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8.11 16:27
11일 오후 서울월드컵 경기장 앞에서 스카우트 대원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11일 오후 서울월드컵 경기장 앞에서 스카우트 대원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뉴스웍스=최승욱 편집인] 지난 1일 시작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2일 저녁 공식 개영식을 전후해 숱한 문제에 직면했다.  물에 잠긴 야영장, 변기가 막히고 에어컨도 없는 화장실, 쿨링공간과 얼음컵 부족, 줄을 길게 서야할 정도 모자랐던 샤워장,  발진과 물집을 일으키는 청딱지개미반날개(화상벌레)의 창궐, 부실한 식사 등에 대한 참가자들의 원성이 드높았다. 급기야 생존을 두고 다투는 '오징어게임'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국민들은 급수대에서 차가운 물이 아닌 더운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무더위에 지쳐 쓰러질 지경에 처한 14~17세 대원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많은 돈을 들여 방문한 외국 청소년들이 한국에 대한 나쁜 이미지만 갖고 가게 될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공식 로고. 바닷가에 위차한 새만금이 아닌 무주 구천동을 모사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로고제공=조직위원회)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공식 로고. 바닷가에 위차한 새만금이 아닌 무주 구천동을 모사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로고제공=조직위원회) 

바다를 간척해 만든 야영장이 최대 취약점이었다. 3년간 농지관리기금 1846억원을 쏟아부어 매립했지만 진흙탕 야영장에 그쳤기 때문이다. 1991년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열렸던 강원도 고성이나 당초 전북 내 후보지로 거론됐다가 경합에서 밀려난 무주 태권도원처럼 산악지형이었다면 8월초 무더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직위원회는 "새만금 야영장의 총면적은 약 8.8㎢로 한쪽 면이 바다와 접하면서도 풍부한 자연환경을 누릴 수 있는 넓은 대지 위에 조성됐다"고 홍보했지만 실상은 딴판이었다. 

지난 1일 새만금 쿨링터널에서 몇몇 스카우트 대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1일 새만금 쿨링터널에서 몇몇 스카우트 대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는 없었고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 열대야가 지속됐다. 무엇보다 농지용도로 평평하게 조성돼 비가 오면 흘러내려갈 곳이 없어 금방 침수되기 일쑤였다. 갯벌 지형인 관계로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를 감안해 파렛트 위에 텐트를 치도록 했지만 파렛트 높이의 절반까지 물에 고이거나 심지어 물에 뜰 정도라 텐트를 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곳도 있었다.

토목전문가들은 대원들이 숙영하는 곳임을 고려, 추가 성토를 통해 지표면에 경사를 냈다면 물난리로 인한 불편을 상당부분 줄였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경우 대회가  끝나면 다시 원상복구해야 한다.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작업이긴 하지만 안전하고 쾌적한 야영장이 갖는 중요성을 감안했다면 예산 전용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실시했어야 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7년 8월 대회 유치가 확정됐음에도 준비는 부실하고 운영도 엉성했다. 엉망진창으로 행사가 진행되는 것에 불만이 폭발한 영국과 미국, 싱가포르는 중도에 떠났다. 다른 참가국들은 잔류했지만 행사 열기는 이미 식었다. 조직위원회는 태풍 '카눈'이 온다는 점을 대의명분으로 삼아 조기 탈출을 결정하면서 새만금 잼버리는 한국 잼버리로 탈바꿈했다. 

