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08.10 08:00

한화오션 '활활', HD현대 '미지근', 삼성중공업 '시큰둥'
MRO 중심 마스가 프로젝트 이후에도 같은 기조 전망

한국과 미국 관세협상 타결 전인 지난 7월 30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소재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한 존 펠란(가운데) 미국 해군성 장관이 현장 관계자들과 조선소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한화그룹)
한국과 미국 관세협상 타결 전인 지난 7월 30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소재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한 존 펠란(가운데) 미국 해군성 장관이 현장 관계자들과 조선소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한화그룹)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한국 정부가 최근 1500억달러 규모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를 앞세워 미국과 관세협상을 타결한 가운데, 국내 조선 '빅3(HD현대·삼성중공업·한화오션)'의 대미 투자 전략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간 미국은 조선업은 모든 화물을 자국에서 건조하고, 소유자나 승무원도 미국 시민과 영주권자인 선박만 운송하도록 명시한 '존스법'에 따라 폐쇄적으로 운영해 왔다. 따라서 한국 조선업계 입장에서는 규모 작은 선박 및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만 영위해 온 신시장인 만큼, 3사의 공략법도 온도 차가 뚜렷하다.

업계 맏형인 HD현대 조선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HD현대중공업·HD현대삼호중공업·HD현대미포조선)은 리스크가 낮은 MRO를 중심으로 점진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강력히 원하는 현지 생산기지 투자에 앞서 기술과 협력을 통해 시장에 익숙해지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을 중심으로 지난 6월에는 미국 조선 그룹사 에디슨슈에스트오프쇼어(ECO)와 미국 상선 건조를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지난 4월에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 및 방산 분야 핵심 기자재 업체인 페어뱅크스 모스 디펜스와 각각 조선 및 해양 분야에서 협력키로 했다.

이달 들어서는 미국 AI 방산기업 안두릴 인더스트리와 함정 개발 협력을 위한 합의각서(MOA)를 교환했다. 다만 HD현대의 행보는 어디까지나 합작 내지 협력일 뿐 지분 투자나 관련 업체 인수합병(M&A)은 배제돼 있다는 게 특징이다.

정기선(두 번째 줄 맨 왼쪽) HD현대 수석부회장과 존 펠란(두 번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 미 해군성 장관이 지난 4월 30일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HD현대)
정기선(두 번째 줄 맨 왼쪽) HD현대 수석부회장과 존 펠란(두 번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 미 해군성 장관이 지난 4월 30일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HD현대)

한화오션은 공격경영을 표방하는 김승연 회장이 이끄는 한화그룹에 지난 2023년 편입된 이후, 3사 중 미국 시장 개척에 가장 적극적이다. 초기에는 HD현대처럼 미 해군과의 함정 정비 협약(MSRA) 체결 등 MRO 사업 위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으나, 현재는 현지 조선소를 직접 인수해 존스법을 우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필라델피아 소재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미국 연안 운항 상선 건조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 시초다. 필리조선소는 이미 미국 상선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생산기지다.

아울러 호주 방산 기업인 오스탈 인수도 추진 중이다. 오스탈은 미국 내에 조선소를 보유 중이다. 한화오션이 두 현지 조선소를 잘 활용한다면 미국 내 상선뿐만 아니라 해군 함정 건조 및 MRO 시장 선점효과가 기대된다.

물론 증권가 및 업계에서는 한화오션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현지에 조선 및 방산 노하우가 전혀 없어 납품 기간 맞추기가 어렵다. 공기가 길어진다는 것은 조선소 운영 등 고정비가 그만큼 많이 든다는 의미도 된다. 인건비도 한국의 3~4배에 달한다. 필리조선소만 해도 한화오션이 인수했을 당시 부채비율이 5000%에 가까웠을 정도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오션 모회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방산업 전성기를 맞아 현금 창출력이 풍부해서 망정이지, 보수적인 발주 성향이 짙은 조선업계에서 포트폴리오나 규모가 다른 조선사들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삼성중공업의 대미 투자 전략은 한화오션과는 정반대로, 3사 중 가장 소극적이다. HD현대처럼 미국과 MRO 협력조차도 자제하는 분위기다. 당장 미국 등 신시장에 공격적 투자를 감행하기보다는 기술력 차별화를 통해 중장기적인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삼성중공업의 포트폴리오는 초대형 상선 및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해양설비 등 철저하게 고부가가치 선종·설비에 특화돼 있다. 특히 해양설비는 2010년대 조선업 부실사태의 단초를 제공했음에도, HD현대나 한화오션과 달리 해당 부문을 그대로 떠안고 갔을 정도로 보수적인 경영기조를 유지 중이다.

삼성중공업 건조 LNG 운반선 시운전 모습. (사진제공=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 건조 LNG 운반선 시운전 모습. (사진제공=삼성중공업)

이에 따라 마스가 프로젝트 발동 이후 대미 투자가 더욱 활발해질 조선업체는 두 곳이다. 미 해군 함정의 80%가 2010년 이전에 건조돼 노후화됐기 때문에 향후 MRO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인 만큼, MRO 사업이 중심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 함정 MRO 시장 잠재규모도 연간 20조원에 달하고, 마스가 프로젝트 내에서도 MRO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HD현대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6일 미 해군 7함대 소속 4만1000톤급 화물보급함 'USNS앨런셰퍼드'호의 정비사업을 수주했다. 마스가 프로젝트를 내세워 미국과 관세협상을 타결한 지 일주일 만이다.

그럼에도 현 시점에서 마스가 프로젝트로 가장 수혜가 예상되는 곳은 꾸준히 미국과 MRO 협력을 해왔고,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현지에 조선소를 운영 중인 한화오션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눈도 있기에 삼성중공업도 2사와 같이 한미 조선업 협력 대응 TF을 꾸렸다고는 하지만, 당장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시장 상황을 파악한 후, 점진적으로 미국 시장 진출 전략을 수립하는 수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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