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2.20 17:30

[뉴스웍스=정민서 기자] 지난해 국내 정유업계가 정제마진과 국제유가의 동반 하락으로 본업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도 흑자 기조를 유지했다. 윤활유 사업이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며 실적을 이끌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GS칼텍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총 1조5821억원으로 전년 대비 71.3% 급감했다.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이 지난해 2~3분기에 크게 내린 탓이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을 뺀 금액을 의미한다. 유가가 오르면 석유제품 가격이 따라 상승하면서 정제마진이 커지며, 반대로 유가가 떨어지면 석유제품 가격이 동반 하락하고, 정제마진도 줄어들게 된다.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지난해 1분기 배럴당 7.3달러 수준에서 3분기 3.6달러로 절반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통상 정유사들의 손익분기점이 4~5달러선인 점을 고려할 때 거의 이윤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같은 기간 국제유가도 하락세를 보이며 실적을 악화시켰다.

다만, 4사 모두 윤활유 부문에서 호실적을 거두며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윤활유 사업에서 가장 높은 영업이익(686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내부 계열사인 SK온의 배터리 사업 적자(1조1270억원)를 절반 가까이 상쇄한 수준이다. 이어 ▲석유 개발사업 5734억원 ▲석유 사업 4611억원 ▲화학 사업 1253억원 등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최종적으로 3155억원의 흑자를 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올해 윤활유 사업은 SK엔무브의 고급 윤활기유 제품에 대한 견조한 수요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에쓰오일 역시 윤활유 부문에서 571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전사 영업이익(4605억원)을 웃도는 실적을 냈다. 정유 부문에서 2454억원의 영업손실을 봤지만, 윤활기유와 석유화학(1348억원) 사업이 이를 만회했다. 회사는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3.6% 증가한 2963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윤활기유 스프레드는 봄철 윤활유 교체 시즌 도래에 따른 수요 회복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도 윤활유 부문에서 가장 안정적인 실적을 기록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석유화학 부문에서 699억원의 영업손실을 봤지만, 윤활유와 정유 부문에서 각각 1681억원, 956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최종적으로 2580억원의 흑자를 올렸다.
GS칼텍스 역시 정유 부문에서 186억원의 손실을 기록했으나, 윤활유 부문에서 4845억원, 석유화학 부문에서 821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총 5480억원의 흑자를 달성했다.

윤활유는 비정유 사업 중 하나로, 엔진과 기계 부품의 마찰·마모를 줄이고 과열을 방지해 성능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고급 윤활기유 수요 증가에 따라 정유업계의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해 대규모 서버를 갖추는 산업이 증가하고 서버 하드웨어가 고도화되면서 이를 냉각시키기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 절감할 액침냉각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액침냉각은 서버나 배터리 등 열이 발생하는 전자기기를 액체에 직접 담가 냉각하는 기술이다. 공기로 열을 식히는 공랭식보다 전력 소모와 운영 비용을 개선할 수 있어 새로운 열관리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리서치에 따르면 액침냉각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5000억원에서 2040년 약 42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업계는 제품 개발에 속도를 내며 향후 개화할 데이터센터,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용 배터리 등의 열관리를 위한 액침냉각 시장을 대비하는 모습이다.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 SK엔무브를 통해 지난 2022년부터 데이터센터 액침냉각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듬해인 2023년 GS칼텍스도 데이터센터 액침냉각유를 출시하며 열관리 시장에 진출했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10월 인화점 250℃ 이상의 고인화점 액침냉각유인 '에쓰오일 e-쿨링 솔루션'을 출시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HD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12월 글로벌 액침냉각 시스템 기업 GRC로부터 일렉트로세이프 프로그램 인증을 획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