올린 이미지. 블리자드 대표 게임들의 인기 캐릭터가 나열됐다. (사진=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캡처)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1월 18일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발표하며 홈페이지에 올린 이미지. 블리자드 대표 게임들의 인기 캐릭터가 나열됐다. (사진=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캡처)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1063건. 최근 10년간 성사된 국내 기업의 인수·합병(M&A) 횟수다. 같은 기간 M&A가 가장 활발히 일어난 미국과 이웃나라 일본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G5 최하위 영국과 비교해도 한참 밀린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미래 먹거리로 일컬어지는 헬스케어 분야 M&A가 전무했다는 점이다.

최근 M&A를 통한 신산업 진출이 경영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을 고려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아직도 M&A는 그저 '대기업 배 불리기' 수단이란 인식이 팽배해 각종 규제가 산적한 탓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2년 1월~2022년 1월) 한국 기업의 M&A 건수는 1063건으로 G5 평균(2598건)의 41% 수준에 불과했다. 미국(3350건), 일본(3202건), 프랑스(2764건), 독일(1967건), 영국(1707건) 순으로 M&A 건수가 높았으며 한국은 G5 최하위 영국과 비교해도 62% 수준에 그쳤다. 

M&A 금액에서도 크게 밀렸다. 같은 기간 한국 기업의 M&A 금액은 2737억 달러인 데 반해, G5 평균은 1조933억 달러다. G5 최하위인 프랑스(5262억 달러)와 비교해도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신산업 분야 M&A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기간 G5는 대체로 기존 산업과 신산업 분야에서 고르게 M&A가 일어났지만, 한국은 기존 산업 분야에만 집중된 모습을 보였다.

한국 기업의 산업재 분야 M&A 금액은 1320억 달러로, G5 평균(1512억 달러)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반대로 신산업으로 분류되는 헬스케어, 커뮤니케이션 분야 실적은 처참했다. G5의 커뮤니케이션 분야 M&A 금액은 평균 2594억 달러지만, 한국은 258억 달러에 그쳤다. G5 평균 2606억 달러로 M&A 금액이 가장 큰 헬스케어 분야에선 단 한 건의 실적도 기록하지 못했다. 

지난 2013년 일본 소프트뱅크가 미국 3위 이동통신기업 스프린트넥스텔을 인수해 세계 4위 이동통신기업으로 성장하고, 지난 1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글로벌 게임사 액티비전블리자드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게임 업계에 뛰어드는 순간에도 한국 기업은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는 의미다. 

G5와 한국의 M&A 비교. (자료제공=전국경제인연합회)
G5와 한국의 M&A 비교. (자료제공=전국경제인연합회)

경영계는 한국 기업이 M&A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이유로 M&A를 저해하는 제도적 환경을 꼽는다. 

최근 M&A는 기업의 내적 성장 한계를 극복하고, 신규 사업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핵심 경영 기법으로 분류된다. 과거엔 기업들이 신산업 진출을 위해 회사를 직접 설립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은 M&A를 통해 해결하는 추세다. 새로운 사업에 참여하는 비용이 절감되며, 노하우를 전수받아 효율적 경영 전략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나 시장 상황 변화가 빨라진 오늘날엔 '좋은 M&A'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M&A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대기업의 M&A엔 '문어발식 확장'이란 주홍글씨가 찍힌다. 이 때문에 M&A를 저해하는 각종 규제가 적잖다. 유망 중소·벤처기업이 M&A를 통해 대기업 집단으로 편입되면 지주회사 규제, 계열사 간 지원 행위 금지 등 각종 규제가 적용되는 것이 대표적 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의료장비업체 메디슨 M&A를 추진하던 SK는 규제 조건 충족이 어려워져 인수를 포기하기도 했다. 공정거래법상 비상장 자회사의 경우 40%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데, 주주 갈등으로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대기업 집단 지정 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다. 우리 기업만 글로벌 경쟁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과도한 규제가 신산업 발굴을 위한 벤처기업, 유망 중소기업의 M&A 등을 저해한다. 규모가 작아도 대기업 집단에 편입되면 대기업으로 분류돼 각종 지원 제도에서 배제되고, 규제가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M&A를 저해하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M&A가 글로벌 대세로 자리 잡은 만큼, 과감한 규제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과거에는 기업들이 신산업 진출을 위해 회사를 직접 설립했지만, 지금은 M&A를 통한 진출이 트렌드가 됐다. G5가 M&A를 적극 활용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며 "우리는 G5에 비해 M&A가 상대적으로 부진한데, M&A를 저해하는 제도적 환경이 주요 요인으로 지적된다. 우리 기업이 적극적인 M&A를 통해 신산업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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