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한익 기자
  • 입력 2022.03.23 00:05

"1만원 이하 소액결제엔 의무수납제도 없애야"…서지용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 중단할 때"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 카드사도동조합협의회가 지난해 11월 15일 금융위원회 앞에서 '적격비용 재산정제도 폐지' 등 금융당국 정책 규탄하는 총파업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사진제공=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뉴스웍스=이한익 기자] 30대 직장인 A씨는 집 앞 식자재 마트를 찾았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계산을 하려 내민 신한카드를 안 받는다는 점원의 말 때문이었다. 다른 카드가 없었던 A씨가 장보기를 포기하려 하자 점원은 "아예 안 받는 것은 아닌데 최대한 안 받으려고 한다"며 결제를 진행했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두고 카드사들과 한국마트협회가 갈등을 빚으면서 A씨와 같은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전국 중형마트 5800여곳을 회원사로 둔 한국마트협회는 수수료율 인상분이 가장 높은 신한카드를 보이콧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카드업계 점유율 1위사이다.

중형마트 뿐만 아니라 주유소업계와 전자지급결제(PG) 업계도 '수수료율이 높다'며 인하를 촉구하고 있다. 영세가맹점 수수료 인하분을 메우기 위해 카드사들이 대형 가맹점 수수료를 올리겠다고 예고하자 인상이 통보된 업계가 반발하면서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추진한 카드 수수료 인하 정책이 되레 자영업자와 카드업계 간 갈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협상력이 낮은 영세 가맹점이 부담하는 높은 수수료를 막기 위해 도입한 '적격비용 기반 카드 수수료 산정 체계'가 문제라는 것이다. 

카드사는 자체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 비용을 줄이면 절감한 만큼 수수료 산정의 근거가 돼 적격비용에 반영된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비용 절감이 카드 수수료 인하로, 또 수수료 수익 악화로 이어진다며 악순환 고리 단절을 요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운영 중인 카드 수수료율 적격비용 산정방식을 손봐 근본적인 카드 수수료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 통합'을 약속한 윤석열 정부가 업계간 갈등 해소를 위해 정부 주도의 카드 수수료 책정 체계를 들여다 봐야하는 이유다.

◆카드사 수수료부문 손실…가맹점 96% '우대수수료율' 적용

현행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체계는 2012년 개정된 '여신전문금융업법'의 '신 가맹점 수수료 체계'에 따라 기존 업종별 수수료 체계에서 수수료의 '적격비용'에 기반한 수수료 체계로 변경됐다.

적격비용은 자금조달비용, 위험관리비용, 일반관리비용, 승인·정산비용, 마케팅비용 등 카드결제에 수반되는 원가를 말한다.

현행 법에 따라 카드사는 일정 규모 이하의 영세·중소가맹점에 대해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해야 한다. 영세·중소가맹점의 범위는 '여신금융업법 시행령'에서 정하며 우대수수료율은 금융위원회가 결정하고 있다. 다만 대형 가맹점의 경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신용카드사에 부당한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카드 시장의 환경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3년마다 적격비용 분석 작업을 시행하며 이를 기반으로 가맹점 수수료율을 조정하도록 하고 있다. 우대수수료율 등은 감독규정 변경만으로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신용카드사 수수료율은 지속적으로 인하돼 왔다. 

우대수수료율이 적용되는 가맹점이 늘어나고 수수료율이 내려가면서 신용카드사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 

카드사들의 전통적인 수익원은 소비자가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가맹점이 지불하는 '카드 수수료'와 소비자가 할부 이용시 내는 '할부 수수료', 소비자가 매년 한차례 납부하는 '연회비' 등 세 가지다. 이 중 가맹점 수수료율은 정부 정책의 여파로 하향조정되어왔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카드사들의 가맹점 수수료 부문 영업이익은 2013~2015년 5000억원에서 2016~2018년 235억원으로 감소했고, 2019~2020년에는 1317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은 3년 주기로 조정되지만, 정부가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 영세·중소 가맹점 범위를 확대해가면서 사실상 매년 카드수수료를 낮췄기 때문이다.

카드 수수료율은 2007년부터 올해까지 총 14차례에 걸쳐 인하됐다. 2007년 4.5%였던 일반가맹점 수수료율은 현재 1.98~2.16%로 크게 낮아졌다. 

우대수수료율 적용 범위도 점점 확대돼 현재 전체 가맹점의 96%가 적용받고 있다. 2017년 6월 기존 연매출 2억원이던 영세가맹점 기준은 3억원으로, 중소가맹점은 2억~3억원 이하에서 3억~5억원 이하로 확대됐다. 2018년에는 우대수수료율 적용 범위가 연매출 5억원 이하에서 30억원 이하로 대폭 확대됐다.

올해 1월 말에는 연매출 30억원 이하 가맹점에 적용되는 우대수수료율을 기존 0.8~1.6%에서 0.5~1.5%로 낮췄다. 이에 따라 연매출 3억~30억원 이하 중소가맹점 약 61만개(전체 가맹점의 20.6%)와 연매출 3억원 이하 영세자영업자 약 226만개(전체 75.6%) 등 총 288만개(96.2%)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율이 인하됐다.

