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09.08 11:42

LG화학-GS칼텍스, HD현대-롯데케미칼 통폐합 이해관계 충돌
불황에 정부 없는 자체 구조조정…법적 문제 및 지역경제 우려

LG화학 여수 NCC 공장 전경. (사진제공=LG화학)
LG화학 여수 NCC 공장 전경. (사진제공=LG화학)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중국발 공급과잉 등으로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국내 석유화학업종이 구조조정 신호탄을 쐈으나, 정부가 한 발 뺀 상태에서 지속성 여부가 우려된다.

정부조차 지역경제 침체 및 일자리 감소에 대한 반발을 우려해 구조조정을 기업에 맡겼지만, 노동조합 권한을 확대하는 노란봉투법 등이 오는 2026년 시행되면 기업이 자체적으로 구조개편과 일자리 두 마리 토끼를 잡기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8일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지난 8월 20일 발표된 정부의 석유화학 산업구조 개편 지침에 따라 여수 나프타 분해시설(NCC) 통폐합을 논의 중이다.

NCC는 석유화학 산업의 가장 기초적인 원료를 생산하는 설비다. 석유에서 추출되는 나프타를 고온에서 분해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의 근간이 되는 기초 원료를 생산한다. 다만 에틸렌 등 범용제품은 최근 중국과 중동의 대규모 증설로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은 원료 가격이 비싼 나프타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과의 원가 경쟁에서 밀려 다운스트림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이에 따라 4사는 나프타 생산효율을 높여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하고 있으나, 통폐합 방법도 문제고 그 과정도 정부 별도 지침이 없어 이해관계 충돌을 피할 수 없다. 4사가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고 (실제 통폐합 여부는)아직 확정된 바 없다"라는 공식 입장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석유화학 업종이 심각한 불황인 상태에서 시장경제 논리대로 풀어가기에는 NCC 설비의 시장 가치가 너무 낮다. 설비를 매각하려는 LG화학이나 롯데케미칼 입장에서는 최대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반면, 인수하는 GS칼텍스나 HD현대오일뱅크 입장에서는 이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이것만 해도 통폐합이 이뤄질까 의문인데 진정한 걸림돌은 법적·제도적 문제다. NCC와 같은 대형 설비 통폐합은 필연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 노조 반발이 뻔하다는 의미다. 특히 최근 국회를 통과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이 내년부터 시행되면 경영상 결정도 쟁의 범위에 포함되기에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다.

통폐합 과정에서는 취득세나 양도세 등 과세 부담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의 독과점 심사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이 있지만, 공동행위와 관련된 내용은 명시적으로 포함돼 있지 않다. 결국 정부가 원하는 신속한 통폐합은 쉽지 않은 것이다.

충남 서산 대산석유화학산업단지 야경. (출처=산업통상자원부)
충남 서산 대산석유화학산업단지 야경. (출처=산업통상자원부)

지역경제도 큰 문제다. 현재 NCC 통폐합 논의가 이뤄지는 여수 산업단지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단지이자, 여수 전체 고용의 42%를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목표로 하는 생산량 감축이 현실화하면 여수에서만 최대 200만톤의 에틸렌 생산을 줄여야 한다. 결국 대기업은 물론 다수의 협력업체 및 하청업체 직원의 실직을 피할 수 없다.

이미 지난 2024년 여수시의 지방세 징수액은 전년 대비 26.8% 급감한 상태다. 이는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있는 충남 서산 대산 석유화학단지도 마찬가지다. 서산시의 지난해 지방세 징수액도 전년 대비 19.7% 줄었다.

LG화학·롯데케미칼·SK지오센트릭이 입주해 있는 울산 역시 석유화학 산업이 지역내총생산(GRDP)의 45%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울산시는 자동차와 조선 등 다른 주력 산업이 건재하다는 이유로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에서 제외된 상태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대기업들은 지난 2022년부터 본격화된 불황에 따른 각종 인적 구조조정설에도 이런 문제를 우려해 비핵심자산 매각을 위주로 했지, 인위적 구조조정은 최대한 피했다"며 "정부도 같은 점을 우려하면서 노란봉투법으로 족쇄를 더 채우면 이래저래 힘들어지는 것은 기업 아니냐"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통상 사업재편을 수반한 구조조정은 수년이 걸리는데 현금동원력도 없는 상황에서 당장 내년부터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노조 파업과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하청이 많은 석유화학 특성상 대형 노사 갈등으로 번질 위험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석유화학 구조조정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 ▲노사정 대화 채널 구축 ▲세제 혜택 및 법적 지원 ▲노동계의 협력 유도 등을 병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경영학자는 "산업 구조조정과 같이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에 대해서는 노조의 쟁의 행위를 제한하는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며 "사업장 통폐합 시 발생하는 세금을 감면하고, 노사 갈등 발생 시 신속하게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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