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다혜 기자
  • 입력 2024.11.27 18:08

"소청과 진료수가 인상·사회적 인식 변화·경력 개발 확대해야"
"소아청소년병원 의사 자선에는 한계, 실질적인 지원 늘려야"

최용재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회장. (사진=김다혜 기자)
최용재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회장. (사진=김다혜 기자)

[뉴스웍스=김다혜 기자] 소아의료체계가 붕괴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의료진과 소아응급실이 자취를 감추면서 갈 곳 잃은 소아·청소년 환자들이 소아청소년병원으로 밀려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국회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응급의료기관의 소아응급환자 진료현황 조사'에 따르면 410개 응급의료기관 중 시간·연령·증상 제한 없이 24시간 소아 진료가 가능한 응급의료기관은 전국에 단 35개(8.5%) 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응급진료가 가능한 응급의료기관이 10곳 중 1곳도 안 되는 셈이다.

여기에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 전문의 이탈과 전공의 수 감소로 이른바 소청과 기피현상이 심화되면서 소아청소년병원의 업무가 과밀화되고 있다.

뉴스웍스는 최용재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회장을 만나 국내 소아·청소년 의료체계를 둘러싼 문제점을 진단하고, 이를 정상화하기 위한 해결책을 물었다.

-소아청소년과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일지.

"한국의 소아과 전공의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소아과는 어린이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중요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전공의 지원자가 줄어들면서 의료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소아과 전공의 부족의 주요 원인은 여섯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업무 강도에 낮은 진료수가부터 야만적 사법 리스크, 출생률 감소, 높은 업무 강도와 감정적 부담감, 한정된 경력 개발의 기회, 떨어지는 사회적 인식과 위상 등이 있다.

소아과는 업무 강도에 비해 낮은 수입으로 인해 경제적 매력이 떨어지는 분야다. 장시간 근무와 예측하기 어려운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소아과 의사의 수입은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다른 전공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러한 경제적 격차는 의대생들이 소아과를 선택하지 않게 만드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소아·청소년 응급환자가 밀려들면서 사법적 리스크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사람은 매우 복잡한 생명체로 모든 건강 문제가 과학적으로 해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치료 절차와 원인에 상관없이 혹은 원인을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법적 민법적 책임이 의사에게 돌아가고 있다. 선배 의료진들이 수억 원의 배상금을 감당하며 의사를 그만두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의사들에게는 이 업이 생계다. 생계가 모험이 되고,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내 출생률도 소아청소년과 수요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소아청소년과의 직업적 미래 안정성에 대한 의문이 있는 한 생계로 소아청소년과 의사직을 선택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회구성원들의 인식 변화도 시급하다.

또 소아청소년과는 연구, 국제 협력, 전문 분야 세분화와 같은 경력 개발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세계적인 논문을 내는 한국의 소아청소년과 교수님들은 OECD 다른 선진국들의 교수님들에 비해 받는 대우는 재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빈약한 상황이다.

소아청소년과는 그런 이유로 과거 최고 인기과에서 현재 기피하는 비인기과로 전락했다. 심지어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의료기관에서조차 소아청소년과를 폐지했다가 다급하게 개설하는 분위기다."

-소아청소년과 기피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있다면.

"소아청소년과 기피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와 의료기관은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보수를 인상할 수 있도록 소아청소년과전문의의 전문 진료수가를 파격적으로 인상해야 한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에게는 역차등수가제를 도입해야 한다. 일정 기준 이하로 진료를 할 경우, 환자 수만큼 진료 손실액을 보상해 주는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또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한다. 업무량 경감을 위해 전문 간호사나 보조 의료진을 활용해 업무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 소아청소년과 환자는 혼자 진료를 받을 수 없다. 다른 과에서 소아청소년과를 싫어하는 이유로 아기들이 울고 발버둥 치며 진료에 차분히 협조하지 않는 점이 꼽히기도 한다. 그런 진료실의 딱한 사정을 감안해, 그런 업무에 종사하는 소아청소년간호조무사, 소아·청소년 전문간호사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런 특수직에는 별도의 인센티브가 갈 수 있도록 한다면 인력을 구하는 일이 수월해질 것이다.

소아과의 중요성과 성공사례를 홍보하는 공익 캠페인을 진행해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캠페인을 통해 소아청소년과의 중요성과 사회적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 의료소비자인 대중과 공급자인 의료계에 소아청소년과의사업이 보람찬 일을 하는 전문직이라는 인식과 재무적으로도 할 만한 일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줘야 할 때다.

이 외에도 경력 개발 기회 확대해야 한다. 전문 분야를 소아 심장학, 소아 종양학, 신생아학 등 세분화된 전공을 활성화해 다양한 경력 경로를 제공해야 한다. 또 소아과 의사들이 연구와 국제적 교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 소아청소년의료과 같은 전담 부서를 설립해 소아과 전공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연구하고 실행할 전담 부서를 설립해야 한다. 또 소아과 전공의 교육에 원격 의료 기술을 포함해 더 다양한 환경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야한다."

-소아청소년병원의 소아응급실화가 심각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경증에서 준중증 환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환자를 빨아들이던 3차 병원들의 기능이 축소되면서 운영이 쉽고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경증 혹은 경증에 가까운 준중증 환자만 보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그 바람에 주변에 있는 3차 병원에서 밀려온 준중증 환자들이 소아청소년병원을 찾고 있다. 이런 환자는 처치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사람도 많이 필요하다. 촌각을 다투는 위험한 상황으로 오갈 곳 없는 환자를 내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의사도 이런 처치를 하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다. 주변에 있는 3차 병원에 문제해결 능력이 부족해서 혹은 손이 딸려서 오는 걸 알기 때문에 환자를 거절할 수 없다. 의사의 선의와 자선에 의지해서 지속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응급실만큼의 지원이 필요하다. 보기 좋은 정책을 위한 지원 말고 아이들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달빛 어린이 병원'의 문제점과 이를 확대하기 위한 개선방안이 있다면?

"달빛 어린이 병원은 '달빛 어린이 의원'과 '달빛 어린이 병원'으로 나뉘고 두 곳 모두 달빛 어린이 병원이라는 제도 하에서 운영된다. 달빛 어린이 의원의 경우 의사 한 사람이 환자가 오면 처방전만 발행하면 된다. 처방전을 발행할 인력만 있다면 운영에 큰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반면, 달빛 어린이 병원은 임상병리사부터 수액을 놔주는 인력, 간호사 등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두 병원의 수가가 같다. 결국 달빛 어린이 병원으로 운영되는 의료기관들이 치료를 감소시키거나 수액 맞히는 진료를 하지 않고 간단한 진료만 진행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병원 특성에 따라 정부가 핀셋 지원을 하지 않으면 결국 모든 병원이 처방전만 발행하는 아무 기능 없는 병원으로 전락할 수 있다. 과거 3차 병원이 경증, 중등증, 중증환자를 봐주던 상황에서는 운영이 가능했지만, 3차 병원에 치료를 받지 못한 소아·청소년 의료 난민들이 밀려는 상황에서는 지속이 힘들다. 한 마디로 어린 국민들을 위해 내놓은 보건의료 체계로는 상당히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무턱대고 지원과 고민 없이 달빛 어린이 병원 제도를 지속하는 것은 되려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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