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06.04 17:09
노측 "총파업 가기 위한 단계 시작한 것…4단계 밟아갈 것"
사측 "연차 내는 수준 예년과 비슷"…"왜 파업이라 명명했나"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창사 이래 첫 파업을 선언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오는 7일 조합원들의 단체 연차 사용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실력 행사에 나선다.
단체 연차에 나서는 7일은 '샌드위치 데이'여서 통상 많은 직원이 연차를 사용한다. 이 때문에 세간에서는 생산에 악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지적에 대해 4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시위트럭에서 만난 이현국 전삼노 부위원장은 "회사 생산라인에 파격적 피해를 주는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총파업에 가기 위한 단계를 시작한 것"이라며 "생산 차질과 상관없이 3, 4단계까지 밟아가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전삼노는 조합원들의 연차 사용 현황을 따로 집계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조합원이 단체 연차에 동참했는지 알 수 없다. 외부에서 '이런 단체 행동이 파업으로 볼 수 있나'라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지만, 그는 "단체 연차로 하루 쉬는 것도 파업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당장 민노총 들어갈 계획 없어"…4개 노조 통합 추진
당장 삼성전자 노조 간에서도 이견이 나온다. 전삼노의 이번 파업에 대해 5개 삼성 계열사 통합 노조인 초기업노동조합은 "직원 근로 조건 향상이 아니라 상급단체(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가입을 위한 발판 마련으로 보여 목적이 불분명하다"며 "노조 취지에 맞게 직원들을 위한 교섭에 집중하고, 노사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혀 주목된다.
이에 대해 이 부위원장은 "한국노총과 전삼노의 관계가 안 좋은 것은 맞다. 민노총에 들어가는 것도 조합원 동의를 받아야 하는 만큼, 당장 들어가겠다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민노총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조합원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는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에 단체 행동을 위해 200명의 질서 유지인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선뜻 이에 응해줬다"며 "금속노조는 삼성전자가 한국사에서 중요한 곳이어서 큰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삼노는 이번에 쟁의 행위 찬반 투표에 참여한 ▲사무직 노조 ▲구미네트워크 ▲삼성전자노조동행을 더한 4개 단체를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른 이름으로 변경할 수도 있지만, "전삼노 안에 하나로 합쳐질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설명했다.

◆휴가 거부로 임금협상 결렬…"성과급 기준, 투명하게 보여달라"
전삼노 요구의 핵심은 성과급 기준을 현행 EVA(경제적부가가치) 대신 영업이익으로 변경해달라는 것이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DS(반도체) 사업 부문은 적자를 내 다수의 인원이 성과급을 받지 못했다.
반도체 사업에는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데, 영업이익을 성과급 기준으로 삼으면 재투자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와 노사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직원의 요구 중 일부를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게 현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 부위원장은 "반드시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달라는 게 아니다. EVA 기준이 불투명한 만큼 더 직원들이 투명하게 알 수 있게 해달라는 얘기다. 영업이익 11조원을 내면 0~3%의 성과급을 주겠다고 밝혔다. EVA는 영업이익에서 자기자본이익을 뺀 것인데, 11조원을 내면 자본이 회사가 먼저 이익을 취하겠다는 얘기다. 자기자본이익에서 얼마를 쓰는지 밝히지 않아, 노동자들은 전혀 이를 모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부위원장은 "삼성전자가 직원들에게 100만원씩이라도 주는 방법이 있지 않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 같은 결단을 단행했다. 하지만 1년에 4000억원 배당금을 가져가는 이재용 회장은 그러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성과급을 받지 못하자 임금이 30% 넘게 줄었다. 저도 DS 사업부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성과급이 전혀 나오지 않아 투잡을 뛰고 있다"고 성토했다.
HBM(고대역폭 메모리)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뺏기고, 파운드리 사업에서 TSMC와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상황에서 파업하는 게 맞냐는 시장의 지적에 대해 그는 "자본가들이 오판을 해 HBM 시장 순위가 갈린 것"이라며 "어려운 상황이라면 노동자나 임원 모두 성과급을 받지 않아야 하는데, 임원들은 수억원의 금액을 받아 가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위의 일환으로 진행한 문화행사에 연예인들이 공연한 것에 대해서는 "삼성전자에서 준 돈으로 한 집회가 아니다. 조합원들이 만원씩 낸 돈을 모아서 사용한 것"이라며 "서초 주민들도 구경하고, 조합원 및 시민에 보답하기 위해 한 행사"라고 설명했다.

◆'노동자 존중 없다' vs '파업 언급 위협'…평행선 이어가
한편, 사측은 7일 연차를 내는 수준이 예년과 다르지 않은 데, 이를 파업이라고 명명한 데 대해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원래도 '샌드위치 데이'에는 많은 사람이 쉰다"며 "올해도 연차를 낼 예정이었던 직원이 연차를 낸 수준"이라며 "노조가 파업이라고 밝혔지만, 업무에 큰 차질이 없다"고 말했다.
전삼노의 파업 선언으로 주가가 떨어지거나 시장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사실상 업무는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랜스포스는 "삼성전자의 이번 파업은 D램과 낸드플래시의 생산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며 출하량 부족 현상도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이유로 반도체 생산시설이 거의 자동화됐으며, '하루만 진행하는 단기 파업'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삼노가 협상에 임하는 사측의 태도에 성의가 없고 노동자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노조도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기보다는 파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실력행사에 나서는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삼노 조합원 중 일부가 하루 연차를 사용하는 것뿐인데, 마치 생산라인이 멈추는 것과 같은 위협감을 주는 것은 사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