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현준 기자
  • 입력 2025.07.31 17:08

EU·日과 같은 15% 관세에도 주가 하락…한미 FTA 무관세 혜택 상실
전문가 "불확실성 해소 긍정적…향후 제조 경쟁력 확보 승부처될 듯"

현대차·기아 사옥. (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기아 사옥. (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한국과 미국 정부가 관세 협상을 타결지으면서, 현대차그룹 등 국내 완성차업체들이 당초 우려했던 25% 고율 관세는 피했다. 그러나 기존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면서 가격 경쟁력 하락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번 협상 결과로 한국산 자동차에는 일본·유럽연합(EU)과 동일하게 15% 관세가 적용된다. 2016년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로 수출해 온 한국 완성차는 앞으로 가격 측면에서의 상대적 우위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반면 일본과 EU는 기존 2.5%에서 15%로 12.5% 관세율이 상향된 만큼, 실질적으로는 한국이 가장 큰 폭의 관세 인상을 맞게 된 셈이다.

대통령실은 31일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상호관세만이 아니라 자동차(부품 포함)에 대한 미국의 관세도 15%로 낮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동안 FTA에 따라 무관세 혜택을 받아왔던 만큼, 먼저 합의한 일본·EU보다 2.5%포인트 낮은 세율이 공정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협상에 임했다. 이에 따라 품목별 관세를 12.5%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하한선을 15%로 고수하면서 결국 이를 수용하게 됐다.

현대차·기아는 이날 성명을 통해 "대미 관세 문제 해결을 위해 온 힘을 다해주신 정부 각 부처와 국회의 헌신적 노력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현대차 울산항 수출용 자동차 선적 모습. (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 울산항 수출용 자동차 선적 모습. (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북미는 국내 완성차업체의 핵심 수출 시장으로, 지난해 한국은 미국에 총 143만대(약 48조원)의 차량을 수출하면서 EU(75만8000대), 일본(137만대)과 함께 미국 내 3대 수출국으로 꼽힌다. 관세가 25%로 유지됐다면 한국의 자동차 대미 수출이 20% 이상 감소하고, 국내 생산도 최대 90만대가 줄어드는 등 타격이 컸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2분기에 관세 영향으로 현대차는 8282억원, 기아는 7860억원 등 영업이익이 총 1조6000억원 가까이 줄었다. 양사는 최근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관세율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3분기를 포함한 하반기에는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이 같은 우려 속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협상 막바지에 직접 미국 출장길에 오르며 지원에 나섰다.

완성차 업계는 정부의 협상 결과를 반기는 분위기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미국 시장은 우리나라 수출 278만대 중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시장으로, 이번 관세 협상 타결로 우리나라가 일본, EU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며 "통상 협상 결과에 힘입어 미국 현지 시장 점유율 확대, 수출시장 다변화와 미래차 전환 촉진의 기회로 삼겠다"고 했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여전히 수조원 규모의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한다. 한화투자증권은 이번 15% 관세로 현대차·기아의 올해 영업이익이 약 5조6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유진투자증권은 7조5000억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이날 증시에서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주가가 일제히 급락한 것도 이러한 시장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 주가(종가 기준)는 한미 협상 타결 소식에 개장 초반 급등세를 보였지만,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세에 밀려 전 거래일 대비 1만원(4.48%) 내린 21만3000원에 장을 마쳤다. 기아는 7.34% 하락한 10만2300원, 현대모비스도 3.92% 내린 29만4500원으로 마감했다.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사진제공=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사진제공=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은 향후 미국 현지 생산 확대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재료비·가공비 절감, 부품 조달 방식 개선 등 생산 효율화를 강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연구개발(R&D)·생산·품질 부문의 현지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기아는 강점인 혼류생산 체제를 활용해 유연하게 전략 차종의 생산을 조정하고, 미국 내 시장 점유율 확대에 집중할 계획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현지화 추진에 따른 노조와의 갈등도 예상된다. 이미 올해 임단협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만큼, 향후 노사 간 갈등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조율하느냐가 또 다른 과제가 될 전망이다.

현대자동차 노사 관계자들이 지난달 18일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2025년 임금 및 단체협상 교섭 상견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현대자동차 노사 관계자들이 지난달 18일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2025년 임금 및 단체협상 교섭 상견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 협상에 대해 최악은 피했지만, 과거에 비해 경쟁 우위는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관세 불확실성이 해소된 점은 긍정적이지만, 향후 제조 환경에서의 원가 절감 등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권은경 KAMA 조사연구실 실장은 "EU·일본과 동일한 대우를 받은 건 다행이지만, 기존 무관세 체계를 감안하면 아쉬운 결과"라며 "이제는 국내에서의 제조 경쟁력 확보가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 시장에서 누려온 수출 어드밴티지를 잃은 만큼, 현지 생산 확대가 더욱 중요해졌다"며 "전략 차종 중심의 현지화 전략을 가속화하고, 노조와의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기아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약 70%를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어 도요타나 폭스바겐과 비교해 경쟁력은 여전히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현지 생산 확대와 함께 국내 노사 간 갈등을 어떻게 풀어갈지가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