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현준 기자
  • 입력 2025.06.27 18:00

산업계 협상 '이정표'…2003년 주 5일제 도입 후 확산 주도
전문가들 "무분규 타결 예상…주 4.5일제 시범 도입 주목"

현대자동차 노사 관계자들이 지난 18일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2025년 임금 및 단체협상 교섭 상견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현대자동차 노사 관계자들이 지난 18일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2025년 임금 및 단체협상 교섭 상견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현대자동차 노사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 초반부터 핵심 쟁점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정년 연장과 통상임금 위로금, 주 4.5일제 도입 등은 산업계 전반에 파급력이 큰 사안으로, 협상 결과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27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는 전날 세 번째 교섭을 진행했다. 양측은 지난 18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임단협 협상에 들어간 이후, 주요 요구안과 쟁점 조율에 돌입한 상태다.

노조는 ▲기본급 14만1300원 인상 ▲전년도 순이익의 30% 수준 성과급 지급 ▲상여금 900% 지급 ▲주 4.5일제(금요일 4시간 단축 근무) ▲정년 연장(만 60→64세) ▲퇴직금 누진제 ▲통상임금 위로금 2000만원 등을 주요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이 중 정년 연장과 통상임금 위로금, 주 4.5일제가 핵심 쟁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노조는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64세까지 단계적으로 연장하고, 재직 중인 조합원 모두에게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전환기에 접어든 만큼 숙련 인력의 기술 유지와 전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업계에 따르면 노조의 정년 연장 요구는 2019년부터 지속됐고, 사측은 그동안 '법 개정 시 협의'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올해 '정년 연장 전담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예고하며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이 같은 절충 속에서 현대차는 2019년 이후 6년 연속 무분규 타결을 이어왔다. 

서울 서초구 소재 대법원. (출처=대법원 홈페이지)
서울 서초구 소재 대법원. (출처=대법원 홈페이지)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위로금 요구도 난제다. 지난해 대법원이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리자, 노조는 조합원 1인당 평균 2000만원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조합원 수는 약 4만1000명으로, 회사가 감당해야 할 총액은 약 8200억원에 달한다. 대법원판결은 소송 당사자에게만 적용되지만, 노조는 "동일한 상황에 놓인 조합원이라면 모두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 노사가 20년 만에 통상임금 체계를 전면 개편한 사례는 다른 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 4.5일제 도입도 핵심 쟁점이다. 노조는 주 5일제를 유지하면서 금요일 근무 시간을 4시간으로 줄여 주당 근무시간을 36시간으로 단축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근로 시간을 줄이더라도 임금 삭감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사측은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한 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외에도 노조는 상여금을 기존 750%에서 900%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기본급 인상과 성과급 책정 등 임금 조건에 대해서도 교섭을 이어가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는 의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는 의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특히 정년 연장 논의는 이재명 정부 출범과 맞물려 더욱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는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정년 연장은 우리 사회 효용성과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라며 "사회 전반에서 과거보다 개방적인 태도가 감지된다"고 언급했다. 

현대차 임단협은 단순한 기업 협상 차원을 넘어 국내 산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지난 2003년 현대차 노조가 주 5일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이후, 8년간 전국 산업계로 제도가 확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현재까지도 현대차의 협상 결과는 주요 제도 변화의 '바로미터'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 2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전국금속노동조합 결의대회'에서 박상만 금속노조 부위원장 및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지난 2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전국금속노동조합 결의대회'에서 박상만 금속노조 부위원장 및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전문가들은 올해 협상에서 여러 쟁점으로 인해 진통이 예상되지만, 무분규 타결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고 전망한다. 특히 현대차의 협상 결과는 다른 기업의 교섭 기준이 되는 '이정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정년 연장은 노노(勞勞) 갈등 소지가 있어 사측의 수용 가능성이 작고, 통상임금 위로금은 퇴직금 등에 미치는 영향이 커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주 4.5일제는 생산 효율을 전제로 시범 도입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친노조 성향의 정부 기조에 따라 사측도 일부 수용 가능성이 있으며 정부 임기 내 단계적 타협을 통해 상당 부분 이행될 가능성이 크다"며 "노조는 사측에 5년 치 숙제를 미리 제시한 셈이고, 사측은 이를 언제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노사 간 본격적인 입장 조율이 예정된 다음 달 1일 4차 교섭부터 긴장감이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7월 잠정 합의안을 가결해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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