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현준 기자
  • 입력 2025.02.23 14: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도널드 트럼프 페이스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도널드 트럼프 페이스북)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자동차에 25%의 고율 관세를 예고하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가 비상에 걸렸다. 현대차그룹은 GM 현지 공장을 활용한 미국 내 생산 확대를 검토하며 관세 충격을 최소화하려 하지만, 국내 공장 축소 운영으로 부품 협력업체들의 연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미국 현지 생산량을 현재 연 70만대에서 120만대로, 50만대 이상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현대차 앨라배마공장(연 36만대), 기아 조지아공장(연 34만대),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생산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국내 생산분을 미국으로 이전해 관세 충격을 줄이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미국 판매량이 170만대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전체 판매의 30%가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메리 바라 GM 회장 겸 CEO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협약서에 서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메리 바라 GM 회장 겸 CEO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협약서에 서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이런 가운데 GM과의 협력을 통한 미국 내 생산 확대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GM이 보유한 11개 공장을 현대차그룹이 활용해 차량을 생산하면 현지 생산량을 더욱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차·기아 협력사들이 제작한 부품을 반조립 제품(CKD) 형태로 공급하면, 고율 관세를 회피하면서도 생산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GM 역시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재정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차와의 협업에 긍정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GM은 2013년 유럽을 시작으로 2015년 인도네시아·태국, 2017년 인도 시장에서 철수하며 글로벌 생산 거점을 축소해왔다.

반면 현대차·기아는 체코,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슬로바키아 등에 생산 기지를 운영하고 있어 GM이 현대차와 협력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시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현대차·기아와 GM의 생산 방식이 다르고, 부품 공급망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제약이 클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현대모비스 북미 모듈공장 운영 현황. (사진제공=현대모비스)
현대모비스 북미 모듈공장 운영 현황. (사진제공=현대모비스)

더 큰 문제는 부품 업체들이다. 현대차·기아의 미국 현지 생산이 확대될 경우, 국내 공장은 축소 운영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전체 수출량(217만7788대) 중 46.6%인 101만3931대가 미국으로 향했다. 이는 국내에서 생산된 차량 10대 중 5대가 미국으로 수출됐다는 의미다. 만약 이 물량이 현지 생산으로 대체되면 국내 부품업체들은 납품 물량 감소로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대모비스·HL만도·한온시스템 등 국내 1차 부품 협력사들은 고객사인 완성차 업체의 대응 방안을 지켜보며 지침에 맞춰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온시스템 관계자는 "아직 명확한 대응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본적인 방향은 고객사의 방향에 맞춰 대응할 것"이라며 "이미 미국, 유럽 등 21개국에 50개 공장을 운영하면서 지역별 대응 전략을 구축한 상태"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기아 멕시코 공장 인근에 모듈 공장을 운영 중인 만큼, 완성차 업체의 생산 변화에 따라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전 세계의 현대차 공장 옆에 모듈 공장을 두고 운영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의 생산량 증감에 따라 물량이 변동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미국·멕시코·캐나다에 현지 공장을 두고 있어 대응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지 생산기지가 없는 2·3차 협력사들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의 '2023년 자동차 부품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는 총 1만5239개사로, 1차 협력사(952개사)에서 2차 협력사(2577개사), 3차 협력사(9536개사) 등 피라미드 형태의 도급형태로 구성돼 있다. 이에 따라 2·3차 협력사로 내려갈수록 경영난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 자체만으로도 부품업체들이 연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부품사에 관세를 별도로 부과하지 않더라도 완성차 업체가 25%의 관세 부담을 지게 되면, 판매 감소로 이어져 부품업체에도 납품 단가 인하 압박이 가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품사들도 거래선 다변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중요한 골든타임이 있을 수 있다"며 "조속히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완성차 업체의 공식적인 지침이 나오기 전까지 사실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톱다운 방식의 산업 구조가 중소 부품업체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업계에서는 최근 미국이 10%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이 각각 1조9000억원, 2조4000억원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관세가 25%로 확대된다면 단순 계산만으로도 영업이익 감소폭이 10조원에 달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영업이익률이 1% 미만인 중소 부품업체들이다. 이 교수는 "매출이 줄어들 경우 2·3차 협력업체들은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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