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차진형 기자
  • 입력 2025.08.02 12:00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상가를 비울 때 권리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하는 임차인이 줄을 잇는다. 권리금 계약은 보증금처럼 숫자가 공탁되는 구조가 아니라 임대인의 의사 한 줄에 뒤집히기 쉽다. 게다가 새 임차인, 공인중개사, 시설철거업체까지 복수 이해관계자가 엮여 갈등의 층위가 두껍다. 그러나 분쟁 지도 위에 해결 전략을 펼치면 길은 의외로 단순하다.

첫째 지형은 '거절-책임'이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10조의4는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의 입점을 거절하면 손해배상을 부담한다고 규정한다. 통상 정당 사유로는 건물 철거·재건축, 위험 건축물 지정, 신규 임차인의 현저한 신용 위험 등이 꼽힌다.

반면 '임대인이 직접 영업하겠다'는 사유는 대법원 2022년 판결에서 정당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임차인은 거절 통보를 받는 즉시 내용증명을 보내 거절 사유를 요청하고, 임대인이 답을 주저하면 채증이 완성된다. 거절 날짜와 주선 내역을 일지로 남겨 두면 승소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둘째는 '계약-미비' 영역이다. 권리금 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권리금은 추후 협의'라는 문구에 안주하면 증거가 빈약해진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권리금 회수 기한(계약 만료 6개월 전부터 만료일까지)을 정할 뿐 액수와 지급 방식은 당사자 자율에 맡긴다. 이때 구두 약속이나 카카오톡·문자 메시지만으로 권리를 확정 지으려 하면 나중에 '사실과 다르다'는 반론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반드시 서면으로 된 계약서를 작성해 권리금 액수·지급 기한·지급 방법·불이행 시 손해배상과 지연손해금·원상회복 범위를 명확히 넣어야 한다. 물론 계약서를 작성했고, 권리금 계약금이 오고간 상황이라도 신규 임차인이 임대인과의 최종 임대차계약을 완성하지 못하면 권리금 계약은 없는 것으로 하여 계약금은 돌려주게 된다.

셋째는 '원상회복-분담' 갈등이다. 권리금이 오간 뒤에도 철거·시설 이전 비용이 누구 몫인지 명시되지 않으면 또 다른 소송이 열린다. 하급심 판례는 '특약이 없으면 임차인이 부담'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기본적인 기준은 당사자 합의에 따른다.

특히 원칙적으로 철거·원상회복 비용은 기존 임차인이 부담한다. 신규 임차인이 기존 시설을 그대로 인수하기로 하고 임대인이 이를 승인한 경우에만 의무가 사실상 면제될 뿐이다. 

그러나 임대인이 정당 사유 없이 신규 임차인과의 계약 체결을 거부하면 기존 임차인은 빈 점포를 원상회복한 뒤 나가야 한다. 이때 들어가는 복구비가 수천만원에 달하기도 하므로, 임차인은 소송을 통해서라도 자신이 부담할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인다.

따라서 손해배상 청구 단계에서는 권리금 액수만을 청구 대상으로 삼되 원상회복 비용을 고려해 합의금 또는 권리금 액수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비용 부담을 낮추려는 전략이 일반적이다. 특약 단계에서 '원상회복 비용은 권리금을 지급받을 임차인이 부담한다' 또는 반대로 '임대인이 부담한다'는 식으로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면 분쟁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넷째는 '이행-담보' 단계다. 합의서만으로 권리금을 받기로 했더라도 임대인이 지급 시기를 질질 끌면 언제든 채권 회수가 어려워진다. 이때 조정조서를 활용하면 조정조서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져 강제집행 및 압류 신청이 즉시 가능하다.

특히 지급기일을 지키지 않을 경우 연 12% 이상의 지연손해금을 약정해 두면 협상력이 대폭 상승한다. 은행 지급보증서·공유질권·현금 공탁 등 담보 방법을 다양화하면 현장 위험을 더 줄일 수 있다. 실무에서 강제집행까지 가는 비율은 높지 않지만, '집행 카드'가 준비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분쟁을 종결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결국 권리금은 점포에 투자된 시간과 고객 기반의 가격표다. 임차인이 현명해지려면 입점 순간부터 퇴거 시점까지 계약서를 무기로 삼아야 한다. ▲권리금 액수와 지급방식 ▲정당한 거절 사유 ▲원상회복 범위 ▲지급 담보 장치를 문서로 고정하면 분쟁의 80%가 사전에 제거된다. 소송으로 넘어가면 권리금·원상회복 비용·지연손해금을 한꺼번에 청구해 '원패스'로 마무리한다. 임대인과 시장은 통제할 수 없지만 서면 계약과 증거는 임차인의 손 안에 있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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