158개국에서 찾아온 청소년 4만3000명은 전국으로 흩어졌다.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한 총력전이 펼쳐쳤다. 이들은 기업이 제공하는 연수원과 대학 기숙사, 지자체 수련원 등에 묵으면서 한국 문화와 음식, 자연환경을 즐겼다. 기업과 지자체 자원봉사자들과 지역주민들은 각국 청소년들이 한국에 대한 애정과 추억을 갖고 귀국해 대한민국 홍보대사 역할에 나설 것을 기대하면서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런 노력에 감복한 스카우트 대원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지난 7일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찾은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7일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찾은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

종교인들도 앞장섰다. 전국 주요 사찰들은 해외에서 온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참선, 명상, 사찰음식 만들기 등 불교문화 체험을 지원했다. 사랑의교회는 태풍 카눈이 한반도에 상륙한 지난 10일 잼버리 영국대표단과 공동으로 '스카우트 문화의 날' 행사를 주최했다. 6000여명의 스카우트 대원들은 손하트로 인사를 나누었다. 교회에서 마련한 각 채플실에서 '액티비티' 시간을 갖은 뒤 극동방송어린이합창단의 부채춤, 상모돌리기, 제이스틱의 난타, 국내 성악가 공연 등을 보며 박수를 보냈다. 리즈 워커 영국 스카우트 단장은 "한국인의 사랑과 정을 체험케 해준 사랑의교회에 감사하다"고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3일 전라북도 임실군 119안전체험관을 찾은 대원들이 수상 위기탈출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임실군)
지난 3일 전라북도 임실군 119안전체험관을 찾은 대원들이 수상 위기탈출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임실군)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우여곡절 끝에 11일 폐영식과 ’K-팝 슈퍼 라이브‘로 일정을 사실상 마쳤다. 정부와 전라북도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한때 좌초 위기에 몰렸던 이번 행사는 범국민적 지원 덕분에 가까스로 일어섰다. 국민들은 새만금에서 고생했던 외국 대원들을 만나면 미소로 대했다. 아이스크림을 제공하는 등 미담사례도 속출했다. 한국인의 친절함과 자상함이 확인되면서 외국 대원들의 마음도 열렸다.

물론 기업 시설을 갑자기 징발하다시피했고 일부 지자체는 외국 대원을 극진히 대접하는 과정에서 '조공'에 나섰다는 비난도 나왔지만 갑작스런 계획 변경에 따른 피치 못할 부작용으로 여겨진다. 외신 보도를 보면 대회 초기 구겨졌던 한국 이미지는 국민들의 열성 덕분에 상당부분 회복된 것으로 파악된다. 결국 관(官)이 망친 행사를 민(民)이 살린 셈이다. 위대한 국민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고 자부할 만하다. 

삼성물산이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에 전달하기 위해 준비 중인 전동카트와 전기차. (사진제공=삼성)
삼성물산이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에 전달하기 위해 준비 중인 전동카트와 전기차. (사진제공=삼성)

이에 반해 정치권은 새만금 잼버리 대회 내내 볼썽사나운 장면만 연출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서로 상대방의 잘못이라며 헐뜯기 바빴다. 여당은 이번 대회의 총책임자인 전라북도가 대회 유치를 명분으로 정부로부터 11조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받아 행사 준비를 실제로 도맡아온뒤 부실 운영이 드러나자 '정부 예산 지원 부족' 등으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정부지원위원회 위원장은 국무총리이고 조직위원장 5명 중 3명이 중앙부처 장관이라며 정부의 안일한 준비로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한 책임을 지자체에 떠넘겨서는 안된다고 반박했다.

앞으로 이런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진상 규명과 책임자 문책, 향후 유사 대회 유치에 대비한 보완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여성가족부는 물론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한국스카우트연맹 등을 대상으로 샤워장과 화장실 등 필수시설이 계획안보다 터무니없게 적게 설치되고 각종 시설도 부실했던 경위가 철저히 파악되어야 한다. 정부 예산으로 해외 출장을 즐겼던 공무원들이 보고서에서 기재했던 각종 유의사항이 새만금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은 과정도 조사되어야 할 것이다. 국제행사 유치를 핑계 삼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라는 혜택 속에 사회간접자본 사업을 추진하고 여기에 들어가는 거액의 예산도 확보하는 지자체의 '꼼수'가 재발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장치도 검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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