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9.01 10:45

삼성그룹에 일명 '금융일류화팀'이라는 게 있다. 최근 삼셩생명의 일탈회계 논란이 불거지면서 금융일류화팀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04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에 설치된 금융일류화추진 TF가 시초라고 한다. 2004년은 삼성그룹이 부도 위기에 처한 '삼성카드 구하기'에 모든 걸 쏟아붓던 때다.
삼성카드-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 순환출자로 지탱하던 총수 일가 지배체제를 지키려면 삼성카드는 반드시 지켜내야만 했다. 그때도 금융일류화팀이라고 불렸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총수 일가 지배체제를 관장하는 그룹의 실질적 지휘부의 지시에 따라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를 짜고 실행에 옮기는 일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승계 시나리오에 따라 총수 일가가 차명으로 보유한 지분과 계열사가 보유한 지분을 이리저리 떼고 붙여 이재용 회장이 최소 비용으로 삼성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을 수 있는 길을 다져놓았다.
특히 2014년 6월 이건희 회장이 심근 경색으로 쓰러지고 이재용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삼성 금융일류화팀은 TF 조직이 아닌 공식 직제로 승격된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성공시키는 맹활약을 펼쳐 이재용 회장 승계에 유리한 비현실적인 합병 비율을 만들어내는 '매직파워'를 입증하면서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바이오로직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삼성그룹 총괄 지휘부는 '온 세상이 다 아는 비밀조직'이다. 법적 권한이 없는 비공식 비공개 조직의 존재 이유는 총수 황제경영을 보위하는 것이다.
2006년 X파일 사건, 2008년 비자금 특검, 2017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삼성그룹이 수난을 겪을 때면 어김없이 존재가 드러나고 총수를 위해 불법행위를 주도한 배후로 지목되어 명멸을 거듭했다.
2017년 2월 이재용 회장 구속 직후 미래전략실을 마지막으로 삼성그룹의 비공식 지휘 조직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실재는 하지만 실체가 없는 총수 일가 보위 조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당시 미전실 해체와 함께 금융일류화팀도 폐지됐지만, 이듬해인 2018년 '금융경쟁력제고' TF로 간판을 바꿔 달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공식 해체된 총수 보위 비공식 조직과 함께 늘 하던 대로 계열사 지분을 조정해 그룹 지배구조를 다듬고 정리하는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재벌체제에서 총수 일가가 소수의 지분으로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하고 유지하는데 금융 계열사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자산이다. 금융일류화팀의 존재 이유와 존재 가치도 여기에 있다.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계열사 중 최고 맏형 격인 삼성생명이 회계처리 문제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51%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 그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하지만, 동시에 마지막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이름은 금융일류화팀이지만, 삼성생명을 글로벌 일류 보험사로 만드는 것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재용 회장의 삼성전자 간접지배 연결고리 자리를 지키도록 하는 것이 본인에게 맡겨진 임무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모두 유배당보험 계약자의 보험금으로 매입한 것이다. 고객의 재산을 끌어모아 총수에게 쌈짓돈을 만들어 준 격이다. 글로벌 일류를 자처하는 천하의 삼성이 할 짓은 아니다.
최근 삼성생명 일탈회계 논란으로 삼성그룹이 감추고 싶은 그 쌈짓돈 이슈가 또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삼성생명 회계처리 논란은 삼성생명의 문제가 아니고 삼성생명이 혼자서 해결할 수도 없다.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 마무리 책임을 맡고 있는 금융일류화팀이 2015년처럼 '매직파워'를 발휘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다. 삼성 금융일류화팀이 제작 기획 감독하는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태의 후속편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
[조혜경 경제민주주의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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