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8.30 12:00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은 임차인에게 단순히 목돈을 잃는 것 이상의 고통을 안긴다. 새집으로 이사해야 하는데 보증금이 묶여 있으면 대출을 받아야 하고, 그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다.
더욱이 집주인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임차인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전세금 반환소송에서 이자청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자청구는 단순한 부가적 요구가 아니라 임차인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집주인이 전세금 반환을 미루려 할 때, 이자 부담이라는 경제적 압박을 가해 조속한 해결을 유도하는 장치인 셈이다.
전세보증금은 민법상 금전채권이므로 집주인이 약정 기한에 돌려주지 않으면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자율이 시점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진다는 점이다.
임차인이 주택을 집주인에게 돌려준 다음날부터 소장 부본이 송달되기 전날까지는 민법 제397조에 따라 연 5%가 적용된다. 그런데 소장 부본이 송달된 다음날부터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연 12%의 높은 이율이 붙는다. 즉, 소송에 들어서면 집주인의 지연 책임이 2배 이상 무거워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3억원의 전세금이 묶여 있다면, 소송이 시작된 후 매월 300만원의 이자가 발생한다. 이는 집주인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지만, 임차인에게는 강력한 협상 카드가 된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소송이 계속되는 중에도 집주인이 자발적으로 전세금을 반환한다면 판결 선고 전까지는 모두 연 5%로만 계산된다. 법원은 판결 선고 전 변제에 대해서는 12%의 고율을 적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집주인은 소송 중이라도 조속히 변제하면 불필요한 고율 이자 부담을 피할 수 있고, 임차인은 소장을 통해 법정이율을 12%로 끌어올림으로써 협상력을 강화할 수 있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이자청구와 관련해 아쉬운 사례들을 많이 본다. 가장 흔한 실수는 이자청구를 아예 누락하거나 불명확하게 기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세금 반환과 이에 대한 이자'라고만 청구하면, 법원이 어느 시점부터 어떤 이율을 적용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보정명령을 받게 된다.
올바른 방법은 청구취지에 반환기일, 이율, 기간을 구체적으로 적는 것이다.
'2024. 3. 1.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에 따른 금원'처럼 특정하면, 판사도 불필요한 보정명령 없이 신속하게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
실제 사건에서도 집주인이 원금 반환 의무는 인정하면서도 이자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시간을 끄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럴 때 이자청구를 명확히 해두면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지렛대가 된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매일매일 이자가 쌓이는 것을 보며 조속한 해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한 사건에서는 집주인이 처음에는 '새 세입자가 구해질 때까지 기다려 달라'며 시간을 끌려 했지만 이자청구가 포함된 소장을 받고 나서는 일주일 만에 전세금을 마련해 온 경우도 있었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임대인의 자금난이 늘어나면서 임차인 보호 수단으로서 이자청구의 실효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집주인이 단순히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전세금 반환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근본적인 자금 부족으로 인한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자청구는 임차인이 가진 거의 유일한 압박 수단이 된다. 집주인이 자금 조달을 위해 노력하도록 만드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공인중개사들도 임차인에게 전세 계약 해지 및 반환 청구를 안내할 때 반드시 이자 기산점과 이율 문제까지 설명해야 한다고 본다. 단순히 '전세금 돌려달라고 하세요'가 아니라 '언제부터 몇 퍼센트의 이자를 청구할 수 있는지'까지 알려줘야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 특히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는 단계에서부터 이자 기산점을 명확히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전세금소송에서 이자청구는 단순한 부속 청구가 아니라 원금 반환을 촉진하고 협상력을 강화하는 핵심 장치다.
임차인은 소송 제기 시 원금뿐 아니라 이자까지 빠짐없이 청구해야 하며 반환 시점과 이율을 정확히 특정해야 한다. 집주인 역시 불필요한 이자 부담을 피하려면 분쟁이 장기화되기 전에 반환 절차에 신속히 나서는 것이 현명하다. 소송까지 가게 되면 이자 부담이 2배 이상 늘어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양쪽 모두 이자청구의 법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임차인에게는 권리보호의 수단이자 협상카드이고, 집주인에게는 조속한 해결을 위한 경제적 압박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합리적인 해결점을 찾아가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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