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7.31 10:51
車·철강은 수출경쟁력 상실 등 직격탄
반도체·제약도 조만간 품목관세 유력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이 타결됐지만, 수출기업들의 피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의 수출 시장 중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는 미국이 8월 1일부터 주요 분야에 15% 이상의 품목관세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나 철강은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전까지만 해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 혜택을 받으면서 한국 수출 효자 노릇을 해온 분야다.
미국은 추후 한국의 또 다른 주요 수출 품목인 반도체나 의약품에도 품목관세를 부과할 수 있어 기민한 대응이 요구된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다음 달 1일부터 한국에서 수입하는 자동차에 15%, 철강·알루미늄·구리 제품에는 지난 6월 초부터 적용했던 50%의 품목관세를 그대로 적용한다고 31일 발표했다.
이번 조치로 기존 한국산 자동차 및 부품에 부과되는 관세가 25%에서 15%로 낮아졌다. 그러나 미국 수출 경쟁국인 일본과 유럽연합(EU)도 미국과 15%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이는 현대자동차·기아 등의 가격 경쟁력 상실로 이어져 수익성에 지속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2024년 연간 기준으로 한국의 전체 자동차 수출액은 708억달러에 달한다. 이중 현대차와 기아의 수출액은 533억6000만달러로 75%를 차지한다. 현대차·기아는 같은 시기 4대 중 1대를 미국에 팔았을 정도로 현지 의존도가 높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4월 초부터 미국이 수입산 자동차에 25% 품목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한 이후에도 현지 가격을 동결해 왔다. 3개월 정도는 비관세 수출분으로 버텼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다르다. 이미 도요타 등 글로벌 경쟁사들은 현지 가격을 인상했다.
25% 관세 적용 기준이기는 하나, 가격 동결로 버텨온 현대차·기아는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1조6000억원 줄었다. 현대차와 기아의 관세 부담에 따른 영업이익 감소 규모는 각각 8282억원, 기아는 7860억원이다. 다음 달 1일부터 관세 적용분이 15%로 낮아진다고는 해도 미국 시장 중요도를 고려하면 추후에도 수익성 타격은 불가피하다.

지난 6월부터 50% 관세가 적용된 철강업계도 상당한 피해를 볼 전망이다. 25% 관세가 적용되던 지난 5월 기준으로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6.3% 줄었다. 같은 시기 수출단가 또한 9.4% 낮아져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업체의 마진 축소 노력이 이어졌다.
현대제철의 경우, 마진 축소 노력으로 2분기 영업손실 75억원을 기록, 적자 전환했다. 포스코홀딩스 2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전년 동기 대비 14.0% 줄었다. 이미 포스코나 현대제철의 글로벌 경쟁사인 일본제철은 US스틸을 인수하면서 미국 현지 생산을 통한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50% 관세가 유지되면서 한국 철강업체들의 현지 시장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철강업계 고위 관계자는 "미국 수출 의존도가 큰 강관사들의 매출 하락은 물론 이들에 대한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소재 공급 감소라는 악순환 고리가 생기게 된다"며 "철강·알루미늄·구리 관세 50%에서 가장 큰 문제를 꼽으라면 모두 산업 기초소재 품목들인 만큼, 타 산업으로 수요 둔화와 가격 하락 효과 전이 등 간접적 영향"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 결과는 LS그룹 등 비철금속 관련 사업체나 조선업에도 일부 영향이 있을 전망이다. 다만 구리로 핵심 소재로 전선 및 케이블을 생산하는 LS전선은 원가연동제로 원가 부담을 낮출 수 있고, LS MnM은 미국 시장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조선업의 미국 시장은 현재로서는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이번 협상으로 1500억달러 규모의 조선협력 펀드가 조성되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미국 시장 본격 진출의 발판을 얻을 것이라 보고 있다.

또 다른 수출 효자 산업군인 반도체는 아직은 미국으로부터 품목관세 적용을 받지 않지만, 추후 공급망 재편 및 투자 압박이 심해질 것으로 보여 안심할 수 없다. 반도체는 미국 첨단 산업 육성 정책의 핵심인 만큼, 트럼프 행정부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현지에서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고 눈치를 주고 있다.
반도체 품목 관세 부과 시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 반도체 수출 가격이 상승하는 만큼, 수요 감소 및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액의 7.5%로 자동차나 철강보다는 낮지만, 핵심 수출 품목인 만큼 그 타격은 상당할 수 있다. 반도체 관세는 결국 반도체를 사용하는 스마트폰 및 가전, 서버 등 IT 기기의 단가 인상으로도 이어져 부품 및 장비 업체들은 물론 소비자들도 피해를 볼 수 있다.
제약업계도 미국 수출 전선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러트닉 장관이 의약품 관세를 15% 이상으로 부과할 수 있음을 시사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최대 200%의 고율 관세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의약품에도 품목관세가 부과될 경우, 수출단가 인상 및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수익률이 낮은 제네릭 의약품 시장에서는 관세 부담이 크면 아예 시장에서 철수하는 업체들이 속출할 수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향후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추가 협상을 통해 관세율 인하 또는 품목 예외 인정을 추진하고, 기업들은 수출 시장 다변화 및 현지 생산 확대 등 다각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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