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성민 기자
  • 입력 2025.09.12 07:05

[뉴스웍스=박성민 기자] 정부의 조직개편안이 베일을 벗자 금융당국이 혼돈에 빠졌다. 권한과 역할이 크게 4개 축으로 쪼개진다는 소식 때문이다. 

핵심은 기존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로 이관하고, 금융위를 감독정책 컨트롤타워인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로 개편하는 것이다. 금감위 산하에는 금융감독원과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가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신설돼 별도 공공기관이 된다. 

금소원이라는 명칭은 이름만으로도 소비자 중심의 감독 기능을 강화하겠단 취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동안 금감원은 은행·증권·보험사 등에 대한 검사와 제재뿐 아니라 금융소비자 피해 구제, 분쟁조정 업무까지 수행해 왔다. 

하지만 감독과 소비자 보호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다 보니 '업권 규제'에 무게가 쏠리고 '소비자 권익'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정부가 별도의 금소원을 두기로 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결국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고금리·고위험 대출, 온라인 금융사기 등 급증하는 민원과 분쟁을 체계적으로 다루겠단 의도다.

그러나 금소원 신설이 현장에서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금소원은 새롭게 구성될 금감위 산하 기관으로 출범하는 만큼, 결국 금감위의 지휘·감독 체계 안에 들어간다. 소비자 보호 기능을 독립적으로 강화하겠다는 목적이 무색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 

이미 금감원 내 금소처가 민원·분쟁을 전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소원 신설은 '간판만 바뀐 조직'에 머무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감독·검사권은 금감원이 쥔 채, 소비자 보호 업무만 또 다른 이름으로 떼어내면 오히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정책 효율성도 떨어질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한 개편안에는 금소원에 검사권과 제재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 

소비자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 발생 시 신속하고 명확한 구제다. 그러나 금소원 체제가 정착되면, 소비자는 민원을 금소원에 제기하고, 금소원이 다시 금감원과 협의해 처리하는 이중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자칫하면 민원 대응이 지연되거나, 어느 기관이 최종 결정권을 가지는지 헷갈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제도 설계 의도와 달리 '책임 강화'가 아니라 '책임 분산'이나 '책임 회피'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전담 기구가 존재한다. 미국의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독립 규제기관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갖고 금융회사 제재에 나서며 소비자 권익을 지킨다. 영국의 금융행위감독청(FCA) 역시 소비자 보호를 금융시장 안정과 동일 선상에 두고 감독 체계를 설계했다.

그러나 국내 금소원은 '금감원 내 또 다른 금감원' 형태로 추진된다. 이를테면 '자식의 독립'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충분하단 이야기다. 이에 해외처럼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조직개편안은 금융당국의 권한 분산과 견제, 그리고 책임성 강화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기구를 쪼개는 것만으로 소비자 보호가 강화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권한의 실질적 배분과 운영 방식이다. 금소원이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단순한 명칭 변경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 조사·제재 권한과 함께 소비자 친화적 절차를 갖춰야 한다. 동시에 금감원과의 역할 중복을 최소화해 혼란을 줄이고, 소비자들이 '어디에 민원을 넣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도록 명확한 분기점도 마련해야 한다.

금융당국 4등분 개편은 굉장한 변화다. 하지만 소비자 보호라는 목표가 결국 조직 신설이라는 '형식'에 갇혀버린다면, 이번 개편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또 다른 비효율만 낳을 수 있다. 

아직 조직 개편안 시행까지는 약 3개월의 시간이 남았다. 개편안 발표 후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저마다 이해관계에 따라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금소원이 새로운 이름에 걸맞는 업무를 수행해내려면 정부와 금융당국 모두 "누구를 위한 조직인가"라는 질문에 끝까지 답을 내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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