증권가에서는 정부가 최근 단행한 카드 수수료율 인하로 카드사 수익성이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이번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에 따른 카드 업계 전체 매출 영향은 약 -4700억원"이라고 추산했다.

카드 수수료율 변동 경과. (자료제공=금융위원회)

◆'매출세액공제'에 연매출 10억 이하 실질 카드 수수료 '마이너스'…"정부 시장 개입 과도" 

문제는 카드업계와 소상공인 간 현행 카드수수료율에 대한 인식 차가 크다는 것이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카드 수수료율 인하 이전인 지난해 10월 소상공인 637명을 대상으로 '소상공인 신용카드 수수료 현황 및 제도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 가운데 85.4%가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특히 영세가맹점 신용카드 우대수수료율에 대해서는 66.4%가 '0.5% 이하로 인하'를 꼽고, 25.6%는 '0.5%로 인하'라고 응답했다. '현행 0.8% 유지'는 3.1%에 불과했다. 중소가맹점 신용카드 우대수수료율에 대해 49.6%가 '0.5% 이하로 인하'가 적절하다고 응답했으며, 29.3%가 '0.5~0.8%로 인하', 6.4%가 '현행 1.3~1.6% 유지'라고 답했다.

당시 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소상공인들은 카드 수수료율에 여전히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소상공인 단체에 단체 협상권을 부여해 실제 카드수수료를 부담하는 소상공인들의 상황과 처지가 카드수수료에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카드업계는 2009년 도입된 '매출세액공제'를 통해 사실상 국내 전체 가맹점 가운데 96%는 실질 수수료가 매우 낮다는 입장이다. 연매출 30억원 이하 가맹점(약 288만개·전체의 96.2%)은 우대수수료율(0.5~1.5%)을 적용받고 있는데다 매출세액공제(연매출 10억원 이하 대상)까지 더하면 실질 수수료가 더 낮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매출세액공제는 카드 수수료에 대한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이고, 카드 사용 활성화를 통한 '세원 양성화'를 목적으로 도입됐다. 카드 이용금액 1.3%에 대한 세액공제를 연 한도 1000만원까지 지원한다. 

매출세액공제를 적용하면 연매출 3억원 미만인 가맹점은 실질 수수료율이 -0.8%가 되고, 3억~5억원 구간 가맹점은 -0.2%가 된다는 것이 카드업계의 주장이다. 또 매출 5억~10억원인 가맹점의 실질 수수료율도 -0.05%에 불과해 실질 카드 수수료가 매우 낮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시장 개입이 과도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 "정부의 시장 개입이 지나치다"며 "당초 취지는 이해하지만, 우대수수료율을 지나치게 낮추고 확대 적용하면서 일반가맹점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정부가 무리하게 규제하면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시장 상황·논리에 맞게 수수료율을 올리거나 내리면 될 일"이라며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를 중단할 때가 됐다. 집단소송제 도입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근거로 수수료율을 협상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주도의 적격비용 재산정을 통해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책정하고 있는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에서는 우리나라 같은 사례가 전혀 없다"며 "적격비용 기반 카드 수수료 산정 체계를 폐지하는 것이 맞다. 페이 등 카드 외 다른 대안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자유계약을 통해 수수료율을 산출하고 있다. 규제가 있기도 하지만 상한선을 지정하는 수준이다.

여신금융협회가 가장 최근 발간한 '국내외 카드 네트워크 이해 및 시사점'에 따르면 미국은 자산규모 100억달러(약 10조원) 이상의 카드 발급은행에 대해서만 거래 건당 0.21달러, 거래규모에 따라 0.05% 가산하는 수준에서 상한을 두고 있다. 

호주와 유럽연합도 카드 네트워크 수수료 중 일부인 정산수수료에 대해서만 상한선을 설정하고 있다. 사실상 매출 수준별로 세부적인 수수료율을 정해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다만, 소상공인들은 우리나라는 '카드 의무수납제'가 법으로 명시돼 있어 가맹점이 카드결제를 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 개입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24일 금융위원회가 주최한 '카드수수료 적격비용 제도개선 TF' 1차 회의에서 소상공인연합회 측은 의무수납제 제도에 대한 검토를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의무수납제도가 없어져야만 가맹점 수수료율 제도가 없어질 것"이라며 "가맹점 수수료율을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은 의무수납제도 때문이다. 의무수납제도를 세원 확인 차원에서 모두 폐지할 수는 없고 1만원 이하 소액결제 등에 적용하지 않는 방법 등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소상공인들이 의무수납제 때문에 카드를 의무적으로 받아야하고 이에 대한 수수료가 발생하고 있다"며 "박리다매 형태로 운영하지 않는 소상공인은 수수료 부담이 클 수 있다. 의무수납제도를 폐지하고 소액 현금 거래를 허용해 영업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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