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현준 기자
  • 입력 2025.06.25 18:30

이달 20일까지 상장 불발…풋옵션 계약 따라 소프트뱅크 지분 매입
인수 후 내리 적자…기업가치 끌어올려 상장 재추진 시점 모색할 듯

공영운(왼쪽부터) 현대자동차그룹 공영운 사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현대차그룹이 지난 2021년 9월 13일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국회 모빌리티 포럼 3차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에게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공영운(왼쪽부터) 현대자동차그룹 공영운 사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현대차그룹이 지난 2021년 9월 13일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국회 모빌리티 포럼 3차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에게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최대 주주인 로봇 제조사 보스턴다이내믹스(BD)의 미국 나스닥 기업공개(IPO) 기한이었던 이달 20일을 넘기며 연기됐다. 이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이 승계 자금 창구로 주목받고 가운데, IPO 대신 지분 매입과 적자 탈출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 전략이 본격 가동된 것으로 풀이된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상장을 당분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2021년 6월 소프트뱅크로부터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60%를 약 8095억원에 인수하면서 4년 내 상장을 약속한 바 있다.

미국 나스닥 상장은 한국과는 절차가 다르다. 국내는 공모가 희망 범위를 제시한 후 수요예측을 진행하지만, 미국은 주요 투자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공모가를 책정하고 이를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아직 증권신고서 작성을 위한 실질적 절차에 착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지난 2021년 현대차그룹이 약 1조원을 들여 소프트뱅크로부터 지분 80%를 인수해 계열사로 편입됐다. 현재 HMG글로벌 54.7%, 정 회장 21.9%, 현대글로비스 11.0%로, 현대차그룹은 총 87.6%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나머지 12.4%는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6월 20일까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상장하지 못하면 소프트뱅크 지분을 매입하기로 한 풋옵션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조만간 소프트뱅크의 지분 전량을 인수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100% 자회사로 만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지분 10.95%가 약 2647억원으로 평가한 점을 고려하면, 소프트뱅크의 지분 가치는 약 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1월 30일(현지시간)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공장에서 사람처럼 일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지난해 11월 30일(현지시간)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공장에서 사람처럼 일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업계는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을 전략 확보한 뒤, 기업가치가 오르는 시점을 기다려 IPO를 재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은 정의선 회장의 승계 구상과도 맞닿아 있다.

정 회장이 승계 작업을 마무리하려면 현대모비스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현재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 0.33%, 현대차 2.67%, 현대글로비스 20.0%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이 구조를 해소하면서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을 약 23%까지 늘려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정 회장이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일부를 매각해 자금을 확보한 후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가 10조원으로 평가될 경우, 정 회장이 보유한 21.9% 지분 가치는 약 2조2000억원에 달한다. 기업가치가 20조원까지 상승하면 해당 지분 가치는 4조4000억원까지 뛰면서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에 필요한 자금을 상당 부분 충당할 수 있게 된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현재 4족 보행 로봇 '스팟'과 물류 자동화 로봇 '스트레치'를 상용화해 현대차그룹 계열사와 DHL 등에 공급 중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이르면 연말 현대차그룹 생산공장에 투입돼 실증 데이터를 확보하고, 2028년 외부 상용화가 추진될 전망이다. 로봇 판매 확대와 흑자 전환에 성공한다면 기업가치는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다. 최근 로봇 스타트업 피겨 AI가 395억달러(약 54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점도 기대를 키운다.

현재 현대모비스의 시가총액은 27조2172억원이다. 이 가운데 정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 등 최대주주 일가의 지분율은 7.6%에 불과하며, 가치는 약 2조원 수준이다. 경영권 안정을 위한 통상적인 지분율인 25%에 도달하려면 추가로 약 4조6000억원의 자금이 추가로 필요하다. 여기에 상속세 부담도 크다. 정 명예회장의 지분 상속 시 최대 60%를 상속세로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글로비스의 자동차운반선(PCTC) '글로비스 센추리'호. (사진제공=현대글로비스)
현대글로비스의 자동차운반선(PCTC) '글로비스 센추리'호. (사진제공=현대글로비스)

정 회장은 과거에도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해 승계 기반을 마련해 왔다. 2001년 현대로지텍(현 현대글로비스) 설립 당시 약 60%의 지분을 보유하며 계열사 물류를 몰아주었고, 이를 통해 개인 자산을 빠르게 축적했다. 하지만 총수 일가 사익 편취 논란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받으면서 현재 지분율은 20%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후 2018년에는 현대모비스의 모듈 및 AS 부품 사업을 떼어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려 했지만, 합병 비율 논란과 외국계 투자자의 반발로 두 달 만에 철회되며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중단됐다.

현재는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새로운 승계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 회장이 이 지분을 활용해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하고, 그룹 지배구조를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로 단순화하려는 구상이다. 이는 상속세 부담을 줄이고 경영권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해석된다. 시장 일각에서는 IPO를 통해 정 회장이 최대 8조원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상수 iM증권 연구원은 지난 19일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상장은 정의선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 확대를 위한 현금 조달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지분 일부를 매각하면 6조~8조원의 자금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0일 방송된 미국 TV쇼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이 노래에 맞춰 안무를 선보이고 있다. (출처='아메리카 갓 탤런트' 유튜브 채널)
지난 10일 방송된 미국 TV쇼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이 노래에 맞춰 안무를 선보이고 있다. (출처='아메리카 갓 탤런트' 유튜브 채널)

해당 전략의 성패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 상승 여부에 달려 있다.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가 상승하면 승계 작업도 수월해지지만, 반대로 하락할 경우 순환출자 해소 시나리오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소프트뱅크 지분 인수를 통해 보스턴다이내믹스에 대한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향후 기술 개발과 사업화에 외부 간섭 없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적절한 시점에 상장을 재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20년 인수 이후 지금까지 한 해도 흑자를 내지 못했고, 지난해에도 약 44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정 회장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매년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지분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그는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총 5571억원 이상을 투자했으며, 그룹 차원에서도 HMG글로벌을 통해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가 간접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IPO 연기는 어느 정도 시장의 예상된 수순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승조 현대차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2월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IPO와 관련해 확정된 계획은 없으며, 이른 시일 내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최근 미국이 자율주행 차량 사고 보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규제를 완화하고 있고, 구글 웨이모·테슬라에 이어 아마존도 시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가 앞으로 크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IPO 시점을 늦춘 것은 시장 인식이 극대화되는 시점을 노려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궁극적으로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IPO 연기는 지배력 강화 목적이라기보다는 소프트뱅크의 풋옵션 해소 등 상장 요건을 갖추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며 "미국 시장은 한 번 상장에 실패하면 재기가 어려운 만큼, 현대차그룹이 철저한 준비를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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