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08.21 11:36

이해관계 얽힌 기업들 구조조정 '머뭇', 골든타임 또 놓칠라
수소환원제철 및 스페셜티 투자도 "돈이 있어야 하지" 반응

포항제철소 철강 공정. (사진제공=포스코)
포항제철소 철강 공정. (사진제공=포스코)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정부가 철강에 이어 석유화학 등 벼랑 끝에 몰린 제조업 구조 개편에 나섰다. 그러나 구조조정 골든타임 실기 및 대안 사업 부재 등의 한계성이 산적해 있어 실효성은 미지수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21일 철강·석화업계에 따르면, 이번 구조 개편책은 정부 주도가 아닌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과잉생산 설비를 감축하고, 사업부문을 통폐합한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대부분의 철강 및 석유화학 기업은 소속 그룹에서 주력 내지 '돈줄' 역할을 하는 만큼, 스스로 손실을 감수하고 설비를 통폐합하거나 매각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강해 구조조정이 쉽지 않다는 시각이 나온다.

현재 국회는 정부의 철강 및 석유화학 구조 개편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일명 K-스틸법)' 처리 및 '석유화학산업 경쟁력강화 특별법' 발의를 추진 중이다.

우선 여야 합의에 따라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 예정인 K-스틸법에는 중국발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감산하거나, 설비를 철거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담겼다. 정부는 이러한 사업 재편을 추진하는 철강사들에 대해 금융과 세제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친환경 기술 전환 지원도 병행할 방침이다.

석유화학산업 지원 관련 법은 고부가가치 '스페셜티(Specialty)' 화학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지원 등이 핵심이다. 이미 국회에는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 특별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이 법안에는 기업들의 자율적인 사업 재편을 촉진하기 위한 금융·세제·R&D 지원과 공정거래법 등 규제에 대한 특례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았다.

철강과 석유화학 지원법의 의도는 기업들이 과잉 생산 설비를 스스로 감축하거나 사업 부문을 통폐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정부 구상대로라면 산업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민간 주도 혁신과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기업에 재편 책임을 부여하면 재정적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고, 정부 주도의 하향식 구조조정은 부작용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수소환원제철과 스페셜티 투자는 미래 산업의 수요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동시에 탄소 국경세 등 새로운 무역 장벽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이 될 수 있다. 아울러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규모 실직 사태를 방지하고, 산업단지 소재 지역의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LG화학 여수 NCC 공장 전경. (사진제공=LG화학)
LG화학 여수 NCC 공장 전경. (사진제공=LG화학)

그러나 이런 구상의 현실화는 현재 국내 철강 및 석유화학 업종이 처한 현실상 쉽지 않다.

우선 국내 철강 및 석유화학 기업들은 대부분이 해당 업종이 주력이고, 소속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만큼 통폐합에 쉽게 나설 수 없다. 현대제철이나 동국제강 등은 핵심 시설이나 인력을 줄이기보다는 공장 가동 조절로, LG화학이나 롯데케미칼 등도 구조조정보다는 수처리시설 같은 비핵심 자산 매각에 치중해 왔다.

또한 인천이나 여천 NCC 등 지역경제 흥망과도 맞물려 있다. 윤석열 전 정부 때도 석유화학 업종에 대한 정부 주도의 강력한 구조 개편이 요구됐었지만, 결국 기업 자율에 맡긴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기업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먼저 나서서 설비를 줄이면 시장 점유율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고, 이 때문에 눈치보기 게임이 장기화할 경우 위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쳐 결국 산업 전반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석화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구조 개편안이 전 정부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기업들은 당장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핵심적인 구조조정보다는 기존처럼 비핵심 자산 매각과 같은 '생색내기용' 구조조정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철강의 수소환원제철이나 화학 스페셜티도 현실성이 다소 떨어진다. 해당 부문 투자를 위해서는 정부 지원 외에도 기업들 자체적으로 막대한 R&D 비용과 시설 투자 및 시간이 필요하다. 수소환원제철만 해도 국내에서는 포스코나 현대제철 정도만 영위하고 있지만, 당장은 생산성이 떨어져 막대한 투자금에 걸맞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 

복수의 화학업계 관계자는 "스페셜티 투자도 일부 대기업만 가능하다. 과거 유럽이나 미국이 그랬듯 현재의 구조적 공급과잉 문제는 스페셜티 개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중국과의 기술 초격차를 장담할 수 없고 중동의 싼 단가에도 밀릴 수 있다"며 "투자하려고 해도 오랜 불황으로 대기업도 여력을 잃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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