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희진 기자
  • 입력 2025.07.01 15:14

[뉴스웍스=정희진 기자] 수천억이 사라져도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시장이 정상일까.

한국투자벨기에코어오피스 부동산 신탁 2호는 지난 2020년 4월 29일 기준가 1026.62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2023년 3월 말 675.77원으로 떨어진 뒤 지난해 4월 271.57원으로 급락했고, 결국 지난해 말 기준가는 1원까지 하락하며 사실상 전액 손실 상태에 이르렀다.

현행 자본시장법 제55조는 집합투자업자(운용사)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자산운용보고서를 투자자에게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시행령 제82조는 이를 3개월마다 투자자에게 보고 하도록 못 박는다. 하지만 운용사는 개인정보 보호법상 투자자 연락처를 직접 보유할 수 없다. 결국 공시된 보고서를 실제로 전달하는 역할은 판매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문제는 이 '유일 통로'인 판매사 전달 책임이 법적으로 공백인 상태라는 점이다. 자본시장법과 금융소비자보호법 어디에도 판매사가 고객에게 운용보고서를 어떻게,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전달 여부를 점검할 책임도 마찬가지다.

판매사들은 "예탁원에 저장되는 고객 정보는 1년 만기이기 때문에 발송 기록은 있지만 고객이 실제로 받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 "고객이 자신의 집 주소 및 이메일 주소를 잘 못 입력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자신들에게 맡아달라고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금융상품으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다면 매번 이렇게 책임을 피할 것인가. 판매사 입장에선 송달 여부를 실질적으로 확인하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비용과 리스크가 따를 수 있지만, 그 비용 부담이 고객 자산 보호보다 우선될 수는 없다.

이번 벨기에코어오피스 펀드 사태는 판매사 전달 책임 공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분명히 드러냈다. 정보는 단순히 '공개됐다'는 사실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투자자에게 실제로 투자정보가 도달해 대응할 기회를 제공할 때에만 보호 장치로서 의미가 생긴다.

판매사의 책임은 상품 판매 시점에 그치지 않는다. 판매사는 펀드 판매 후에도 해당 펀드가 핵심상품설명서에 맞게 운용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점검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이는 판매사가 펀드 운용 과정 전반에 걸쳐 투자자 관점에서 감시자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만약 판매사가 펀드 운용이 핵심상품설명서와 부합하지 않거나 법령을 위반하는 불합리한 운용 행위를 발견할 경우, 운용사에 시정 요구를 해야 한다. 이러한 시정 요구 의무는 판매사가 단순히 사후적으로 문제를 파악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는 능동적인 책임이 있음을 보여준다.

자산운용보고서는 투자자 보호의 마지막 안전망이다. 앞으로 이와 같은 안전망이 종이 위에서만 머물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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