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4.09 11:10
모기업 투자 약속 및 6년만의 드릴십 명명식
해양플랜트·드릴십, 투자 방식 구체적 플랜 필요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미중 갈등으로 인한 상선과 함정의 수요 증가,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해양플랜트 수요 증가 전망으로 해외 조선소와 액화터미널·해운·드릴십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겠다."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장)
한화오션에 있어 올해 4월 8일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모회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수년간 수주 및 건조가 끊기다시피 했던 해양플랜트와 드릴십 등 특수선 부문에 대한 총 11조원의 투자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자회사 한화드릴링은 옥포조선소에서 차세대 드릴십 '타이달 액션'호의 명명식을 개최하고 본격적인 해양 시추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한화오션이 드릴십 명명식을 개최한 것은 대우조선해양 시절이었던 지난 2019년 5월 '소난골 쿠엔겔라'호 이후 6년 만의 일이다.
'소난골'이라는 이름은 한화오션 반세기 역사에 큰 생채기를 낸 사연을 안고 있다.
한화오션은 2013년 소난골과 12억4000만달러의 드릴십 2척 수주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당시 글로벌 저유가 사태가 시작됐고, 2016년 건조가 완료된 이후에도 소난골을 발주한 앙골라 정부는 국가채무 우려를 이유로 드릴십을 인도해 가지 않았다.
건조 대금을 받지 못한 한화오션은 유동성 위기에 시달렸고, 대주주인 KDB산업은행으로부터 수조원대 지원을 받고 고강도 구조조정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2010년대 조선 업계 대규모 부실 사태의 시발점이었다.
한화오션은 2019년에야 소난골 명명식·인도 후 미수금을 회수할 수 있었지만, 원래 가격의 반값도 채 되지 않았다. 상선·해양플랜트·특수선 건조 부문 세계 1위를 자랑하던 국내 조선사들은 이미 해양과 특수선 부문을 대폭 축소했고, 현재까지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상선 부문은 다시금 호황기에 진입한 데다, 해양플랜트와 특수선(방산 포함) 부문은 중국 조선업을 견제하고, 기존 화석에너지 시추를 표방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으로 대대적인 투자 적기를 맞았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한화오션은 막강한 자금 동원력을 앞세운 한화그룹에 편입된 지 3년째다.
이번에 한화오션 특수선 부문 '제2의 중흥기'를 알린 타이달 액션호도 간판은 '차세대'가 붙었으나, 사실 소난골과 비슷한 시절 수주했다가 인도되지 않아 10년 넘게 야드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드릴십이었다. 그러나 한화그룹의 지원을 바탕으로 최근 들어 최신 시스템이 탑재되면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한화오션의 모회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면서 승계 자금 및 주주 피해 논란을 무릅쓰면서까지 해양플랜트 및 드릴십 부문 투자를 강조했다. 최근 싱가포르 조선사인 다이나맥 홀딩스를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해양플랜트와 드릴십 부문 부활 기반은 마련됐고, 남은 문제는 11조원의 투자금을 어떻게 잘 쓰냐 여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 설명대로 관련 부문이 투자 적기이기도 하지만, 정말로 대규모 유증이 승계나 주주 피해를 의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입증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부분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투자를 약속한 드릴십과 해양플랜트, 그 중에서도 부유식 생산·저장·하역 설비(FPSO)는 상선 이상의 기술력 수준을 요구하는 고밀도 집약 사업이다. 때문에 고난이도의 화물창 기술을 요구해 '상선의 왕'이라고 불리는 LNG 운반선의 건조 단가와 비슷하거나, 더 높다.
물론 한화오션은 대우조선해양 시절부터 해당 부문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2010년대 부실사태를 거치면서 이 부문 국내 베테랑 기술자들이 대거 유출된 상태다. 설계 전체를 볼 줄 아는 숙련공들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보다 조선 기술력이 떨어지는 외국인 인력을 쓴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조선업 자체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숙련공들을 다시 불러오거나, 과거 대우조선해양 중공업사관학교 같은 고급 국내 인력 육성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하다. 보수적인 조선업 특성상 수년간 발주를 끊었던 해외 선주들이 간판이 바뀐 한화오션에 즉각적으로 일감을 줄 지도 불투명하다.
이에 대해 한화 측 관계자는 "드릴십 같은 경우 그래도 노하우가 있는 다이나맥 홀딩스에서 상부구조를 건조하면 옥포조선소에서는 하부구조를 건조하는 수순이 예상된다"면서 "중장기 투자인 만큼 아직은 전체적인 윤곽만 잡혀 있을 뿐, 구체적인 투자 집행 방도는 마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