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7.07 11:38
도요타 등 美 판매가 인상…고관세 피해 보전 차원
친환경차-현지화 전략 유효…재고 소진에도 '버티기'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현대자동차·기아가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 고관세 악재에도 경쟁사들과 달리 자동차 가격 동결 정책을 유지하고 있어 추후 행보가 주목된다. 양사 모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월 2일부터 부과하기 시작한 25% 자동차 관세에 대비해 비축했던 재고는 이미 바닥난 상태다.
7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미국 법인이 실시해 온 차량 할인 혜택이 이날로 종료된다. 그동안 현대차는 미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차량 현금 구매 시 1750달러(약 237만원)에서 2750달러(약 373만원)의 할인을 제공해 왔다.
당초 해당 서비스는 지난 6월 2일로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현지 소비자 반응이 좋아 한 달 더 연장됐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후로는 현대차와 기아가 더 이상의 할인 정책을 실시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고관세 여파가 실적에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현대차그룹의 미국 판매가격 동결 정책 유지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앞서 현대차는 지난 4월부터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에 25% 관세가 적용됐음에도, 6월 2일까지 미국 내 판매 차량 가격을 동결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대차 미국 법인의 할인정책도 이 시기와 맞물려 이뤄졌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등 현지 경쟁업체들이 고관세 부담을 무릅쓰고 가격을 동결했기에 가격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4월 미국발 관세 적용에 대비해 미리 현지에 수출해 둔 현대차·기아 비관세 물량이 모두 소진됐다. 자동차 시장 조사업체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4월 초 기준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재고 일수는 각각 94일, 62일로 집계됐다.

비관세 재고 활용은 수출과 국내 생산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등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지난 5월 대미 수출 물량은 총 7만7892대로 전년 동월 대비 21.5% 줄어들었다. 같은 시기 국내 생산 규모는 29만1649대로 전년 동월 대비 5.0% 감소했다.
증권가에서는 "미국발 관세 적용에 따른 판매와 원가 반영이 지난 5월 시작된 만큼, 2분기에 들어가는 판매 비용은 전년 동기 대비 7200억원 늘어날 것"이라며 "관세 방어 효과가 없는 3·4분기부터는 관세 충격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024년 기준으로 현대차·기아는 4대 중 1대를 미국에 팔았을 정도인 만큼, 미국발 관세 타격은 전체 수익성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차의 2분기 증권사 평균 영업이익 전망치는 3조639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94% 줄어들 전망이다. 기아 영업이익도 3조1604억원으로 전년보다 13.26%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경쟁업체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보니, 그동안 동결했던 가격을 인상하기 시작했다.
도요타는 지난 1일 이후 생산한 자동차를 대상으로 미국 자동차 판매 가격을 평균 270달러(약 37만원) 인상했다. 미쓰비시자동차 또한 지난 6월 18일 미국 내 판매 가격을 평균 2.1% 인상했고, 스바루는 6월 생산 차량부터 가격을 올렸다. 포드 같은 현지 업체들도 멕시코에서 생산해 미국에 판매하는 자동차 가격을 지난 5월 인상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 현대차·기아만 지난 6월 2일로 미국 내 가격 동결 시한이 끝났음에도, 관세 피해 보전을 위한 가격 인상 공식 발표가 없다. 오히려 랜디 파커 현대차 북미권역 본부장은 이달 초 오토모티브뉴스와 인터뷰에서 "가격 인상 관련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당장 계획도 없다"면서 "오히려 연말까지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판촉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기아 역시 현재로서는 가격 인상 계획이 없는 상태다.

하이브리드를 비롯한 친환경 차량과 SUV 모델에 대한 현지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게 현대차·기아의 과감한 행보 배경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현대차는 해당 라인업을 앞세워 올해 미국에서 전년 동기 대비 8.9% 늘어난 89만3152대를 판매, 동기간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미국 등 현지화 강화 전략도 가격 동결 정책 유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에 연간 30만대 생산 규모의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공장을 완공했고, 전기자동차와 하이브리드차 생산도 확대할 예정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 회장 부친 정몽구 명예회장 때부터 이어진 현대차그룹 특유의 현지화 정책에 따라, 가격 인상을 하더라도 그 폭을 최소화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소비자 부담을 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한국이나 일본에 대한 자동차 관세 정책을 철회할 생각이 없기에 당장은 정책적 변수를 기대할 수 없다. 상반기 전체적으로는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판매가 늘었다고는 해도, 정책 불투명성에 따른 가격 인상에 대비한 미국 소비자들의 패닉바잉 성격도 짙었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일 전기차 구매 세액 공제 폐지 조치를 담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에 서명한 것도 중장기적으로 현대차·기아 수익성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에서 하이브리드 차량 생산량을 늘린다 해도 대세인 전기차 세액 공제 폐지는 현대차·기아에 뼈아픈 결과"라며 "재무건정성이 당장은 나쁘지 않겠지만, 객관적으로 미국 판매 가격 동결이라는 도박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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