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07.16 06:00

애플 및 구글 등 협력사에 재생에너지 전환 요구

두산에너빌리티가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국가풍력실증센터에 설치한 8MW 해상풍력발전기. (사진제공=두산에너빌리티)
두산에너빌리티가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국가풍력실증센터에 설치한 8MW 해상풍력발전기. (사진제공=두산에너빌리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된 'RE100(Renewable Energy 100%)'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400개 이상의 기업이 RE100에 가입했고, 국내에서는 삼성전자·SK그룹·현대자동차 등 주요 대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RE100 이행은 높은 재생에너지 단가 및 복잡한 행정 절차 등으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뉴스웍스는 RE100이란 무엇이며, 이행을 가속화하고 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3회에 걸쳐 짚어본다.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RE100' 이행의 필요성이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오는 2050년까지 태양광 및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자발적 캠페인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은 자발적인 캠페인을 넘어 기업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이미 글로벌 공급망을 갖춘 기업들은 각 협력사에 RE100 이행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이를 외면하고 석유나 석탄 등 화석에너지나 원자력에너지로 만든 제품은 수출길이 막히거나, 시장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지난 3년간 RE100에 대한 정책적 무관심으로 실행 공백기를 겪었다. 새 정부는 전 정부와 달리 RE100에 대해 강한 실행 의지를 표명했지만, 높은 재생에너지 단가와 복잡한 행정 절차라는 장벽에 맞닥뜨린 상황이다.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 설치된 태양광 자체 발전 설비. (사진제공=기아)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 설치된 태양광 자체 발전 설비. (사진제공=기아)

◆RE100 준수 안 하면 기존 납품 계약도 '취소' 

RE100은 지난 2014년 국제 비영리 환경단체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과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가 공동으로 시작했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40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 중이다.

RE100 이행 방법은 기업 여건에 따라 다양한데, 대표적으로 ▲녹색 프리미엄 요금제 ▲자가발전 ▲전력구매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 PPA)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등을 꼽을 수 있다.

우선 녹색 프리미엄 요금제는 한국전력에 재생에너지 구매 비용을 추가로 지불하는 방식이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간편하지만, 실제 재생에너지 발전 기여도가 적다. PPA는 기업이 발전사업자와 직접 계약을 맺어 재생에너지를 구매하는 방식이다. 기업의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체 발전은 기업이 직접 태양광 발전 시설 등을 건설해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전력 확보와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재생에너지 REC 구매 방식은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에 부여되는 REC를 구매하는 내용이다. 시장에서 재생에너지의 가치를 인정받고 거래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꼽힌다.

현재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RE100에 가입한 글로벌 기업들은 협력사에도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 중이다. 국내 기업들은 자동차 및 반도체 등 수출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갖췄기에, 바이어들의 RE100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최근에는 관련 조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은 신규 거래 개시는 고사하고, 기존 납품 계약까지 취소되는 판이다.

RE100이 기업 간 거래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탄소 배출량 감축에 대한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도 강조되는 추세다. 즉,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핵심인 RE100 이행은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구축해 소비자 신뢰를 얻고, 기업 가치를 높이는 필수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장기적으로 기업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고, 에너지 수급 안정성 확보에도 기여한다. 화석연료 가격 변동성에 노출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조달함으로써 예측 가능한 사업 운영이 가능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RE100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엘리베이터 중국 상하이 스마트캠퍼스에 구축된 태양광 설비. (사진제공=현대그룹)
현대엘리베이터 중국 상하이 스마트캠퍼스에 구축된 태양광 설비. (사진제공=현대그룹)

◆남들보다 뒤처진 RE100…무엇이 문제인가

국내에서 RE100 이행은 지난 2020년 SK그룹이 국내 최초로 가입하며 본격화했다. 지난해 4월 기준 RE100 가입 국내 기업은 총 36곳으로, 전 세계 가입국 중 4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양적으로는 성장했어도, 이행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지난 2022년 기준 국내 RE100 가입 기업들의 평균 이행률은 12%에 불과하다. 글로벌 RE100 가입 기업들의 평균 이행률인 50%보다 한참 낮은 수치다. 삼성전자의 국내 사업장 이행률은 9%, 해외 사업장은 97%의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국내와 해외 이행률 차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구매하고 싶어도 국내 시장에는 충분한 물량이 없다. 미국과 유럽은 PPA 시장이 활성화 돼 기업이 발전사업자와 직접 계약을 맺어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조달한다. 재생에너지 REC 시장도 활발하게 운영돼 기업이 탄력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강력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과 독일은 발전설비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과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 기업이 스스로 재생에너지 전환을 시도하도록 제도적 기반이 잘 갖춰졌다.

반면 한국은 몇 가지 이유로 RE100 이행이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은 국토가 좁고 에너지 생산 방식이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크게 의존해 왔다. 이에 따라 태양광 및 풍력 등의 발전량 자체가 기업 수요를 감당하기에 크게 부족하다. 이는 곧 재생에너지 단가마저 높여 기업이 안정적으로 RE100을 이행하기 어렵게 만든다.

둘째로 국내 전력시장은 한국전력공사가 독점하는 구조다. 선진국에서는 당연한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다양한 시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직접 전력을 거래하는 제3자 PPA도 최근에서야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셋째로 복잡한 행정 절차 및 규제다. 국내는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소 건설을 위한 인허가 절차가 복잡하고, 지역 주민의 반발로 사업 추진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이 자가발전을 하려 해도 부지 확보 관련 규제에 부딪히기 일쑤다.

결국 RE100 이행을 위한 가장 큰 관건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정권 따라 관련 정책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일관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기업들이 RE100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기반을 적극적으로 마련했다. 지난 2021년에는 PPA 제도가 도입됐고, 녹색 프리미엄 요금제도 시행했다. SK그룹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RE100에 가입한 것도 이 시기다.

그러나 2022년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자력 발전 비중 확대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했다. 재생에너지를 전 정권 주변 인사들의 돈벌이용 수단으로 깎아내리면서 관련 투자를 외면했다.

특히 RE100이 재생에너지만 인정하는 것과 달리, 윤석열 정부는 원자력과 수소 등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모든 에너지원을 포함하는 '무탄소에너지(Carbon Free Energy, CFE)'를 지향했다. 취지는 국내 기업들의 RE100 이행 부담을 완화한다는 것이었지만, 결국 글로벌 RE100 기준 미달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재계 한 관계자는 "RE100 이행의 가장 근본적 문제가 기업이 구매할 재생에너지 발전량 부족"이라며 "관련 설비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기업의 RE100 참여를 위한 경제적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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