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2.09 14:00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격'이 가시화된 가운데, 대미 무역수지에 따라 관세 수위가 조절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대미 무역적자가 큰 'K-푸드'는 관세 우려에서 다소 자유롭지만, 'K-뷰티'는 상당 수준 무역흑자를 보기 때문에 고관세를 피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비롯한 캐나다, 멕시코를 상대로 관세 전쟁 포문을 열면서, 우리나라도 조만간 관세 리스크에 직면할 것이란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 산업계는 보편 관세보다 대미 수출 품목 중 흑자와 적자 추이를 비교해 관세 부과를 결정하는 '타깃 관세' 실행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4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간한 '2025년 수출기업의 경영환경 전망' 보고서에서 1010곳의 수출 기업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보편 관세' 대신 '타깃 관세'를 매기는 쪽을 염두에 두고 있다. 특정 품목에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 물량을 제한하는 '무역법에 기반한 규제 확대(27.2%)'가 가장 우려스럽다는 반응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바이오·반도체 등 특정 품목의 관세 부과를 언급한 바 있다. 세계 각국과의 무역에서 미국의 적자를 심화시키는 품목을 우선으로 관세를 매기겠다는 의도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한국사무소는 최근 '트럼프 2기 주요 정책과 한국의 잠재적 영향력'이라는 제목의 내부용 보고서에서 타깃 관세에 동의했다. 향후 대미 수출이 줄어들 한국산 품목으로 ▲반도체 ▲석유제품 ▲석유화학 ▲자동차 ▲철강 ▲자동차 부품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가전제품 등을 꼽았다. 해당 품목 모두 한국이 대미 무역에서 흑자를 보는 품목이다.
국내 유통업계는 타깃 관세가 실현되면 업종에 따라 명암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시각이다. 농식품은 지난해 K-푸드 열풍에 힘입어 수출 증대를 맛봤지만, 관세 리스크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할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농식품 수출액은 약 99억8000만달러(약 14조5500억원)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이 가운데 대미 수출은 전년 대비 21.2% 증가한 15억9290만달러(약 2조3200억원)로 전체 농식품 수출액의 15.9%다.

미국산 농식품 수입액은 95억달러에 달해 수출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와의 농식품 교역으로 6배 수준의 무역흑자를 보고 있는 만큼, 관세 부과의 필요성이 낮다.
반면, 화장품은 상황이 다르다. K-뷰티는 2017년 한미FTA 발효 이후 대미 수출이 꾸준히 증가하며 무역흑자 폭을 확대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0년 4억8310만달러 수준이었던 대미 화장품 수출액은 지난해 15억5066만달러로 3배 이상 늘어났다. 같은 기간 대미 화장품 수입액은 지속 줄어들어 2억366만달러에서 1억6339만달러로 쪼그라들었다.
향후 K-뷰티에 대한 고관세가 현실화되면 아모레퍼시픽 등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기존의 수출 시장이던 중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자 미국 시장으로 기수를 돌렸다. 미국 시장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스킨케어 브랜드 '코스알엑스'를 약 1조원을 들여 인수할 정도로 회사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모든 산업에 손을 대긴 불가능한 상황이라 우리나라가 압도적 흑자를 보고 있는 품목을 골라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크다"며 "현실적으로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카드는 한미 FTA 재협상을 통해 전반적 무역 균형을 맞춰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는 2026년 미국 중간선거가 예정돼 트럼프 정책에 대한 평가가 있을 것이고, 중간선거 이후 정책 기류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며 "불행 중 다행스러운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최대 4년이라는 것이다. 국내 수출 기업들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관세 리스크를 최대한 버텨야하고, 정부도 효과적인 전략 수립과 지원사격에 적극 나서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