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채윤정 기자
  • 입력 2025.08.25 19:00
삼성전자의 HBM3E 12H D램.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의 HBM3E 12H D램. (사진제공=삼성전자)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삼성전자의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샘플이 최근 엔비디아의 '신뢰성 검증 시험(Reliability Testing)'을 통과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르면 내년 초 엔비디아 공급이 기대되고 있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공지능(AI) 가속기 시장을 90% 이상 점유한 엔비디아는 삼성전자 HBM4 샘플에 대한 신뢰성 검증 시험을 통과시켰다. 업계는 샘플 최종 인증에 3~4개월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고려할 때, 이르면 올해 연말 최종 퀄테스트 통과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9월 초 전후 HBM4 최종 샘플을 엔비디아에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테스트에 최종 합격하기 위해서는 '프리프러덕션(PP)' 단계를 거쳐야 하며, 통과할 경우, 12월경부터 HBM4 양산에 돌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현재까지 12단 HBM3E는 엔비디아의 퀄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차세대 제품인 HBM4의 경우 안정적 성능을 바탕으로 순조롭게 납품 과정이 진행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2주간의 미국 출장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HBM4 공급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엔비디아는 삼성전자 반도체(DS) 경영진들에게 12단 HBM3E보다 HBM4 생산에 집중해 달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DS 경영진들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엔비디아 본사를 방문해 사업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엔비디아에 이미 HBM4 샘플을 전달했다. 긍정적 평가가 제기된다는 일부 보도도 나오지만, 이는 고객사와 관련되어 있어 밝힐 수 있는 사안은 없다"며 "퀄테스트 단계 역시 단품 테스트는 물론, 보드 장착 테스트, 서버 장착 테스트 등으로 다양해 현재 어떤 상황이라고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와 증권가 애널리스트 상당수는 삼성전자가 부진을 딛고 HBM4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가 고가의 HBM4에서 가격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SK하이닉스 일변도에서 벗어나, 삼성전자로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게 필요하다는 해석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HBM4 개발을 위해 기존대로 1b D램을 사용하지만, 삼성전자는 성능을 높이기 위해 1c D램을 개발했다. 1c D램이 제대로 된 성능을 낸다면 HBM4 품질이 SK하이닉스를 능가할 가능성도 있다"며 "특히 SK하이닉스는 HBM4 베이스 다이를 대만 TSMC에서 진행하지만, 삼성전자는 자체 파운드리를 보유하고 있어 경쟁력이 있다"고 내다봤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 부사장은 지난달 말 진행된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10나노급 D램 1c 공정 양산 전환 승인을 진행했다"며 "이를 기반으로 HBM4 제품 개발도 완료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셉 무어 모간스탠리 연구원은 "올해 85~90%의 HBM 점유율을 기록했던 SK하이닉스는 내년 50% 수준까지 점유율이 내려갈 것"이라며 "이는 삼성전자 및 마이크론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내년 HBM 시장에서 25~30% 점유율을 차지하고, 마이크론은 20~25%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교수는 "HBM3E는 지나가는 시장이다. 삼성전자는 HBM3E보다 HBM4에서 더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만큼, 엔비디아 납품이 중요하다"며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SK하이닉스 외 추가 공급업체가 필요하고, 가격 면에서도 우위를 가져가기 위해 삼성전자가 필요하다. 삼성전자도 D램 기술을 더 향상시킨 만큼, 퀄테스트에 통과할 때가 됐다"고 내다봤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5일 2주간의 미국 출장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5일 2주간의 미국 출장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뉴스1)

삼성전자는 HBM4 양산 준비를 연말까지 마칠 방침이다. 단, 본격적인 양산의 경우 올해 돌입할지, 내년부터 시작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양산 시점은 엔비디아의 퀄테스트 통과 시점이 좌우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가 HBM4를 엔비디아에 납품하게 되면 차세대 AI 가속기인 '루빈'에 탑재된다. 루빈은 블랙웰의 뒤를 잇는 엔비디아의 주력 제품으로, 메모리 사양이 12단 HBM3E에서 HBM4로 바뀐다. 3나노 기반 '루빈'은 TSMC 생산라인에서 시험 생산을 준비 중인 데, 전례 없는 속도로 양산을 서두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엔비디아에 12단 HBM4 샘플을 공급하고 6월에는 초도 물량도 공급했다. 마이크론은 SK하이닉스에 이어 두 번째로 지난 6월 12단 HBM4 샘플을 엔비디아에 제공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GTC 2025'에서 RTX 5000 시리즈 GPU를 소개하고 있다. (출처=엔비디아 페이스북)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GTC 2025'에서 RTX 5000 시리즈 GPU를 소개하고 있다. (출처=엔비디아 페이스북)

한편, HBM 시장을 둘러싸고 시장 환경이 급격히 변화할 움직임을 보여 주목된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으로 낮췄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는 "HBM 시장의 경쟁 심화로 내년 HBM 제품 가격이 10% 이상 떨어질 것"이라며 "가격 결정권도 제조사에서 고객사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샘 올트먼 CEO는 지난 18일 AI 열풍을 닷컴버블과 비교하며 "투자자들이 AI에 지나치게 흥분된 단계다. 닷컴버블 때처럼 과열된 것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20일에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은 "생성형 AI를 도입한 기업의 95%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시장 평가는 HBM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SK하이닉스의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 14일부터 5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최근 2거래일은 하락에 대한 반발 매수로 소폭 상승했으나, 25일 종가는 30만원을 찍은 지난달 14일 대비 13.5% 하락한 25만9500원에 머물렀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가 내년에 올해 대비 점유율 소폭 축소는 예상되지만, 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손인준 흥국생명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HBM4에서도 지배적 점유율을 유지함과 동시에 강력한 AI 수요의 수혜를 입을 것"이라며 "HBM4에서 30% 이상 가격 프리미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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