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9.07 08:00
호재에도 주주환원책 부재 등 불확실성에 주가 '들쑥날쑥’
3차 상법개정 처리 코앞인데 태광은 거꾸로 EB 발행 논란
배당 현실화 및 투명성 확보로 신사업 투자 진정성 보여야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현재 국내에서 기업경영 투명성 확보 및 주주친화 정책이 가장 시급한 기업을 꼽으라면 단연 태광그룹이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오너일가 지배력 강화보다는 주주들의 고른 이익을 추구해 주가를 부양하자는 게 이재명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다. 그러나 태광그룹은 수년간 낮은 배당성향과 이익잉여금의 비효율적 사용, 자사주 대상 교환사채(EB) 발행 등 주주가치 제고를 염두에 두지 않는 관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7일 태광그룹 주요 계열사인 태광산업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태광산업의 최근 2년간 평균 배당률은 0.3%에 불과하다. 지난 10년간 누적 당기순이익이 1조2300억원에 달했음에도 같은 기간 주주에게 지급한 배당금은 151억원에 그쳐 누적 배당성향은 1.23%다.
태광산업은 지난 3월 기준으로 주당 1750원의 지난 2024년 결산 현금 배당을 결정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주주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태광산업은 지난 2023년 배당성향 0.1%를 기록했다. 1년간 조금 늘어나기는 했으나, 코스피 평균 배당성향인 35%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은 수치다.
태광산업 2대주주이자 행동주의 펀드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주당 1만원의 현금 배당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회사 측은 대규모 투자를 위해 현금 확보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부결시켰다. 태광산업은 이런 식으로 번번이 막대한 이익잉여금과 현금성 자산을 주주들에게 환원하기보다는 어디에 쓰일지 모를 애매한 이유를 내세워 번번이 내부 유보에 집중해 왔다.
자산가치 대비 주식 시장 평가를 나타내는 지표인 주가순자산비율(PBR)의 경우, 태광산업은 지난해 기준 0.13배에 불과하다. 현재 회사가 지닌 가치 대비 8분의 1 수준으로 밖에 평가받는 동시에, 회사가 주주들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5일 기준 태광산업 주가는 주당 85만원대 수준에서 거래됐다. 그런데 최근 52주 동안 태광산업 주가의 변동폭은 대략 57만3000원에서 129만2000원 사이로, 변동성이 크다. 변동이 크다는 것은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밸류업을 내세운 이 정부가 들어설 때만 해도 주주환원 관련 지표가 워낙 낮아 주가 부양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주력인 석유화학 시황 부진 및 오너리스크, 바뀌지 않는 주주환원 정책 등으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6월 EB 발행 논란은 태광산업이 주주환원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사주 소각이고,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이재명 정부 밸류업 정책에 따라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 더욱이 이달 정기국회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내용을 담은 3차 상법개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그러나 태광산업은 이와는 반대로 자사주를 활용해 EB를 발행하는 결정을 내렸다. 사측은 EB 발행이 신사업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역설했지만, 시장에서는 자사주 소각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트러스톤과 소액주주들의 격한 반발을 산 데 이어, 금융감독원까지 정정명령에 나서면서 태광산업은 이 결정을 보류한 상태다.
이제까지 태광산업은 포트폴리오 전환의 불가피성만 주장했지, 결국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은 발표하지 않아 기껏 오른 주가는 제자리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현재 태광산업이 추진 중인 애경 인수 시도도 정부 밸류업 프로그램의 본질적인 목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적다는 평가가 재계에서 나온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단순히 기업의 덩치를 키우는 인수합병(M&A)를 넘어 사업구조 재편 및 주주환원, 경영 투명성 확보로 내재가치를 제고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태광산업은 애경 인수를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오히려 보유 중인 자사주를 활용한 EB 발행을 추진했다. 태광산업은 과거에도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실제 집행은 미미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나마 EB 발행도 중단돼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기면서 애경 인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석유화학 기반의 태광산업과 소비재 기업인 애경산업 간 시너지 또한 불분명하다.

고질적인 오너리스크도 주주가치 제고에 걸림돌이다.
현재 태광산업 비상근 경영고문으로 있는 이호진 전 회장은 횡령·배임 혐의로 지난 2011년 법정구속된 전적이 있다.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사회 단체들은 이후에도 이 전 회장이 신사업 투자를 위해 EB 발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그룹 경영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이 전 회장이 EB 결정 등 주요 경영 사안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담긴 내부 녹취록 2100건을 확보했다는 전언이다.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태광산업이 추진 중인 애경산업 인수에도 이 전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 확대에 악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태광산업이 애경산업을 인수하기 위해 활용 예정인 신생 사모펀드 티투프라이빗에퀴티는 이 전 회장 일가족이 36.4%의 지분을 직·간접적으로 소유 중이기 때문이다.
이에 자본 시장에서는 태광산업이 단기적인 주가 부양책보다는 경영 투명성과 주주친화 정책부터 확립해 신뢰도를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우선 매년 일관성 없는 낮은 배당률을 탈피하고, 최소한 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배당하는 중기 배당 정책을 공식적으로 발표해야 한다. 트러스톤이 제안했던 배당성향 20~40%와 같이 구체적인 목표 제시 및 이행이 그 예다. 보유 중인 자사주(발행 주식 총수의 24%)를 단순히 투자 재원 마련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멈추는 것도 방법이다.
보유 중인 투자 부동산과 금융자산 등 비영업 자산에 대한 보유 필요성과 수익성을 점검하고, 비효율적인 자산은 과감히 매각해 현금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은 신사업 투자와 함께 주주환원에 활용하는 게 시장에 진정성을 보이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영학자는 "현재로서는 일반 주주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IR 행사를 개최해 가급적 경영 목표와 사업 현황, 투자 계획 등에 대해 투명하게 설명하고 질문을 받는 등의 노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오너일가의 독단적 경영을 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이사회 구성도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