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6.11 18:38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법정공휴일에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강제로 묶어두는 법안들이 물밀듯 밀려들면서 관련 업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거대 온라인 플랫폼이 소비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은 마당에 이러한 고강도 규제가 각종 문제를 불러올 것이란 우려다.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휴업일 자율 결정권 폐지와 함께 월 2회 의무휴업일을 일요일 등의 법정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금은 각 지자체가 재량껏 판단해 휴업일을 정하고 있으며, 대부분 평일에 쉰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일요일과 연휴에 대형마트 영업이 금지된다. 해당 법안은 이미 국회 소위원회를 통과했고 조만간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조국혁신당을 포함한 '거여'가 국회 180석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관련 법안 통과는 시간문제로 평가받고 있다.
대형마트가 일요일 등 법정공휴일에 문을 열지 못한다면 매출 타격이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마트의 평일과 주말 매출은 절반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주말 매출이 압도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마트에 입점한 소상공인 매장들도 주말 영업이 금지되며 매출 손실이 불가피하다. 차후 고용 문제도 불거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의무휴업일만 손보지 않고 있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전통시장 반경 1㎞ 이내 출점 제한을 5년 연장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단순히 SSM에 그치지 않고 백화점과 면세점, 아울렛 등 반경을 넓히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면세점 업계는 최근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선 절체절명의 상황이라 관련 규제의 실효성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또한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대형 유통매장이 입점 브랜드와 임차계약을 체결하면 임대료 등을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게 하는 공정화법 개정안을 거론했으며, 허영 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가 지역 협력 계획을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김동아 민주당 의원도 대형마트가 지역 협력계획을 이행하지 않으면 지자체장이 등록제한권을 휘두를 수 있게 한 유통법 개정안을 각각 마련했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규제들을 두고 프랑스 에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의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받는 '에갈림(Egalim)법'의 한국판과 마찬가지라는 평가다. 마크롱법으로 불리는 에갈림법은 정부가 직접 개입해 대기업의 유통 독점력을 막겠다는 의도다. 불공정한 저가경쟁 억제와 납품업체 보호, 프랑스 농민 보호 등 공정경제 실현은 현재 우리나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과 비슷한 취지다.
하지만, 관련 법은 프랑스 농민들의 대규모 트랙터 시위 등 국민 불만으로 폭발했다. 농민에게 정당한 가격을 보장하겠다는 법이었지만, 대형 유통업체들이 생존과 직결되면서 우회계약과 수입산 사용 등 각종 역효과를 불러왔다. 여기에 획일적 할인제한이 소비자들의 구매 선택권을 침해했고, 물가상승이라는 중대한 문제까지 불러왔다. 인력 구조조정과 같은 실업난도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미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강제한 국내 유통산업발전법은 10여 년 동안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는 분석 결과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2023년 한국소비자원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61.2%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불편하다고 답변했다. 한국유통학회는 보고서를 통해 의무휴업 실시가 전통시장 매출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고, 오히려 온라인 소비가 늘어나 대형마트만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 결과를 실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1분기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업계 전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0.4% 감소했고, 쿠팡 등 온라인 유통업계 매출은 16.7%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산업발전법은 '유통산업의 효율적인 진흥과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고 건전한 상거래질서를 세움으로써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강력한 통제로 인해 그동안 유통산업을 저해시키는 역할만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2년 의무휴업일 시행이 나왔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국내 유통산업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뀐 상황"이라며 "현 정부가 유통산업의 지속 발전을 위한 기반 구축을 등한시하고 일방적 규제로 일관한다면, 최근 홈플러스 사태와 같이 극심한 소비 절벽과 맞물려 관련 산업을 더욱 쇠퇴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어제오늘이 아니기 때문에 주요 사업자들이 규제 강화 대비를 해왔던 만큼, 매출 타격이 예상보다 크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진협 한화투자증권 기업분석팀 애널리스트는 "이마트는 133개점 중 53개점(40%)이, 롯데마트는 총 110개점 중 31개점(28%)이 평일 의무휴업을 시행 중"이라며 "만일 법안이 통과돼 평일 의무휴업 점포가 모두 일요일에 쉰다면 이마트는 약 -0.8%, 롯데마트는 약 -0.6%의 매출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규제로 인한 매출 하락보다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홈플러스 폐점에 따른 낙수 효과가 더 클 수 있다"며 "홈플러스의 연간 매출액은 7조원 수준으로 현재 폐점이 확정된 점포는 9개점, 계약 해지 통보 점포는 27개점으로 총 36개 점포(전체 중 약 29%)가 폐점 가능성이 있어 매출 약 2조원이 분산될 수 있다. 인근 경쟁점이 30%만 흡수해도 약 7000억원의 매출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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