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1.20 20:01
한화오션 필리조선소 인수…HD현대중공업 MRO 사업 첫 입찰
포스코·현대제철·세아 현지생산시설 구축 검토…쿼터·관세 대응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국내 조선과 철강업계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을 앞두고 미국 내 직접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선업계는 현지 조선소 인수를 통한 미 해군 함정 수리 및 상선 건조 시장 진출, 철강업계는 제철소 건설을 통한 현지 생산 확대로 돌파구를 모색 중이다.
20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한화시스템과 함께 지난해 말 미국 필리 조선소의 지분 100%를 인수 절차를 마무리했다. 투자 금액은 총 1억달러(약 1449억원)로, 국내 기업이 미국 조선소를 직접 인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인수는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 조선업 부활' 정책과 맞물려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한국의 세계적인 조선 기술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MRO)뿐만 아니라 상선 건조에서도 한국과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필리 조선소는 1997년 미 해군 필라델피아 국영 조선소 부지에 설립돼 연안 운송용 상선,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선), 컨테이너선 건조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추가 투자 및 인력 충원을 통해 조선소 역량을 빠르게 확장할 계획이다.
HD현대중공업도 다음 달 미 해군 MRO 사업 입찰에 처음으로 참여해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선다. 회사는 올해 최소 2~3척의 MRO 사업 수주를 목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과감한 한화그룹과 신중한 HD현대그룹의 접근 방식이 각 기업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최적의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한화그룹은 그룹 포트폴리오에 에너지·방산 부문이 포함돼 있어, 필리 조선소 인수를 밸류체인 확장의 일환으로 본 것"이라며 "반면 HD현대그룹은 과거 삼성중공업이 해양플랜트 투자에서 대규모 적자를 경험한 만큼, 확실한 사업성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화는 HD현대와 달리 조선업이 핵심 사업이 아니라, 그룹의 주요 사업인 에너지·방산과 시너지를 내는 요소로 활용하는 것"이라며 "미국과의 거래에서 현지 조선소를 보유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두 그룹 모두 각자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적절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삼성중공업에 대해서는 현상 유지를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전망에 대해서는 "현재 상황은 한국 조선업에 큰 기회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의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다만, 미국 정부가 우리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면서 유리한 방향으로 시장을 끌고 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한화오션의 필리 조선소 인수는 미국 시장 공략의 초석이 될 것"이라며 "현지에서 지주회사·해운회사 등을 설립해 사업을 확장한다면, 단순 조선업을 넘어선 역할까지 수행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철강업계는 트럼프 2기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내 생산시설 구축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연 268만톤으로 제한(쿼터제)돼 있는 상황에서 재집권 시 철강 관세 장벽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은 최근 미국 남부 지역에 전기로 방식의 제철소 건설을 검토 중이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현지에서 연간 170만대 이상의 차량을 판매하고 있어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룹 내에서 자동차용 강판을 직접 생산하면 수익성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앞서 세아그룹은 지난해 7월 텍사스주에 연산 6000톤 규모의 특수합금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세아그룹의 미국 법인 '세아슈퍼알로이테크놀로지'는 1837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현지 투자 자금을 확보했다. 유상증자는 현지 생산 시설 구축을 위한 시설자금 1580억원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됐다. 특수합금은 내연성과 내식성이 뛰어나 항공우주·방산·발전용 터빈 등에 사용되는 고부가가치 소재로, 미국 정부가 전략적 자립을 강조하는 분야다.
포스코도 지난해 말 지난해 말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투자 확대 계획을 발표했으며, 미국 내 상공정(제철소) 투자를 검토 중이다. 상공정은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핵심 공정으로, 현지 생산이 가능해지면 공급망 안정화와 무역 장벽 회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도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화 전략 구축을 강조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철강사들의 미국 진출 검토 배경으로 미국 내 철강 수요 증가와 안정적인 현지 판매 가격을 꼽았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실장은 "미국 시장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제조업 부흥 정책에 힘입어 철강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라면서 "국내 철강 수요는 정체된 상황이라, 더욱 매력적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중국산 철강재의 미국 수출이 제한되면서 현지 철강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자국 철강사들의 영업이익률도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막대한 투자 비용이 소요돼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특히 미국은 풍부한 고철(스크랩) 자원과 저렴한 전기요금을 바탕으로 친환경 철강 생산에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어, 현지에서 친환경 철강 생산 역량을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으니 일본제철도 미국 US 스틸 인수에 공을 들였겠지만, 초기 투자 비용이 워낙 크기 때문에 그 이상의 수익을 창출해 투자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점은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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