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아현 기자
  • 입력 2025.09.23 11:00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 운영 개시에 앞서 합동대응단 출범을 기념하는 현판식 행사에 참석해 현판 제막과 함께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원회)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 운영 개시에 앞서 합동대응단 출범을 기념하는 현판식 행사에 참석해 현판 제막과 함께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원회)

[뉴스웍스=김아현 기자] 금융시장을 뒤흔든 초대형 주가조작 세력이 드디어 덜미를 잡혔다.

종합병원·대형학원 운영자 등 슈퍼리치와 전직 사모펀드 임원, 금융회사 지점장 등 금융 전문가가 결탁해 은밀하게 벌여온 장기 시세조종이 금융당국의 합동 공조로 차단됐다. 이들은 1년 9개월간 수만 회에 걸쳐 통정매매를 일삼으며 400억원에 달하는 불법이득을 취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불공정거래를 넘어 '자본시장 엘리트 집단'이 공모한 조직적 범죄라는 점에서 충격을 더한다. 금융당국은 최초로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도입된 '계좌 지급정지 조치'를 발동해 혐의자들의 자금을 원천 차단했다.

◆'명망가+전문가' 결합한 초대형 작전 세력

금융위원회·금감원·거래소로 구성된 합동대응단(단장 이승우)은 23일 압수수색과 계좌 지급정지 조치를 통해 불법 거래를 중단시키고 혐의자 재산을 동결했다고 밝혔다.

합동대응단은 이번 사건의 주체를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재력가와 금융 전문가가 손잡은 카르텔"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일별 거래량이 적은 종목을 집중 타깃으로 삼았다. 병원·학원 등에서 확보한 막대한 현금과 금융기관 대출까지 동원해 1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 해당 종목 유통물량의 3분의 1을 장악했다. 이후 고가매수·허수주문·시종가관여를 반복하며 주가 흐름을 왜곡했다.

특히 수만 건의 가장·통정매매로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꾸미는 방식은 전형적인 주가조작 수법이었다. IP 조작까지 병행하며 금융당국의 감시를 회피했고, 심지어 경영권 분쟁 이슈까지 활용해 투자자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그 결과 해당 종목 주가는 조작 이전 대비 약 2배로 뛰었고, 이들이 챙긴 시세차익만 230억원. 아직 보유 중인 주식 가치는 1000억원에 달한다.

◆금융당국, 압수수색과 동시에 계좌 ‘지급정지’

사건은 금감원 시장감시 과정에서 포착됐다. 초기 조사 단계부터 합동대응단이 가세해 금융위·금감원·거래소가 촘촘하게 자료를 분석했다.

혐의자들이 조사 사실을 눈치채고 보유 주식을 처분하지 않도록 관련 기업 및 인물과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는 전략도 구사했다.

결국 금융위는 증권선물위원회를 통해 '계좌 지급정지' 조치를 최초 발동했다. 이는 지난 4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새로 도입된 제도로, 불공정거래 혐의자의 금융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장치다.

동시에 혐의자 주거지·사무실 등 10여 개 장소에 대한 압수수색도 단행됐다.

합동대응단은 "진행 중인 범죄를 즉각 차단하고 증거를 확보해 투자자 피해 확산을 막았다"고 강조했다.

(자료=금융위원회)
(자료=금융위원회)

◆'원스트라이크 아웃' 정착될까

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가조작은 패가망신'이라는 인식을 시장에 심어주겠다는 방침이다.

우선 부당이득에 대해서는 최대 2배 과징금을 부과하고, 최근 신설된 금융투자상품 거래 및 임원선임 제한 등 강력한 행정제재도 적극 활용한다. 이는 불공정거래 세력을 자본시장에서 완전히 퇴출시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모델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보안과 감시의 작은 부주의가 막대한 피해로 이어진다"며 "불법 재산은 끝까지 환수하고, 금융시장 신뢰를 위협하는 세력은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시세조종 사건을 넘어 '엘리트 범죄'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명망 있는 의사, 학원장, 금융권 출신 전문가가 한 팀을 이뤄 주가를 움직였다는 점에서 사회적 충격도 적지 않다.

합동대응단은 서울남부지검과도 긴밀히 협력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신속히 발부했고, 시장감시 전문 인력이 증거 분석을 뒷받침했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건 ‘주가조작 근절’의 첫 시험대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셈이다.

◆남은 과제는 제도 안착

전문가들은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도입된 지급정지·과징금 강화·임원선임 제한 제재가 실제로 불공정거래 근절에 효과를 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또한 이번 사건처럼 지능화된 수법은 여전히 시장 곳곳에 잠복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합동대응단도 "현재 다른 중대 불공정거래 사건을 조사 중"이라며 시장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천억원대 자금을 동원한 대형 주가조작 세력이 압수수색과 계좌 동결로 무너진 이번 사건은 우리 자본시장이 한 단계 더 성숙해질 수 있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주가조작은 반드시 들통 나고, 불법이득은 끝까지 환수된다'는 원칙이 시장에 자리 잡는다면 투자자 신뢰 회복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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