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윤해 기자
  • 입력 2022.03.15 00:05

해외는 물적분할 아닌 인적분할 택해…"신주인수권 부여해야"

LG에너지솔루션 유가증권시장 신규 상장 기념식. (사진제공=한국거래소)
지난 1월 27일 LG에너지솔루션 유가증권시장 신규 상장 기념식에서 관계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거래소)

[뉴스웍스=안윤해 기자] 기업공개(IPO) 시장이 달아오르면서 상장사들은 미래 성장성이 높은 사업을 자회사로 물적 분할한 뒤 상장시켜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지난해부터 우후죽순으로 추진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LG화학으로부터 배터리 사업부를 물적분할 해 상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존 LG화학 주주들은 기업가치의 하락에 따른 주가 하락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시장의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는 새정부가 주목해야하는 지점이다. 기업의 쪼개기 상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개인투자자들은 새롭게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소액투자자 보호에 나서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물적분할은 모회사의 특정 사업부를 분리해 신설회사로 만들고, 신설한 자회사의 주식 전부(100%)를 소유해 지배권을 확보하는 기업분할 제도다. 따라서 기존 주주들은 신설 법인의 주식을 1주도 받지 못하게 된다. 특히 핵심 사업부를 떼어내 자회사를 설립하고, 신설 자회사가 상장할 경우 기존 모회사 주주들은 보유한 주식의 평가 절하를 피하기 어렵다.

LG에너지솔루션 주가 추이. (자료=한국거래소)
LG화학의 최근 3개월간 주가 추이. (사진=네이버금융 캡처)

◆'지주사 디스카운트' 동학개미 만 손해…해외는 인적분할이 대세

기업들의 잇따른 물적분할 소식에 핵심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선 '지주사 디스카운트'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주사 디스카운트란 자회사의 상장 이후 사업가치가 중복 카운팅돼 모회사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 분할 전 70만~80만원선 이상을 유지하던 LG화학의 주가는 14일 종가 기준 45만7000원으로 거의 반토막이 난 상태다. 지난 1월 20일 물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을 결정한 세아베스틸도 분할을 공시한 당일에만 주가가 13% 넘게 떨어졌다. 포스코와 NHN도 물적분할을 발표한 뒤 주가가 각각 4.58%, 10.94%씩 급락한 바 있다.

이에 기업들은 주주들을 달래기 위한 친화정책을 꺼내들고 있다. 포스코는 개인투자자 사이에 물적분할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자 분할 발표 당시 "자회사를 상장시키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자사주 1160만주(13.3%) 중 일부 소각 ▲배당성향 30% 수준 유지 ▲최소 1만원 이상의 배당 계획 등의 주주친화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세아베스틸은 소액주주들의 불안을 해소시키기 위해 물적분할 이후 자회사의 재상장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주주가치를 위해 5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내년 2월 11일까지 사들이겠다며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EV릴레이 사업부를 이어 받는 LS일렉트릭도 분할 재상장 가능성을 부정하며 ▲향후 3년 간 배당성향 40% 이상으로 상향 ▲모회사 LS, LS일렉트릭 주식 47만6190주 취득 등을 결정했다.

다음달 1일 물적분할을 앞둔 NHN 역시 회사가 소유한 분할법인의 주식을 모회사 주주들에게 현물배당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개정안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추가 상정했다.

한국 기업들이 물적분할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인적 분할을 통해 얼마든지 물적분할과 같은 자본조달이 가능하지만, 인적분할 시 대주주의 지분율이 희석되는 만큼, 그 리스크를 일반주주에게 전가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어떨까. 지난해 자회사를 분할 상장시킨 미국·유럽 기업들은 모두 인적분할 방식을 택했다. 지난해 12월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모회사인 다임러는 트럭사업부 다임러트럭을 분할해 독일 증시에 상장한 바 있다. 다임러 주주들은 다임러트럭 신주 65%를 모회사 지분율에 따라 받았다.

미국 기업의 경우에는 신규 주식을 받지 못하는 기존 주주에게는 현금을 보상한다. 미국의 제약사 머크는 바이오시밀러 사업부를 인적분할 하면서 보통주 10주당 신주 1주를 지급했고 10주 미만을 보유한 투자자에게는 현금으로 보상했다. 이 밖에 IBM은 인프라서비스 사업부를 분할하면서 5주당 1주를 지급했고, 5주 미만을 보유한 기존 주주들에게도 역시 현금을 보상했다.

손병두 이사장이&nbsp;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혁신선도 자본시장을 향한 핵심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거래소)<br>
손병두 이사장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자본시장을 향한 핵심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거래소)

◆소액주주 보호책 마련 시급…정부 의지 필요해

기업들의 물적분할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소액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는 방안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기존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다만, 현행상법(418조1항)에 주주가 가진 주식 수에 따라서 신주의 배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표현이 있기 때문에,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상법을 개정해야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할 때 기존 주주에 공모주를 우선 배정하는 방법이다. 우선 배정은 일반청약자에 앞서 먼저 청약할 권한을 주는 것으로, 우리사주조합에 공모주를 우선배정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해당 방법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법과 시행령의 하위 규정인 증권인수업무 규정을 수정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물적분할 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회사의 이사회가 합병·분할합병 등을 추진할 때 이에 반대하는 주주가 자신의 주식을 적정가격으로 회사에 되팔 수 있는 권리다. 이처럼 물적분할 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하면 가능하다.

이 외에도 한국거래소는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심사를 강화할 예정이다. 거래소는 2022년 핵심전략으로 주주 권리 보호를 강화하고 시장 신뢰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물적분할 자회사의 상장 심사 시 기존 주주에 대한 보호책을 마련했는지 들여다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1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물적분할 후 모자회사 동시상장과 관련한 투자자 보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거래소는 상장 심사에서 모회사 주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는지를 ESG 요소에 반영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투자협회의 증권인수업무 규정 개정을 통해 할 수 있는 모회사 주주 우선배정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거래소는 심사과정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과 소통이 있었는지에 대해 살피고, 주주보호책 등을 면밀히 심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지난 6일 금융위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고 오는 5월 말부터 바로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합병·영업양수도·물적분할 주식의 포괄적 교환 및 이전 등과 같은 소유구조 또는 주요 사업의 변경을 결정할 때 보고서에 소액주주 의견수렴, 반대주주 권리보호 등 주주보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세부원칙이 추가됐다.

하지만, 이같은 방안이 실현되고, 시장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장기 운영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관휘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꼭 기업분할이 필요한 것인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며 "대선 후보들의 공약도 나왔고 여러가지 정책들도 발표되고 있지만, 가장 궁극적이고 시급한 것은 일반 주주의 주주권 확립"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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